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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촛불

“소리 없이 어둠이 내리고/ 길손처럼 또 밤이 찾아 오면/ 창가에 촛불 밝혀 두리라 외로움을 태우리라….”

1980년대 크게 유행했던 정태춘의 노래 ‘촛불’의 일부다.
나를 버리신 내 님 생각에 촛불만 하염없이 태우면서 보내는 긴 밤의 정서. 뭔가 지독히 허전할 때 우리는 촛불 켜는 밤을 생각할 수 있다.
그 공감대가 당대의 최고 유행가로 이어졌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겠다.


1930년대 선보인 시인 신석정의 시집 『촛불』도 그와 다르지 않다.


일제시대의 암울한 현실에서 ‘어머니’와 ‘먼 나라’의 이미지를 불러 내세운 시인의 감성도 본원적인 무엇인가를 찾으려는 간절함에서 비롯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불을 켠다는 것은 어둠 속에서 진실함을 갈구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행동이다.
종교적인 심성에서 볼 때 불을 켠다는 행위는 거룩하다.


가난한 사위국(舍衛國)의 한 여인이 석가모니가 한 사원에 찾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어려운 동냥 끝에 등 하나를 밝혀 공양한다는 얘기는 유명하다.
부자들이 마련한 불꽃은 새벽이 되자 모두 사그라들었지만 이 여인의 간절함이 담긴 등은 홀로 빛을 발하고 있었다는 ‘빈자일등(貧者一燈)’의 고사다.


석가모니가 열반에 들면서 남긴 말은 “내 스스로의 등을 밝히고, 영원불변의 법등을 밝혀라(自燈明, 法燈明)”다.
이 가운데 등(燈)을 달리 해석해야 한다는 이론도 존재한다.
등을 섬(洲)으로 번역해야 한다는 지적이지만 후대에 내려오면서 부처의 말씀은 ‘불을 밝히는 등’으로 더 많이 전해진다.


강화도의 전등사(傳燈寺)가 좋은 예다.
최고의 지혜를 닦은 사람이 자신의 등을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 전하는, ‘등이 등으로 전해지는(燈燈相傳)’ 상황을 일컫는 말에서 유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등을 밝힌다는 것은 결국 ‘제대로 보자’는 뜻일 게다.
어둠으로 가려지는 인식의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 내 마음의 불을 밝히고, 선인들의 지혜가 지닌 광명을 찾아야 한다는 말이다.
불교식으로 말하자면 결국 사물을 아무런 편견 없이 제대로 살핀다는 ‘중관(中觀)’의 상태일 것이다.


쇠고기 파문으로 불거진 촛불시위가 줄어들 줄 모른다.
중관이라는 지혜의 룰을 따르자면 이제 촛불 켜는 국민들은 식탁 불안의 반대편도 살펴야 한다.
국내 축산농가의 아픔을 알면서도 쇠고기 수입 문호를 개방할 수밖에 없었던 한국의 전략적 선택 말이다.


아울러 청와대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과 함께, 이 정부가 아직은 출범 3개월 남짓하다는 점도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촛불 행렬이 청와대로 향하거나 섣부르게 정권퇴진을 외치는 상황으로 치닫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
잘못 다룬다면, 불은 곧 재앙일 수 있다.


유광종 국제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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