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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으며 배려하며 인사하고 칭찬하는 그런 사회 좋은사회”

조성진 기자 / 이안나 기자 / 현정화 인턴기자
조성진 기자 / 이안나 기자 / 현정화 인턴기자

[토론토 중앙일보] 발행 2013/01/12  4면 기사입력 2013/01/24 11:22

사회성장의 기초체력은 성숙한 시민의식 배양
본보 벽두기획 “이것만은 버리고 갑시다” 대단원

멋진 신세계를 찾아 태평양을 건너 이억만리 머나먼 땅으로 옮겨온 한인들은 이민 가방을 들고 캐나다에 처음 랜딩했을때 느꼈던 황량함과 막막함을 기억하고 있다. 모든 것이 낯설고 언어마저 커다란 장벽으로 다가왔던 시절 이를 악물고 고생한 끝에 지금의 자리까지 온 한인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하지만 너무 앞만 보고 달려왔는지 주변을 돌아볼 겨를이 없었던 것 또한 사실이다. 기반을 잡기 위해 불철주야 쌓아온 노력들이 결실을 맺어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흐믓해할 만한데 뭔가 허전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다 그런건 아니겠지만 왠지 모르게 캐나다에 살고 있으면서도 한국커뮤니티를 중심으로만 살아온 세월을 느끼곤 한다. 그러다 보니 이곳 주류사회의 법, 사회상규라던가 문화와 풍습 같은 것을 깊이 들여다볼 마음의 여유마저 없었던 것 같다. 망망대해에 떠 있는 고독한 섬에 갇힌 사람처럼 살아오지는 않았던지... 한인들은 종종 캐나다의 법과 제도 그리고 풍습에 익숙하지 않아 알게 모르게 어글리 코리안의 모습을 노출시킬 때가 있다. 본보는 보다 성숙한 커뮤니티를 위해 ‘한인들이 꼭 버리고 가야 할 모습’에 대해 3일부터 10일까지GTA 거주 한인 120명을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설문조사를 실시했다.

 뒷담화를 많이 한다(19%)

한인들이 올해 꼭 버리고 가야 할 나쁜 습관으로 첫 번째 꼽은 것은 ‘뒷담화’다. 당당하게 앞에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남의 뒤에서 험담을 많이 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심리는 원래 남의 말을 하기 좋아한다고 그런다. 그것도 남의 좋은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험담하기를 즐긴다고 한다. 오죽하면 “뒷구멍으로 호박씨 깐다”는 말이 나왔을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중상과 모략이 난무한 것을 알고 있다. 지금은 잘 갖추어진 조직과 제도가 그런 부작용을 대부분 최소화하긴 했지만 인간의 근본 성향이 바뀌긴 쉽지 않은 것 같다. 상대방 앞에서는 아무 말도 못하면서 없는 자리에서는 온갖 약점을 다 잡아 부풀리고 넘어뜨리려고 하지는 않는지 스스로를 돌아봐야 할 때다. 불만이 많은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이러쿵저러쿵 뒷말이 많다. 특히 자녀들이 다 떠나고 없는 ‘빈둥지 증후군’에 시달리는 사람들일수록 그 허전함을 메꾸려고 남의 험담을 자주 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또 한가지 이유는 “배고픈 건 참아도 배 아픈 건 참을 수 없다.”는 본능적인 시기심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무한경쟁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남의 행복은 나의 불행, 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이 된다고 말하면 그리 틀리지 않은 말이 될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나와 비슷하거나 낮은 수준이라고 여겼던 동료가 어느날 나보다 뛰어난 능력으로 한 차원 높은 단계로 올라서는 모습이 보이면 못견디게 괴로와진다. 나보다 훨씬 잘된 동료나 친구를 축하해줘야 마땅한 자리인데도 마음은 상실감에 우울해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어떻게든 잘된 동료를 끌어내리고 싶다. 끌어내리고 싶은 충동에 그 사람에 대한 험담이나 욕을 하게 된다. 내가 이길 수 없다는 열등감이 있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그런 행동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를 일이다. 확인된 사실을 바탕으로 험담을 해도 문제인데 하물며 확인되지도 않은 정보를 부풀려서 남의 험담을 하는 것은 악한 일이다. 귀가 간지러우면 “누가 내 욕을 하나?”라는 우스개 소리도 있는 걸 보면 남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 수 있다. 올해부터는 뒷담화를 하지 말자. 헐뜯고 싶으면 당당하게 앞에서 하자. “내 눈에 박힌 대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의 눈에 있는 티만 생각”하는 근시안적인 행태와 이별할 때다.

