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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교차로] 디지털 시대의 껍데기 인생

듣기 좋은 콧노래도 한 두번이다. 아무리 좋은 글, 아름다운 사진도 시도때도 없이 날라오면 짜증난다. 요즘 전쟁 치르듯 산다. 개인 휴대폰까지 추적하는 집요한 광고전략과 밤낮 안 가리고 울리는 카톡 소리에 신경이 날카롭다. 그렇다고 핸드폰을 버릴 수도 없어 개목걸이 찬 견공처럼 끙끙대며 산다.

핸드폰은 요술 단지다. 핸드폰만 있으면 세상만사 만물박사가 되고 무식이 유식이 되고 돈 안들이고 세계유람도 하고 얼굴 없는 사람과 대화를 주고 받는다.

인터넷은 지식의 생산 및 소비를 시공간을 허물며 초고속으로 연결해 준다. 인터넷은 지식과 정보를 혼합한다. 지식을 정보로 만드는 동시에 정보를 지식으로 전환시킨다.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지식은 총체성을 상실하고 부분으로 분해된 다음 파편화되거나 부품화돼서 정보로 전락된다. 쓰나미로 밀려드는 정보는 일회용이나 일방통행의 소통일뿐 지식 그 자체는 아니라는 말이다.

앵무새는 자기 언어로 말하지 않는다. 흉내 낼 뿐이다. 인터넷 혹은 소셜미디어에 올라오는 많은 정보는 다른 사람의 것을 카피한 것이 대부분이다. 우리는 이제 인터넷 시대에서 'Copy and Paste(복사 및 붙여넣기)'시대에 산다. 손가락만 잘 놀리면 가지각색의 아이콘과 정보를 입수, 입력, 전달이 가능하다. 생각하고, 머리 굴리고, 신경쓰고, 내용 분석하고, 주접 떨며 감정 잡고 가슴 조릴 필요 없다.



너무 많이 멋진 것들을 본 탓일까. 이젠 어지간이 놀랍고 아름다운 그래픽과 매끄러운 글귀, 황홀한 영상에는 더이상 호들갑 떨지 않는다. 차라리 투박하고 못나고 어설픈 글에 감동 먹고 술 취한 중 취발이가 추는 어깨춤에 흥이 돋는다.

'생각하는 사람'은 사고하는 인간의 상징이다. '생각하는 사람'은 독립적인 조각상이 아닌 '지옥의 문'의 일부로 단테의 신곡 지옥편에서 영감을 받은 로댕의 역작이다. 원래 작품명이 '시인'이던 지옥문의 상층부 중앙에 조각된 근육질의 남자는 처참한 불바다의 지옥으로 향하는 인간의 고통과 번뇌, 죽음을 응시하며 숙명적인 고뇌에 빠져있다. 삶과 운명에 대해 고민하는 인간 내면세계의 팽팽한 긴장감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로댕 전기에서 릴케는 "그는 말없이 생각에 잠긴 채 앉아 있다. 그는 행위하는 인간의 모든 힘을 기울여 사유한다. 그의 온몸이 머리가 되었고, 혈관에 흐르는 피가 뇌가 되었다"라고 적고 있다.

사유(思惟.Denken)는 인간의 가장 고차적인 심적 능력으로서 감성의 작용과 구별된 개념이다. 생각이 사물을 헤아리고 판단하고 사람이나 사건을 기억하는 단순한 것인데 비해 사유는 판단 추론 등을 거쳐 보편적이며 본질적인 파악에 접근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사유는 개념, 구성, 판단, 추리 따위를 통찰하는 인간의 이성 작용이다. 데카르트는 사유란 '의심하고, 이해하며, 긍정하고, 부정하며, 의욕하고, 의욕하지 않으며, 상상하고, 감각하는 것이다'라고 정의한다.

베낀 글은 감동을 주지 않는다. 남의 글은 생명이 없다. 목숨 있는 것 살아있는 것은 제 목소리로 스스로의 자태를 뽐낸다. 흉내쟁이(Copycat)로 자신의 목소리 없이 자기 모습으로 살지 못하는 사람. 언어가 상실된 시대, 소통이 없는 사회 에서 감동도 사색도 사고도 생각도 없는 사람은 껍데기 인생을 산다. 화선지 고이 접어 난초 살포시 그려 넣고 깨알같은 붓글씨로 소식 주시는 노신사 정 박사님은 디지털시대에 아날로그 정서를 접목하는 디지로그(Digilog)의 산증인이다.


이기희 / 윈드화랑 대표·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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