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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얼마나 차고 넘치는지

'울음의 마디/ 슬픔의 마디/ 그가 울고 간 세월이 알알이/ 세포에 기록되고/ 그토록 너를 뜨겁게 흔들리게 했던/ 지금쯤 네 몸에서 강이 되어 풀리고 있을/ 뿌리를 당겨보자/ 굳어지기 전까지 울음은 떨어지지 않는다// 제 무게를 바람에 놓아주며 흔들거린다/ 생의 각질들을 조금씩 벗겨내는/ 언어라는 것이 먼저 인간을 기웃거리는 허공/ 바람의 지도는 밤에 조용히 부서진다/ 당신과 내가 한번은 같은 곳에 누웠다가/ 울고 갔다고 적어둔다/ 오래 비워둔 방안에서 혼자 울리는 전화/ 수신음 같은 것이 지금 내 영혼이다'

'바람의 지도' 라는 필자의 졸시다. '굳어지기 전까지 울음은 떨어지지 않는다'는 연을 나는 가장 좋아한다. 굳어진다는 말은 즉 육신의 죽음을 의미한다. 죽고 나서야 울음은 떨어져 나와 시가 되고 춤이 되고 예술이 된다. 마지막 순간, 마지막 기억, 나는 죽을 때 무엇을 떠올릴 것인가. 후회와 미련을 떠올리기 보다는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과 사랑했던 사람들의 모습을 누구나 기억하고 싶을 것이다. 마지막 기억이 아름답도록 오늘도 열심히 살고 사랑하고 싶다.

모든 소리는 음악이 될 수 있고 모든 움직임은 춤이 될 수 있다. 귀로 듣지 않고 눈으로 보지 않아도 마음의 귀와 눈은 내면이 평화롭고 고요해야 들린다. 새소리.빗소리.바람소리가 생명의 음악이 된다. 내 감각이 살아 있어야 다른 사람도 읽고 배우고 느낄 수가 있는 것이다. 내가 기쁨을 찾아야 다른 사람의 기쁨도 받아들일 수가 있다. 이 모든 출발점은 바로 '나'다. "세월은 피부를 주름지게 하지만 열정을 저버리는 것은 영혼을 주름지게 한다"고 맥아더 장군은 말했다. 세상은 혼을 담은 눈으로 사랑을 담은 눈으로 보아야 열린다. 외롭지 않기를 바라지 말고 외로움과 벗할 힘을 키우는 것이 필요하다. 이 세상이 아름다운 것은 똑 같은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오월의 싱그러움이 나날이 짙게 번져가고 천지는 파스텔로 꽃단장을 한다. 봄바람이 살랑대고 햇빛이 찰랑대자 수양버들이 수줍어한다. 자연을 경외하며 감사하는 마음, 오묘한 세상의 이치를 섬세하게 배워가는 마음, 원석을 갈고 닦는 마음 모두 소중하다.



"내가 가진 게 얼마나 차고 넘치는 지, 항상 감사했다. 항상 행복했다." 생의 끝자락에서 나누는 대화가 귓전에 달라붙는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중환자실에서는 참으로 보기 드문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살아 있을 때 잘해, 죽고 나면 다 소용 없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본 소리다. 모처럼 오늘 예쁜 선배가 고민을 털어 놓았다. 결혼 45년차 인생 대선배인데 그동안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결혼 생활을 이끌어준 남편께 고마움을 글로 전하고 싶다면서 아쉬운 표정을 짓는다. 말은 사라지나 글은 영원하다. 우리 나이가 되면 놀랍게도 남편과의 관계가 데면데면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탐스럽게 익어가고 새록새록 차고 넘치는 사랑에서 허우적대는 선배를 보며 마음이 환하고 따뜻해진다. 살아 있을 때 잘해, 연애편지를 써보는 것은 어떨까 말해줘야지.


정명숙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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