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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TALK] 마농의 억울함

가을이 되자 클래식 공연이 새 시즌을 맞으며 기지개를 켰다. 뉴욕 필하모닉은 이미 9월 중순부터 연주를 재개했으며 피아니스트 랑랑과 함께 가을 갈라 콘서트를 개최했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는 거슈윈의 대표작 '포기와 베스'를 시즌 첫 번째 공연으로 선보였다. 사우스캐롤라이나 찰스턴의 흑인 빈민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 작품은 거의 모든 배역이 흑인이고, 고전 민요와 흑인영가가 많이 등장하는 매우 미국적인 오페라이다.

이튿날에는 프랑스로 무대가 바뀌어, 마스네의 오페라 '마농'으로 이어졌다. 이 작품은 굽이치는 이야기의 흐름과 프랑스 음악의 다채롭고 찬란한 아름다움이 절정의 조화를 이룬다. 파멸을 향한 반전이 연속되는 동안 다양한 볼거리들이 이어지며 눈과 귀를 자극하는, 어느 한 구석도 빠지지 않는 수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농'은 푸치니의 '나비부인'이나,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처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지도, 자주 연주되지도 않는 편이다. 게다가 프렌치 오페라의 대명사 격인 비제의 '카르멘'이나 오펜바흐의 '호프만의 이야기'에 비해 존재감도 떨어지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기까지 하다.

영화 '대부'와 더불어 누아르 영화의 전설로 손꼽히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는 미국 서부영화의 상징적인 인물인 세르조 레오네 감독의 대표작이다. 갱스터 영화라는 장르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놓쳐서는 안 될 명작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완벽에 가까운 시나리오에, 눈을 뗄 수 없는 긴장감으로 관객들의 주목을 끌어당긴다는데 있다. 이 영화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특이한 부분은 바로 여러 버전의 영화가 다양한 길이로 존재한다는 점이다. 2014년에 나온 감독판 버전은 장장 250분에 이른다. 지병을 앓고 있던 레오네 감독은 처음부터 충분한 길이의 작품을 원했지만 제작사의 반대에 못 이겨 처음에는 139분짜리 버전으로 미국에서 첫 개봉을 했으나 그 결과는 처참한 흥행 실패로 이어졌다. 이후 90분이 추가로 늘어난 229분 길이의 새 버전은 칸 영화제에서 극찬을 받으며 새로운 영화로 다시 태어났다.

어느 하나 빠질 것 없는 '마농'이 찬밥 신세가 된 이유는 작품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평균을 살짝 넘어가는 길이 때문이 아닌가 싶다. 소위 널리 연주되는 유명 오페라의 평균 길이는 3시간 정도. 사람들이 충분히 견딜 수 있다는 말이다. 푸치니의 '라 보엠'이나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가 딱 이 정도 길이가 된다. 이보다 살짝 긴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이나 '돈 죠반니'까지도 용서가 되는 듯하다. 그러나 대중들의 마지노선은 여기까지다. 물론 바그너의 '반지' 시리즈나, 베를리오즈의 '트로이의 목마'와 같이 엄청난 길이의 작품들은 아예 작정을 하고 극장을 찾는다. 그러나 사전 지식 없이 객석에 앉은 관객의 입장에서는 예상했던 공연 길이보다 1시간이나 더 남았다는 사실을 체감했을 때 엄청난 피로감이 밀려온다. 익숙한 기준에 조금 벗어난 '마농'은 억울한 이유로 이렇게 저평가된다.



만일 마스네가 '마농'을 3시간짜리로 줄였다면 어땠을까? 떠나간 연인을 잊기 위해 신부의 길을 택했던 기사가 수도원으로 찾아온 마농의 유혹에 다시 넘어가는 충격적인 장면이 시간 때문에 잘려 나가 버렸다면, 혹은 파리의 도박장에서 마농이 체포되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극이 끝나버리고 만다면… 이런 '마농'은 상상하고 싶지 않다. 레오네 감독이 스토리 자체에 충실했을 때 명작이 탄생했듯, 4시간을 선택한 마스네도 옳았다. 이젠 '마농'의 억울함을 풀어주자.


김동민 / 뉴욕 클래시컬 플레이어스 음악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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