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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페르시아 왕자와 신라 공주의 사랑

-유라시아에서 들려주는 사랑과 모험, 평화이야기6

이란으로 넘어오는 길은 길고도 험난했다. 그러니까 내 말은 길이 멀고 험난했다는 것이 아니라 절차가 복잡하고 지난했다는 말이다. 거기다 자동차 보험료로 한 달간 800달러를 달라고 해서 내가 거의 미친 듯이 당신들 미쳤냐고 소리를 지르니 600달러 내라고 한다. 200달러를 그 자리에서 깎아서 기분이 좋아야 할 것 같은데 아직도 왠지 삥땅 뜯긴 기분이다. 이렇게 국경 넘는 일이 어려울 때마다 나는 평화통일이 된 조국을 자유롭게 왕래하는 것이 꿈이지만 또한 국경 없는 세상을 꿈꾸어본다.

내가 가고 있는 이 실크로드는 과거의 길이고 미래의 길이지만 현재의 길은 아니다. 첨예한 국가이기주의로 이 길은 동맥경화에 걸려있다. 금방 양탄자를 타고 하늘을 나르는 페르시아 왕자로 떠오르는 귀에는 가깝고 눈에는 먼 나라, 이란. 중동은 언젠가부터 서구의 눈으로 바라봐서 우리에게 가장 오해가 많고 편견의 먼지에 뒤덮인 곳이다. 거기다 세계에서 북한과 함께 미국에 맞장 뜨는 유일한 나라이다. 미국에 맞장 뜨면서 코피 흘리는 일반 시민들의 삶이 국경에서부터 적나라하게 보이는 듯해서 애처롭고 슬프다.

이란에는 약 1400년전 기록된 '쿠쉬나메(Kush Nama)'라는 귀한 구전 서사집이 전해져 내려온다. 이 책에는 페르시아, 당나라, 신라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속에 우리나라 기록에는 없는 페르시아 왕자 아브틴과 신라 공주 파라랑의 애틋한 사랑이 결실을 맺어 결혼하고 그 사이에서 태어난 왕자가 훗날 페르시아로 돌아와 영웅이 된다는 이야기가 있다.

7세기 중엽 아랍인의 침공으로 사산 왕조 페르시아(226-651)가 망한다. 페르시아 왕자인 아브틴은 난민들과 함께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 중국으로 가서 정착하여 살다 중국의 정세가 요동을 치자 그 당시 황금이 풍부하고 미인이 많기로 알려진 한반도에 있는 신라 왕국까지 찾아온다. 황금으로 장식된 신비로운 나라 신라에 온갖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봄이 오자, 춘심이 동한 아브틴 왕자는 왕궁을 거닐다 타이후르 왕의 딸인 신라 공주 파라랑을 보는 순간 심장이 멈추는 전율을 느낀다. 애틋한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은 국경도 초월하고 인종도 초월하며 결혼을 하게 된다.



얼마 후 둘 사이에 떡두꺼비 같은 아들 페레이둔이 태어난다. 신라 공주는 아브틴과 함께 아들 페레이둔을 안고 머나먼 페르시아로 건너간다. 그러나 애처롭게도 신라 공주 파라랑은 전쟁으로 남편을 잃지만 한국 여인의 억척스러움으로 온갖 시련을 겪으며 아들을 지켜내, 페레이둔이 장성하자 사람들을 규합해 조상들의 원수인 아랍군을 물리친다. 그는 페르시아의 영웅으로서 새로운 역사를 창조한다는 내용이다. 이란의 민족 설화에 '바실라'라고 부르는 수억만 리 떨어진 신라가 등장한다는 것이 신기하고도 반갑다.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은 페르시아의 쿠쉬나메 서사시에서 영감을 얻어서 만들었다고 한다. 쿠쉬나메의 줄거리는 다름 아닌 우리나라 역사 속에 신라 공주와 페르시아 왕자간의 국경을 초월한 사랑의 이야기였다. 그런데 푸치니가 쿠쉬나메를 읽고 깊은 영감을 얻었을 때 서양은 한국을 잘 알지 못했었다. 그 때 그들이 아는 동방의 신비로운 나라는 일본이었다. 그래서 나비부인의 무대는 경주가 아닌 나가시키로 바뀌어버린 것이다.

나는 신라 공주와 페르시아 왕자의 사랑이 오간 이 길, 황금보검이 오간 이 길을 달리면서 왜 이들이 대장금과 주몽에 푹 빠질 수밖에 없었던가를 사유해본다.


강명구 / 수필가·마라토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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