 인사를 하지 않는다(16%)
(눈이 마주쳐도 인사하지 않는다)

서양 사람들은 길에서 처음 보는 사람을 만나더라도 ‘하이(Hi)’ 라고 하면서 인사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은 그렇지 못하다. 아파트의 승강기 안에서 이웃을 만나도 서로 인사는 커녕 천정만 바라보는 경우가 많다. 멀찌감치서 마주 오는 사람이 아는 사람이라도 되면 가던 길을 되돌아오거나 옆길로 빠져나가기도 하고 심지어는 숨어버리기도 한다. 이유는 딱 하나. 인사하기 싫어서다. 왜 인사하기가 싫을까. 그건 인사가 체질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인들은 아랫사람이 윗사람의 눈을 쳐다보지 못할 뿐만 아니라 마주보고 대화하는 경우 건방져 보인다는 유교 문화권의 영향 탓인지 좀처럼 해서 정면으로 마주치는 걸 꺼려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 보니 같은 직장, 같은 교회에 다닌다 하더라도 얼굴만 기억할 뿐 평생 인사 한 번 나누지 못하고 지내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적극적으로 인사하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 특히 낯선 환경에 새로 들어와 관계가 아직 어색할 경우라면 더욱 그렇다. 환하게 미소짓는 인사는 인사하는 사람의 이미지를 좋게 한다는 게 주지의 사실이다. 인사를 자주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환한 미소가 지어지고 긍정적인 느낌이 되는 걸 느낄 수 있다.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반갑습니다’를 입에 달고 다녀 볼 일이다. 우리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간파하게 될 것이다. 인사는 우리 자신을 적극적이고 밝은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큰 힘을 갖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부모님께 “안녕히 주무셨어요?”라고 하고 저녁에 잠자리에 들기 전엔 “안녕히 주무세요.”라고 인사를 하자. 인사를 하면 가족 구성원간 소통의 장이 열린다는데 이론을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집에서는 어른에게 공손히 인사를 해야 하며, 이웃 간에도 먼저 보는 사람이 “안녕하세요?”라고 다정하게 인사를 나누어야 할 것이다.

 에티켓을 잘 안 지킨다(16%)
(뒷사람을 위해 출입문을 끝까지 잡아주지 않는다)

일상 사회 공동생활에서 구성원 상호간에 암묵적으로 기대하는 예의 범절을 ‘에티켓’(etiquette) 또는 매너(manner)라고 부른다. 이것은 개개인 활동의 접촉점에서 서로간에 양보를 통해 상대방의 편의를 최대한 확보해주려는 암묵적인 사회적 합의라고 말할 수 있다. 에티켓은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에서 나오는 사려깊은 행동이다. 식사에서부터 인터넷에 이르기까지 모든 종류의 활동에는 공동체의 에티켓이 있게 마련이다. 에티켓을 몸소 실천해본 적 있는가. 아내가 자동차를 타고 내릴 때 운전석에서 냉큼 내려 아내 쪽 문을 열어주거나, 식당에서 자리에 앉을 때 남자들이 기사도 정신을 발휘해 의자를 뺐다가 넣어준 경험이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그렇게 하지 않고 살았다면지금부터는 한번 그렇게 매너남처럼 살아 볼 일이다. 절제된 언행과 공손한 태도로 숙녀를 대한다면 분명 신사 대접을 받을 것이다. 한인들은 엄격한 유교식 예의범절이 몸에 배 ‘경우가 없는 사람’이라는 말을 들으면 수치로 여기고 ‘경우가 밝은 사람’이라는 칭찬을 최고의 영예로 알았다. 그러던 한인들이 서구식 합리주의와 유교적 전통의 안 좋은 면만 합쳐서 만들어 놓은 기형의 다중문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Bad money drives out good money)라는 말이 있듯이 한인들은 캐나다에서 누릴 수 있는 각종 혜택에 대한 권리의식이 높아지는 것과 비례해 정당한 거주민으로서 ‘선량한 관리자의 의무’라던가 ‘신의성실의 원칙’(bona fides; good faith)을 지켜야 하는데 실상은 그렇지가 못하다. 현지인들의 몸에 밴 양보와 배려하는 마음은 우리가 배워야 할 자세다. 대표적인 예가 “앞에 들어가던 사람이 뒤따라오는 사람을 위해 문을 잡고 기다려준다.”는 서구식 미풍양속에서 찾을 수 있다. 하지만 한인들은 뒷사람을 위해 문고리를 잡아주는 에티켓에 익숙하지 않은 것 같다. 이제부터는 다소 시간이 지체된다 하더라도 뒷사람을 위해 꼭 문손잡이를 잡아주는 아량을 베풀며 살았음 좋겠다. 단 1~2초 정도만 기다려 주는 수고를 하면 멋진 신사숙녀로 여겨질 수 있기 때문이다.

