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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삶] 나란히 걷는 두 사람

철새들이 줄을 맞추어 날아가는 것/ 길을 잃지 않으려 해서가 아닙니다/ 이미 한몸이어서입니다/ 티끌 속에 섞여 한 계절을 펄럭이다보면/ 그렇게 되지 않겠습니까//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다가/ 어느새 어깨를 나란히 하여 걷고 있는/ 저 두 사람/ 그 말없음의 거리가 그러하지 않겠습니까// 새떼가 날아간 하늘 끝/ 또는 두 사람이 지나간 자리, 그 온기에 젖어/ 나는 오늘도 두리번거리다 돌아갑니다// 몸마다 새겨진 어떤 거리와 속도/ 새들은 지우지 못할 것입니다

-나희덕 시인의 '새떼가 날아간 하늘 끝' 전문



결혼은 사랑을 전제로 합니다. 더러 정략적인 혼인도 있기는 하겠지만 대부분은 사랑하기 때문에 결혼을 하게 되지요. 그런데 이 사랑이란 게 수명이 그다지 길지 않다고 합니다. 사랑의 감정은 짧게는 3개월 길어봐야 3년이라고 하네요.



그러면 사랑을 바탕으로 결혼을 했으나 사랑이 시들해지고 나면 부부는 무엇으로 살아야 할까요. 결혼 생활을 지속하기 위해 나름대로 방법을 찾게 되겠지요. 가족애를 앞세우기도 하고, 서로에 대한 존중을 논하기도 하고, 인간으로서의 의리를 말하기도 합니다.

한 여자와 한 남자가 만나 합일을 꿈꾸며 살아간다는 건 세상의 어떤 모험보다도 위험한 모험입니다. 그래서 부부는 늘 티격태격하게 마련입니다. 더러는 힘겨운 혈투를 벌이다 끝내 종지부를 찍기도 합니다. 체형이 다른 두 사람에게 한 옷을 입혀놓고 살아가길 바라다보니 부작용도 있게 마련이겠지요.

그런데 한 집에서 분란의 과정을 겪어 내다보니 어느 사이 남자의 오른쪽과 여자의 왼쪽이 겹쳐지고 한 옷을 입고도 그다지 불편하지 않게 됩니다. 닮아가는 과정이 지난하긴 하지만 닮긴 닮습니다. 내가 너인 듯 네가 나인 듯 정체성은 희박하지만 무엇이 됩니다.

노부부가 걸어갑니다. 남자가 국화 한 다발을 들고 가네요. 걸음걸이가 불편해 보입니다. 여자가 나란히 걷고 있습니다. 여자도 걸음걸이가 편치 않아 보입니다. 그런데 그들 둘의 모습은 안정적입니다. 기울어진 남자의 한 쪽을 여자의 기운으로 받쳐줍니다. 쳐진 여자의 한쪽을 남자의 그림자가 받쳐줍니다. 오랜 세월을 같이 산 사람들만의 보완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시간이란 무심하게 지나가는 것 같지만 순간순간마다 분광하며 뭔가를 각인시킵니다. 사랑의 순간에도 분란의 순간에도 서로는 조금씩 물들어갑니다. 어쩌면 그 채색이 또 다른 나를, 혹은 너를 만들어 갈 것입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만나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나를 형성해 갑니다. 그 과정은 행복인 때도 있고 불행인 때도 있습니다. 행복이었다 해도 불행이었다 해도 인생이라는 강을 건너가는 노(櫓)의 역할을 충분히 해낸 시간의 축조물입니다.

노년의 삶이란 살아낸 시간의 흔적을 기리는 일종의 축제여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 멋진 추억이 되진 못하더라도 지나온 시간에 대한 당당한 가치 매김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그렇지가 못한 것 같습니다.

연로하신 분들의 모임에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모두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고 합니다. 자신의 인생을 책으로 쓰면 대하소설이라며 끝없이 회한을 토로합니다. 그런데 살아온 날들이 불러내는 억울함과 분노가 너무 많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분노를 조절할 온기를 잃은 걸까요. 배우자를, 혹은 자신의 삶을 향한 존중과 헌화는 없어 보였습니다.

허공에 뿌리를 내리려는 허망한 것 같던 시간들을 통과하고 맞이하는 저녁, 노을을 바라봅니다. 몸마다 새겨진 어떤 거리와 속도를 껴안고, 길을 잃지 않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한 몸이 되어 남은 길을 가면 좋겠습니다.


조성자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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