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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교보문고 선정 '2017 올해의 책 10'

소설 바람 거셌던 한 해
페미니즘도 뜨거운 이슈
1인 출판, 독립서점 약진

'올해의 책' 10권을 꼽았다. 교보문고와 중앙일보가 연말이면 벌이는 송년 잔치이자 해넘이 의례다. 올해도 책 10권에서 지난 1년의 우리가 읽힌다. 여전히 책은 세상을 읽는 창이다.

2017년은 한마디로 '소설의 해'라 정의할 수 있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소설 분야가 올해 판매 권수 점유율 10.1%를 기록해 1위에 올랐다. 2015년과 2016년 모두 중고학습서가 1위를 차지했었다. 화제가 된 소설이 여러 권 있었는데 김애란의 소설집 『바깥은 여름』 한 권만 선정했다. 교보문고 북마스터.구매마스터가 참여한 1차 투표에서 모두 4표를 받아 압도적인 1위에 올랐다.

◆라틴어 수업/한동일 지음

라틴어는 '죽은 언어(死語)'다. 로마제국의 공용어였지만 이제는 어느 나라에서도 공용어로 쓰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렇다. 청나라를 세웠던 만주족의 만주어 신세와 비슷하다. 그러나 만주어와 달리 라틴어는 지금도 생명력을 가졌다. 라틴어에 뿌리를 둔 학술용어나 신조어가 수두룩하고, 아우디(Audi)나 에쿠스(EQUUS) 등 국내외 유명 브랜드 중에도 라틴어 흔적이 뚜렷하다. 서울대의 '진리는 나의 빛(Veritas lux mea)'나 서강대의 '진리에 복종하라(Obedire veritati)'처럼 라틴어 모토를 내세운 대학이나 기업도 많다. 이는 "라틴어로 말한 것은 무엇이든 고상해 보인다"라는 생각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도 이 책이 10만 부 이상 팔린 것은 문화적 기현상이라 할 만하다. 라틴어를 배우기 위해 이 책을 손에 든 이는 아마도 거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지적이고 아름다운 삶을 위한'이란 작은 글자의 부제목에 끌린 이들이 많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김승섭 지음

김승섭 교수는 사회역학자다. 철저히 이 학문의 관점에서 쓰인 그의 첫 책 『아픔이 길이 되려면』은 그가, 우리가 짊어지고 있는 고통을 직시하면서 인간을 이해하려는 의사이자 사회를 연구하는 학자로서 얼마나 오랜 시간 궁구하고 고민했는지 알려준다. 또한 가운을 입고 피와 오물이 쏟아지는 현장에서 분투하는 것뿐만 아니라, 연구실에서 부조리한 사회와 맞서 싸워 결과물을 내는 것도 치열하고 준엄한 의사의 길임을 보여준다.

◆랩걸/호프 자런 지음

『랩걸』은 식물에 비추어 삶을 돌아보는 아름답고 유머러스한 책이다. 헐거워진 문장에 진저리를 치는 요즈음 이만큼 단단한 글을 만나는 건 드물지만 즐거운 일이다.

지은이 호프 자런은 미국 중서부 미네소타에서 자랐다. 여름에 옥수수밭에 서 있으면 성장이 빠른 옥수수가 자라느라 껍질이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식물이 자라는 소리와 아버지의 실험실에 드나들던 기억이 소녀를 과학자로 키웠다. 그렇다. 놀랍게도 저자는 과학 '작가'가 아니라 진짜 '과학자'다. 호프 자런은 '타임'이 선정한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선정되었을 뿐 아니라 풀브라이트상을 세 번 수상한 유일한 여성 과학자다.

2000년을 기다린 연꽃의 씨앗, 위기가 닥치면 돕는 버드나무 등 자런의 식물 이야기는 매혹적이다. 이 책은 과학자, 의사, 법률가 같은 전문가들이 읽으면 좋겠다. 열 사람이 읽고 말 논문이 어떻게 대중을 만날 수 있는지, 좋은 본보기다.

◆아날로그의 반격/데이비드 색스 지음

그는 '디지털 과잉섭취'가 인간들에게 보다 '견고한 아날로그적 삶'에 대한 새로운 갈증을 유발한다고 진단한다. '시대의 현기증'을 느낀 사람들이 '포스트 디지털' 시대를 꿈꾸는 것을 넘어 적극적으로 대안을 실천에 옮기는 현장을 찾아 나선다는 것이다. '옛날이 좋았어' 식의 퇴행적이고 향수병적인 접근법이 아니라는 점에서 눈길이 간다.

'포스트 디지털 시대'는 시장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턴테이블과 레코드판은 박물관을 탈출해 아날로그 음향시대를 새롭게 열고 있다. 예쁘게 디자인된 종이 패드는 아이패드를 대체하고 있다. 실리콘 밸리 사람들도 자신의 개성을 담은 종이 명함을 주문한다. 코닥의 몰락을 상징하는 필름 카메라가 새롭게 부활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디지털 사진은 아날로그 사진이 재현하는 빛의 마술을 아직은 따라가지 못한다.

◆신경 끄기의 기술/마크 맨슨 지음

글 걸음이 가볍지만 신랄하다. 에두르지 않고 정곡을 찌른다. 200만 명 넘는 구독자를 지닌 파워블로거의 글답다. 자기계발서 대부분은 빠르게 높이 많은 것을 이루며 성공할 것을 독려한다. 이 책은 그런 자기계발서에 대한 날카로운 일침이자 역발상이다. 제목의 '신경 쓰기'는 무심함이나 무관심과는 다르다. 허세와 거품을 거둬내고 현실을 직시하며 정말로 중요한 것을 구별해내라는 메시지다.