 전화 예절이 없다(11%)
(잘 모르는 사람의 전화를 상냥하게 받지 않고 끊을 때도 일방적으로 끊는다)

현대인들은 늘 전화수화기 저편에서 오는 말을 수시로 들으면서 동시에 말로 빚어진 정보를 끊임없이 보내며 살고 있다. 그런데 전화 기본 예절이 부족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갈등과 상처가 의외로 많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된다. 무례하기 짝이 없는 전화응대를 예로 들어보겠다. “따르르릉~~~” → ← “딸가닥, ...” 상대편이 수화기를 집어드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아무 응답이 없다. “여보세요? 김 00씨 댁인가요?” → ← “예”. “안녕하세요? 저는 000라고 합니다. 오늘 저랑 만나기로 약속이 되어있는데 김 00씨가 댁에 계신가요?” → ← ”없는데요”. “김00씨가 어디 가셨는지 아십니까?” → ← ”모르겠는데요”. “.....” → ← “....”. “그럼, 김 00씨 들어오시면..” → ← ”철커덕”(전화 끊는 소리). 불친절한 전화응대는 흔히 겪는 일이 된 지 오래다. 익명성을 바탕으로 하는 전화통화일수록 모르는 사람의 전화를 상냥하고 친절하게 받는 것이 기본 전화예절임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실제 상황에서는 귀찮다는 듯이 전화를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공동체에 불신의 골이 깊으면 깊을 수록 구성원 사이의 언어는 싸늘하게 식게 마련이다. 이를 거꾸로 생각하면 주고 받는 말들이 부드럽고 공손하면 할 수록 공동체의 신뢰는 쌓일 수 있다는 논리가 된다. 휴대전화가 필수품이 된 이 시대를 사는 한인들에게 똑똑한 통화보다 더 중요한 것은 ‘착하고 친절한’ 통화가 훨씬 중요한 의미로 다가온다. “말을 바꾸면 세상이 바뀐다”("Change your words. Change your world.")라는 말의 깊은 의미를 되새겨 보아야 하겠다.

 캐나다 법을 잘 안 지킨다(10%)
(교통법규 무시, 나물 캐지 말라는데 몰려다니며 캔다)

”사회가 있는 곳에 법이 있다”고 일컬어지는 것과 같이 인간의 사회생활을 지탱하고 있는 질서 규범이 법이다. 민주주의 국가인 캐나다는 법치주의(due process of law)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구성원 모두가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철저하게 지키려는 엄격한 준법정신이 절실하게 요청된다. “악법도 법이다”라는 극단적인 시각도 있긴 하지만, 대체로 법은 교통질서, 공중도덕가 같이 사회의 안녕과 질서를 위해서 사회구성원 모두가 지킬 것으로 합의한 약속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인들은 캐나다 교통체계와 법을 잘 모르기도 하겠지만 교통법규를 잘 안 지킨다. 제한 속도를 둔 데에는 안전상 그만한 이유가 있을텐데도 불구하고 한인들은 꼭 10~20km 정도는 더 스피드를 올려서 달리곤 한다. 그리고 스톱(STOP) 싸인 앞에서 풀 스톱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억울한(?) 티켓을 끊는 사례가 매우 많다. 풀 스톱을 하려면 마음 속으로 “하나 둘, 둘 둘, 셋 둘”하고 숨을 한번 골라야 3초가 지난다고 한다. 소소한 일상에서 부지불식간에 법을 위반하지 않도록 각별하게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또 한가지 한인들이 아무렇지 않게 법을 어기는 일이 있다. 한인들이 자주 가는 공원 입구에는 “나물을 뜯어가지 말 것. 적발시 몇천 불의 벌금에 처함”이라는 섬뜩한 경고문이 가끔 붙어있다. 경고문을 제대로 읽고 경각심을 느낀 사람들은 이를 따르려고 한다. 반면에 “나물을 캐겠다”는 목적으로 공원을 찾은 한인들은 경고문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나물 채취를 강행한다. 그것도 혼자 가는 것이 아니라 서너 명이 함께 가서 한 사람은 망보는 사람, 또 한 사람은 운반책, 나머지는 채취조 하는 식으로 분담해서 나물을 캔다. 채취하는 나물도 철따라 고사리, 산마늘, 머루, 고비, 차가버섯 등 종류가 다양하다. “한국이라면 산나물 채취가 아무런 법적 제약을 받지 않는다. 다 살겠다고 하는 건데 뭘 그리 야단이냐”며 항변하기도 하지만 캐나다에선 캐나다 법을 따라야 한다.

