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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안나푸르나에서의 생일 파티

히말라야의 품에 안기다 (19)

코 앞에 목적지인 안나푸르나가 있는데 다들 지쳤는지 비를 핑계로 축 늘어져 쉬고 있다. 2시까지 기다리다 그냥 출발하기로 했다. 파란 비닐을 뒤집어 쓴 오뚜기들의 행진이 다시 시작되는 순간이다. 네팔의 우기는 6월부터 9월까지라고 한다. 그런데 산행 첫 날부터 잠깐 동안 이라도 거의 매일 비가 내린다. 점점 가까워지는지 산행로마다 군데 군데 눈으로 덮여 있다. 기온도 조금씩 떨어지고 호흡도 가빠지고 있음을 느낀다. 그런데 갑자기 주변이 하야진다. 비가 눈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앞 뒤에서 탄성이 쏟아져 나온다. 하얀 눈을 맞으며 걸을 줄은 상상도 못해서인지 그 감흥이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저 멀리 사진에서만 보던 팻말과 오색 천조각이 펄럭이는게 보인다. 펄펄 내리는 함박눈에 가슴이 뛰고 눈앞에 떡 버티고 서 있는 안나푸르나의 위용에 가슴이 뛰고 결국은 해냈구나 하는 기쁨에 가슴이 뛴다. 모두들 환호 하며 팻말 있는 곳으로 향한다. 산행로에서 좌측으로 살짝 벗어난 평평한 곳에 있는 팻말에는 여기 저기서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다. 조금 더 가니 마치 웨딩아치와 같은 곳을 지난다. 환영한다는 의미에서 만들어진 것 같은데 조금은 생뚱 맞은 기분이 든다. 오후 3시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해서 방을 배정 받았다. 우측 첫 번째 4인실인데 ST팀과 함께 하게 되었다. 이곳은 거의 예약 잡기도 힘들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처럼 가이드 없이 오게 되면 비용을 절약할 수는 있어도 잘못하면 방이 없어 낭패를 볼 수도 있기에 미리 계획을 잘 짜고 움직여야 한다. ST와 SG가 안쪽 침대를 모두 차지해서 CS와 나는 문앞과 창문 옆에 있는 침대를 정해서 짐을 내려 놓고 쉴 준비를 한다. 침낭부터 펼쳐 잠자리부터 만들었다. 3시 밖에 안됐는데 컴컴하고 으스스한 분위기다. 눈 앞에 보이는 거대한 히말라야의 봉우리들이 캠프를 감싸 듯 둘러 있고 저녁에 얼큰한 꽁치 김치찌개를 먹고 나니 직접 만든 생일 케잌이 뒤를 잇는다. ES의 생일이 마침 이곳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에 도착하는 날이라고 한다. 감격의 순간에 북 받치는 감정을 억누르다가 결국 ES는 눈물을 보인다.

누군가 문을 두드리며 들어와 흔들어 깨운다. '아니 이 좋은 걸 안보고 무슨 잠이예요. 빨리 나오세요' 뉴저지에서 온 MG다. 새벽 12시30분. 깊은 잠에 빠진 ST와 SG를 뒤로 하고 비몽 사몽 CS와 함께 밖으로 나온다. 보름달이 휘황 찬란하게 밤을 밝히며 어두운 안나푸르나의 설벽에 빛을 비추고 있다. 놀라운 장면이다. 이곳의 밤은 원래 셀 수 없이 많은 별들이 하늘을 가득 메우는 별들의 잔치가 볼거리라고 했는데 날씨 탓이지 별은 많이 보이지 않았지만 보름달 아래 조용히 잠자고 있는 설산들의 모습은 가히 경이적인 광경이다. NS는 아예 의자를 갖다 놓고 앉아 탄성을 외치며 감상하고 있다. 잠시 후 안나푸르나의 밤은 고요히 흘러가고 갑자기 몰아치는 정적 속에 깊은 잠에 빠져 든다.

5월 1일 새벽 5시30분. 해돋이를 보기 위해 모두를 깨우는 소리가 방마다 메아리 친다. 어둑 어둑한 길에 쌓인 하얀 눈이 달빛에 반사되니 반짝 반짝 빛나는 새벽이다. 손에 잡힐 듯 지척에 있는 안나푸르나와 마차푸차레의 위엄은 상당하다. 모두 얼어 붙은 듯 입을 다물지 못하고 산에 좀 더 가까이 가기 위해 서둘러 걷고 있다. 마치 어떤 거대한 기운이 산 주위를 감싸 듯 맴돌고 있고 달빛에 비친 봉우리는 어둠과 빛이 조화를 이루 듯 시시 각각 모습이 변하고 있다. 박영석 대장이 자취를 감춘 안나푸르나 남봉이 눈앞에 있다. 이곳에서 그는 7년전 눈사태가 난 이후 강기석, 신동민 대원과 함께 자취를 감췄다. 세명의 사진과 약력이 적힌 비석 앞에서 모두들 숙연해 지며 눈시울이 붉어진다. 우리가 서 있는 바로 옆은 낭떠러지다. 내 바로 옆 위쪽에서 외국 청년이 언덕에서 뛰어 내리다가 그만 발을 잘못 디뎌 뒤뚱거리다가 간신히 중심을 잡는다. 순간 머리가 쭈삣 서며 간이 콩알 만해 지는데 위에 있던 여자 친구는 마치 아무일도 아니라는 듯 웃으면서 남자 친구를 나무라듯 핀잔을 준다. 눈으로 덮인 산이라서 미끄럽고 위험하기 그지 없어서 만일 떨어지기라도 했다면 생명을 건지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우측 마차푸차레 정상에서 밝은 빛이 올라온다. 해가 떠오르고 있다. 찬란하다는 표현이 무색하리만치 뭔가 말로 표현이 안되는 감동이 울컥 가슴을 누른다. 멀고 먼 대장정의 길을 걸어온 우리 20명의 대원들. 각자의 고통과 아픔을 가슴 속에 담고 걸어 온 이 길은 비록 일주일에 지나지 않을지 몰라도 우리는 모두 각자의 삶을 짊어지고 왔을 것이다. 그리고는 히말라야의 품에 안기고 있다. 오늘은 우리 모두의 생일이다.


정동영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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