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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틈

'(…)어떤 철벽이라도 비집고 들어가 사는 이 틈의 정체는/ 사실은 한 줄기 가냘픈 허공이다/ 하릴 없이 구름이나 풀잎의 등을 밀어주던 나약한 힘이다/ 이 힘이 어디에든 스미듯 들어가면/ 튼튼한 것들은 모두 금이 간다 갈라진다 무너진다/ 튼튼한 것들은 결국 없어지고/ 가냘프고 나약한 허공만 끝끝내 남는다.'

김기택 시인의 '틈'이라는 시다. 참으로 예리한 시인의 관찰에 놀랍다. 아무리 튼튼한 철근과 시멘트로 지은 건물이라도 틈이 한번 벌어지면 결국 그 건물은 무너진다. 그런데 그 틈의 정체는 한줄기 가냘픈 빛과 같은 공간이다. 같은 맥락으로 지진으로 인해 생긴 건물의 금도 결국은 붕괴되고 만다. 우리의 사회생활에서도 이 원칙은 그대로 적용된다. 부부.친척.친구관계에서도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조그만 틈새가 생겼다가 결국 그 관계가 끝이 나는 경우를 많이 본다. 인간관계에서도 이 틈새의 원인은 사소한 부주의나 무관심 혹은 게으름에서 비롯되곤 한다.

2018년 새 해가 돋았다. 지난 한 해를 돌이켜보며 새해에는 풍선처럼 부풀어 날아가는 헛 꿈이 아니라 실현 가능한 조그만 소망을 기원해 본다.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 생의 반경을 넓히기 보다는 지금까지 알고 지내는 지인들과의 관계에 틈이 생기지 않도록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 요즘 대세가 되어 있는 카톡이나 문자 혹은 이메일은 기차 안에서 한 풍경을 보듯 스쳐지나간다. 눈으로 읽고 가슴에 와 닿는 정이 듬뿍 묻어있는 손 편지를 써보고 싶다. 전자카드 대신 손 카드에 정성들여 그 분에 가장 적합한 단어선택을 하면서 한자 한자 정성을 담아 써 나간다. 그 시간은 그 분만을 생각하고 고마움을 전하고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시간을 갖고 싶다. 침을 발라 우표를 붙이고 봉투를 봉한 후 잘 전달되길 바라며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우편함에 넣는다. 참으로 간단하고 쉬운 일인데도 우리 주위에서 사라지고 있는 풍경이다.

나 자신도 시대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새 전자기기를 사고 배우고 옆과 뒤도 보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려왔다. 스마트폰.구글.아마존이면 우리의 일상생활이 거의 해결된다. 하루 종일 이 새 장난감들과 놀기에 바빠 인간관계가 마르고 금이 가고 틈이 생겼다. 손으로 넘기면서 보는 신문, 책 혹은 인쇄물이 점점 사라지고 종이 돈도 줄어들고 비트코인이 강세다. 인터넷 속에 온 세계가 들어있다. 필요한 것은 오직 클릭할 수 있는 검지만 있으면 된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살고 있는 지인으로부터 전자생일 카드가 날라 왔다. 카드를 열자마자 아침이슬을 흠뻑 머금은 붉은 장미들이 피어오른다. 그리고 침샘을 자극하는 전자생일 케이크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까지 배달된다. 지난 홀리데이 때도 쇼핑을 전자시장에서 계속 클릭했다. 무엇이든 첫 몇 자만 입력하면 몇 천개의 달이 뜬다. 노래도 첫 몇 노트만 흥얼거려도 노래 전체 가사.악보.작가에 관한 모든 내용이 뜬다. 그리고 이와 관련된 비슷한 사이트까지 친절하게 계속 뜬다. 클릭 클릭에 지친 검지와 흐려지는 시야, 엉킨 뇌의 회로에 눈을 비비며 전원을 끈다.



허망하다. 외롭다. 주위를 돌아본다. 역시 혼자다. 오늘은 어제의 복사판이고 내일 또한 오늘의 되풀이가 될 것이다. 사람냄새가 그립다. 손맛이 그립다. 어렸을 적 친구가 그립고 이민초기의 고생을 함께 나눈 지인들이 그립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짧은 우리, 오늘의 나를 만들어 준 이들을 찾아 고마움을 전하는 시간을 갖고 싶다. 행복은 소유가 아닌 감사의 마음에 정비례한다는 어느 선지자의 말처럼, 올해는 우리 사이 벌어진 틈새를 메워 가는 감사의 마음을 찾고 싶다. 생명체는 나이가 들어가면 메말라가고 물건들도 방치해두면 말라가며 단단해진다. 새해에는 옛 친구들을 찾는 작업을 해야겠다. 그동안 보지도 듣지도 만지지도 못했던 것들을 찾아 조금은 덜 외로운 존재가 되어볼까 한다.


정명숙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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