 나와 다른 의견을 잘 받아들이지 않는다(10%)
(건전한 토론 문화가 없다)

민주주의의 기본 도구 중의 하나가 건전한 토론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한인들은 토론문화에 익숙하지 않다. 서로 상충되는 의견을 조율하면서 합의점을 도출해내는 토론에 익숙하지 않을 뿐더러 종종 싸움으로 번지고 사이가 틀어지기도 한다. 상대방을 지배하려 드는 욕구가 강하다 보니 듣기보다는 내말만 하려고 든다. 그리이스의 위대한 철학자이자 설득의 달인 소크라테스는 말투가 어눌했고 더듬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런 그가 상대를 설득하는 비밀은 ‘잘 듣기’에 있었다. 상대방의 말을 절대 반박하지 않았으며 상대방이 옳다고 믿고 주의깊게 들으며 이해가 안 되는 점에 대해 질문을 했을 뿐이라고 한다. 그는 상대방의 어떠한 주장도 옳다고 믿어주려는 이른바 ‘자비의 원칙’(principle of charity)에 충실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화와 토론을 하는 태도에도 기술이 필요하다. 상대방의 눈을 바라보고 따뜻하고 부드러운 인상으로 경청하며 중간 중간에 고개를 끄덕거리거나 “으흠” 또는 “그렇군요.”라는 식으로 잘 듣고 있다는 표시를 해야 한다. 일방적인 주입식 교육에 길들여지고 토론 문화가 아직은 낯설은 사람들에게는 수평적인 대화가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이에 대한 지속적인 훈련 또한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또한 한인들이 자주 범하는 실수 중의 하나는 상대방이 말을 다 끝내지도 않았는데 대화중 말을 끊고 들어가는 것이다. 대화와 토론은 서로 주고 받는 것이기 때문에 막대기 가진 사람의 말이 끝날 때까지는 끼어들지 못하며 막대기를 넘겨 받았을 때 비로소 말할 수 있는 ‘인디안 막대기(Indian stick)’의 지혜를 배울 필요가 있다.

 집단 이기주의가 심하다(8%)
(개교회 제일주의, 가족 이기주의 등)

이기주의(egoism)는 개인주의(individualism)와 다르다. 개인주의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에서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추구하는 민주주의의 기본원리 중의 하나인 반면, 이기주의는 남에게 피해를 끼쳐서라도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을 말한다. 집단 이기주의는 말 그대로 특정 집단이 다른 집단이나 공동체 혹은 국가 전체야 어찌 되든 말든 자기 집단의 이익만을 고집하는 태도나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자기네 집근처에 쓰레기장이나 장애인 학교가 설립되는 것을 극력하게 반대하는 NIMBY(Not In My Back Yard)현상은 대표적인 집단이기주의 특징으로 꼽히고 있다. 캐나다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집단이기주의의 사례로는 교사파업, 쓰레기파업, 우편배달부파업, 의사파업 등을 들 수 있으며 이런 종류의 기능은 하루라도 없으면 시민들의 생활을 곤경에 빠트릴 수 있는 것들이기에 집단 이기주의의 폐해가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한인들이 주로 빠지기 쉬운 집단 이기주의로는 개교회 제일주의와 가족 이기주의를 꼽을 수 있다. 내가 다니는 교회의 성장에만 몰두할 뿐 소외된 이웃과의 사랑나누기에 소홀하다면 이또한 ‘집단이기주의’ 범주에 들어갈 것이며 한인 응답자들도 종교-비종교를 막론하고 일단 공감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가족 이기주의는 내 가족을 위해서는 무슨 수단을 다 동원해서라도 목적을 달성하려 들지만 한 발짝만 밖으로 벗어나면 이웃의 어려움을 보고도 모른체 하는 양상을 볼 수 있다. 개인 이기주의든 가족 이기주의를 비롯한 집단 이기주의든 나만을 생각하는 이기주의는 공동체의 삶을 파괴한다는 점에서 ‘공공의 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본능적으로 이기적인 행위는 자연적인 현상이라고 항변하는 논리도 있지만, 타인과 공동체에 피해를 주는 이기적인 행위는 결국 모두를 불편하게 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이 타인의 권익을 무시하고 자기의 편의와 이익만 추구한다면,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Bellum omnium contra omnes) 상태가 되어 결국 각자의 이기적 의도를 이루지 못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 약속을 잘 안지킨다(4%)

