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안나푸르나에서의 생일 파티
히말라야의 품에 안기다 (19)
누군가 문을 두드리며 들어와 흔들어 깨운다. '아니 이 좋은 걸 안보고 무슨 잠이예요. 빨리 나오세요' 뉴저지에서 온 MG다. 새벽 12시30분. 깊은 잠에 빠진 ST와 SG를 뒤로 하고 비몽 사몽 CS와 함께 밖으로 나온다. 보름달이 휘황 찬란하게 밤을 밝히며 어두운 안나푸르나의 설벽에 빛을 비추고 있다. 놀라운 장면이다. 이곳의 밤은 원래 셀 수 없이 많은 별들이 하늘을 가득 메우는 별들의 잔치가 볼거리라고 했는데 날씨 탓이지 별은 많이 보이지 않았지만 보름달 아래 조용히 잠자고 있는 설산들의 모습은 가히 경이적인 광경이다. NS는 아예 의자를 갖다 놓고 앉아 탄성을 외치며 감상하고 있다. 잠시 후 안나푸르나의 밤은 고요히 흘러가고 갑자기 몰아치는 정적 속에 깊은 잠에 빠져 든다.
5월 1일 새벽 5시30분. 해돋이를 보기 위해 모두를 깨우는 소리가 방마다 메아리 친다. 어둑 어둑한 길에 쌓인 하얀 눈이 달빛에 반사되니 반짝 반짝 빛나는 새벽이다. 손에 잡힐 듯 지척에 있는 안나푸르나와 마차푸차레의 위엄은 상당하다. 모두 얼어 붙은 듯 입을 다물지 못하고 산에 좀 더 가까이 가기 위해 서둘러 걷고 있다. 마치 어떤 거대한 기운이 산 주위를 감싸 듯 맴돌고 있고 달빛에 비친 봉우리는 어둠과 빛이 조화를 이루 듯 시시 각각 모습이 변하고 있다. 박영석 대장이 자취를 감춘 안나푸르나 남봉이 눈앞에 있다. 이곳에서 그는 7년전 눈사태가 난 이후 강기석, 신동민 대원과 함께 자취를 감췄다. 세명의 사진과 약력이 적힌 비석 앞에서 모두들 숙연해 지며 눈시울이 붉어진다. 우리가 서 있는 바로 옆은 낭떠러지다. 내 바로 옆 위쪽에서 외국 청년이 언덕에서 뛰어 내리다가 그만 발을 잘못 디뎌 뒤뚱거리다가 간신히 중심을 잡는다. 순간 머리가 쭈삣 서며 간이 콩알 만해 지는데 위에 있던 여자 친구는 마치 아무일도 아니라는 듯 웃으면서 남자 친구를 나무라듯 핀잔을 준다. 눈으로 덮인 산이라서 미끄럽고 위험하기 그지 없어서 만일 떨어지기라도 했다면 생명을 건지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우측 마차푸차레 정상에서 밝은 빛이 올라온다. 해가 떠오르고 있다. 찬란하다는 표현이 무색하리만치 뭔가 말로 표현이 안되는 감동이 울컥 가슴을 누른다. 멀고 먼 대장정의 길을 걸어온 우리 20명의 대원들. 각자의 고통과 아픔을 가슴 속에 담고 걸어 온 이 길은 비록 일주일에 지나지 않을지 몰라도 우리는 모두 각자의 삶을 짊어지고 왔을 것이다. 그리고는 히말라야의 품에 안기고 있다. 오늘은 우리 모두의 생일이다.
정동영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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