많은 자기계발서들은 성공을 향한 첫걸음으로 목표를 분명히 하라 조언한다. '나는 무엇을 즐기고 싶은가'에 먼저 답하라 요구한다.

이 책은 다르다. '나는 어떤 고통을 견딜 수 있는가'에 답하라고 충고한다. '뭘 해야 할지'보다 '뭘 포기해야 할지'부터 분명히 하라는 것. 성취하는 방법보다 내려놓는 방법이 중요하다.

◆아홉 살 마음 사전/박성우 지음

박성우 시인의 책 『아홉 살 마음 사전』을 읽으면서 나는 이러한 생각을 했다. 이 책은 아이들의 마음을 표현하는 말 여든 개를 뽑았다. 감격스럽다, 귀엽다, 따분하다, 보고 싶다, 속상하다, 예쁘다, 조마조마하다, 후련하다, 흐뭇하다 등등. 그리고 각각의 말들을 활용해서 보여준다.

이 책은 우리 아이들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을 상세하게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줄 것 같다. 아이들은 무한과 대화하고, 그 마음은 무한을 향한다. 다만 그 어마어마하게 높고 큰마음을 표현할 방법을 우리의 아이들이 모르고 있을 뿐.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 것도 없겠지만 /박준 지음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은 시와 산문 사이에 놓여 있다. 표지에 산문이라 명기는 하였지만 편집은 시의 호흡을 따라 그리한 바 크다. 애초에 무조건적인 분량 채우기에 연연하지 않을 거라는 시인의 집필 의도도 있었지만 왠지 이 책은 군데군데 여백이 크게 자리해야 읽는 호흡에 무리가 가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이 책 속에서 내가 발견한 힌트는 바로 이 문장에 있었다. 그러니까 "기억에 오래 남는 평범한 어른들의 이야기"라는 구절에서 나는 '기억'과 '오래'와 '평범'과 '어른'과 '이야기'에 일단 방점을 탕탕 찍고 본론을 시작했던 거다. 그리하여 이 단어들의 거름망을 무사 통과한 가난이라는 생활, 이별이라는 정황, 죽음이라는 허망을 이 산문집의 주된 정서로 깔았다. 가능하면 피하고만 싶었던 우리들의 민낯, 그 생살을 껴입게 한 것이다.

◆바깥은 여름/김애란 지음

김애란의 소설집 『바깥은 여름』에 실린 일곱 단편들을 읽는 독법이, '안은 겨울'이 되어야 한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없다. "유리 볼 안에선 하얀 눈보라가 흩날리는데, 구 바깥은 온통 여름"('풍경의 쓸모')인 세계, 내부와 외부의 이 시차가 『바깥은 여름』의 주제다.

일곱 편의 단편들을 읽어보자니 이 겨울은 머지않아 봄이 예비 되어 있는 그런 겨울이 아니다. 갑자기 죽어 버린 아이의 기억만큼이나 길어질 겨울이다.

언제나 겨울, 언제나 입동인 이 세계는, 이전의 김애란이 속해 있던 세계와 판이하다. 곤궁한 자들에게도 자주 유머를 부여하고, 비참한 삶 속에서도 순진무구를 잃지 않던 『달려라 아비』 『침이 고인다』 『비행운』 『두근두근 내 인생』의 작가는, 『바깥은 여름』의 작가와 같은 작가가 아니다. 물론 이런 단절의 시점은 특정할 수 있다. 2014년 4월 16일. 김애란의 소설은 그날 이전과 이후로 확연히 갈린다.

◆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이미경 글.그림

이 땅 방방곡곡의 구멍가게 이야기다. '그림글'이기도 '글그림'이기도 하다. 가만 들여다보자니 저편에 있던 유년의 기억들이 슬금슬금 걸어 나온다. 책장이 쉬 넘어가지 않는다.

푸근한데 불편하다. 쇠락하는 풍경이 흘리는 처연함 때문이다. 일흔 넘은 전남 곡성의 곡성교통죽정정유소는 아흔 넘은 할아버지와 여든 넘은 할머니의 손때가 묻어 반들반들하다. 열여덟 새색시는 점방에서 60년을 보내며 하얗게 늙었다. 그게 10년 전이다. 아직도 그분들은 손님을 기다리고 있을까. 설레는 마음 안고 제주 조천읍에 가니 와흘상회는 그새 문을 닫았다. 작가는 하릴없이 멀구슬나무 아래 앉아 아쉬움을 달랜다.

◆오늘은 잘 모르겠어/심보선 지음

'올해의 책'으로 선정된 심보선 시집 『오늘은 잘 모르겠어』의 첫 시 '소리'는 "들어라/배 속의 아기에게 시를 읽어주는 어머니여"라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다정한 고백체의 문장을 기대한 독자는 당혹해 할지 모르겠지만, 이 시는 이 시집의 어떤 기조를 암시한다. '어머니여', '아버지여', '장자여', '인생이여', '늙은 어부여', '처녀여', '무덤이여', '허공이여', '첨단의 도시여'는 모두, '들어라'라는 청유형의 대상이 되는 '청자(聽者)'들이다. 청자들에 대한 호명만으로 시를 구성하는 사례는 예외적이다. 세상의 모든 '청자들'을 불러 모아 청자들의 지위를 복권하려는 이 시는, 현대시에서 '소리'의 위상과 현장성을 되살리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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