“Pacta sunt servanda”라는 말이 있다. 민사거래법상 중요한 원칙으로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Agreements should be kept)는 뜻이다. ‘약속’(約束)이라는 말 자체가 ‘묶는다’는 의미가 있다. 약속을 잘 지킬 때 ‘신용있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그러므로 사람 사이의 관계에 근본적으로 신뢰가 바탕이 되지 않으면 약속은 성립하기 어려운 것이다. 가장 흔하게 한인들이 약속을 어기는 사례로는 ‘코리안 타임’을 들 수 있다. 약속시간에 맞춰서 오면 왠지 모르게 할일없이 한가한 사람으로 보일까봐 그러는 심리가 작용하는 것 같다. 늘 어떤 모임에 가보면 서로 앞다퉈 제일 마지막에 스타처럼 나타나 스폿라이트를 받고 싶은 심리가 저변에 깔려있다. 비즈니스 세계에서건 개인적인 용무에서건 신뢰를 얻으려면 약속시간 5분 전에 미리 도착해야 한다는 걸 명심했으면 좋겠다. 또한 한인들은 약속을 해 놓고도 약속 자체를 잊어버리거나 사전 통보없이 일방적으로 파기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예를 들어보겠다. 어느날 A는 평소 알고 지내던 B로부터 이런 저런 대화 말미에 “다음 주에 식사나 한번 합시다.”라는 내용의 전화 한통을 받았다. 그런데 다음 주 무슨 요일 몇시에 어디서 만나자는 내용이 빠져 있었다. 그래서 A는 다음 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점심시간을 전부 비워놓고 B의 전화를 기다렸다. 전화는 끝내 오지 않았다. 하도 이상해서 일요일에 A는 B에게 전화를 걸어 “지난 주에 식사하자고 약속하지 않았소?”라고 물었다. 돌아온 B의 대답은 이랬다. “우리가 식사하자고 약속했었소?” “....” A는 입을 다물었다. 약속을 잘 지키자.

 허풍이 심하다 (3%)

한국에서의 제법 높았던 사회적 지위가 캐나다에 와 급전직하한 대부분의 한인들은 처음 얼마동안은 자존감 상실과 열등감에 시달리게 마련이다. 물론 종교생활을 통해 마음을 수양하고 모든 걸 내려놓는 평안한 마음을 이루기도 하지만 무의식 속에 잠재해 있는 컴플렉스마저 없어지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무너진 자존감을 세우기 위한 방편으로 허장성세(虛張聲勢)가 심한 경우를 보게 된다. 사람들과 대화할 때 자신을 부풀려서 허풍(虛風)을 떨게 되는 것이다. 허풍이 심해지면 본인이 만든 과장된 말을 진실이라고 믿는 ‘공상허언증’(Pseudologia Fantastica)에까지 이르게 된다. 처음엔 자신을 과시하거나 관심받기 위해 시작한 과장된 말이 나중에는 소설과 같이 정교해지며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이 없는 말을 부풀려서 과대포장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공상허언증까지 가는 심한 경우가 그리 많지는 않지만 허풍이 심한 사람은 우리 주변 어디에서나 발견할 수 있다. 무언의 영웅주의와 소극적 거짓말을 양념으로 해서 자신이 쌓아놓은 높은 자의식의 성벽에 갇혀있는 어두운 마음을 깨고 나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 보일 수 있는 솔직한 당당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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