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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칼럼] “없음과 감사”
이대열 목사 (열매맺는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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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사스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7/11/13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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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추수의 계절 11월이 시작되었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추수의 계절에 감사가 실감이 날 것이다. 씨를 뿌리고 가꾸는 과정에서 바람과 햇볕과 물과 땅의 협력 없이는 열매를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을 경험하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이 생존에 필요한 식량은 자연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어떤 면에서 인간이 개량하지 않아도 자연은 스스로 인간에게 필요한 먹거리를 제공한다. 깊은 산속에서도 자세히 살펴보면 먹거리와 약초가 널려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바다에서도 강에서도 언제든지 낚을 수 있는 고기들이 살고 있다.
이렇게 보면 인간은 자기 스스로 먹거리를 얻는 것이 아니다. 전적으로 자연이 제공하는 먹거리와 치료제로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사람들은 오랫동안 자연을 숭배해 왔다. 태양이든 달이든 아니면 짐승을 신으로 섬겨왔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은 그 자연을 숭배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자연을 창조하신 분이 인간에게 계시하며 인간을 만났다. 야훼의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자연 속에서 야훼가 하나님 되심과 하나님의 능력을 발견하라고 도전하였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롬 1:20)

인간은 자연을 향하여 감사를 드릴 것이 아니라 그 자연을 창조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경배를 드려야 하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추수의 계절에 하나님께 감사로 예배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행위다.
그렇다면 추수의 계절에 하나님께 무엇을 감사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자.

1. 생존에 대한 감사
2017년 한해 동안 먹이시고 입히시며 노동하며 공부하며 살림살이를 할 수 있도록 ... 생존할 수 있도록 지혜와 힘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하자.

2. 열매에 대한 감사
수입과 지출을 빼고 모자라지 않고 더 많은 이익을 냈다면 그로 인하여 감사하자. 학생은 성적이 생각보다 더 좋았다면 그로 인하여 감사하자. 취업준비생이 직장을 구할 수 있었다면 그로 인하여 감사하자. 또 한 해 동안 살림살이가 더욱 풍성해 졌다면 감사하자. 질병으로부터 고침을 받았다면 감사하자.
그런데 모든 사람들이 이런 감사를 드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오히려 어떤 사람들은 아무것도 감사할 조건이 없는 상황에서 추수의 계절을 맞이할 수 있다.

3. ‘없음’에 대한 감사
수입과 지출을 빼니 오히려 적자를 보았다. 손해를 본 것이다. 학생은 성적이 만족스럽지 않을 수 있다. 취업준비생은 열심히 직장을 구하였지만 여전히 실업자 신세다. 한해를 결산해 보니 살림살이가 더욱 핍절해져 있다. 어떤 분은 여전히 질병의 고통 속에 있다.
한마디로 감사할 것이 없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속에서 추수감사절이라는 형식에 얽메이어 억지로 감사를 드릴 수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이렇게 모든 것이 없는 상황 속에서도 감사를 드린 하나님의 사람이 있다. 하박국 선지자다. 그가 현재적으로 경험하고 있는 상황은 한마디로 없음이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17)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18) (합 3:17-18)

하박국 선지자가 경험하고 있는 유대 땅은 모든 것이 황폐하여 ‘없음’의 땅이었다. 그러나 하박국은 이 ‘없’음의 상황 속에서도 결코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쁨과 즐거움을 표현하고 있다.
그렇다면 하박국의 기쁨과 즐거움의 근원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이다. 어떻게 하나님이 기쁨과 즐거움의 근원이 되시는가?
첫째, 하나님은 구원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구원;은 히브리어 ;예솨’를 사용하였는데 이것은 자유’, ‘해방’, ‘번영’, ‘안전’, ‘구원’으로 번역될 수 있다. 하나님은 성도를 자유케 하시며 번영케 하시며 구원을 베푸시는 분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하박국은 유대가 바벨론 제국으로부터 멸망할 지라도 결국 유대를 해방시킬 것을 바라보며 구원의 하나님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구원은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에 관한 것이었다. 그것은 물질적인 결핍과 현세적인 고통을 극복할 수 있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갈망이었다. 그 하나님 나라에서는 더 이상 ‘없음’은 존재하지 않는다. 질병과 고통과 배고픔을 극복한 나라다. 그 하나님의 구원을 소망하게 되고 그로 말미암아 기뻐할 수 있었다.
둘째, 하나님은 나의 힘이기 때문이다.
지금 하박국은 생존할 수 있는 기반을 다 잃어버렸다. 그의 두 발은 마치 수렁에 빠져 있는 것과 같다. 그러나 하박국은 하나님의 통치하심을 신뢰하였다.
‘주 여호와’ 라는 말은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시라는 말이다. NIV 성경에서는 ‘The Sovereign LORD’ 로 번역했다. 하나님이 전능하신 통치자가 되시고 언약을 지키시는 분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현재적으로는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감사할 조건이 없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나의 주인이시요 나를 통치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신데 무엇이 두렵겠는가?
그러므로 하밥국은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다’ 고 고백한다. ‘힘’은 히브리어로 ‘하일’이다. 이 단어는 ‘힘‘, ’능력‘, ’부‘, ’군대‘, ’재물‘, ’권세’ 로 번역될 수 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노래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합 3:19)

아무것도 없는 수렁과 같은 곳에서 하나님이 나의 두발을 암사슴의 다리와 같게 하셔서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실 것이라는 고백이다. 하밥국은 ‘없음’속에서 하나님의 회복과 은총을 바라보면서 힘을 얻고 있다.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렸지만 후손을 남기지도 못한 채 살해당하였다. 히브리서의 평가에 의하여 아벨은 믿음으로 하나님을 예배한 자였다. 그러나 아벨은 세상속에서 철저하게 ‘없음’을 경험하였다. 살해당함과 후손이 없는 상태를 상상해 보자. 그런데 아벨은 히브리어로 ‘헤벨’이고 그 뜻은 ‘텅 빈 상태 (Vanity)’즉 ‘없음’이다.
그리고 솔로몬은 세상의 모든 화려하고 즐거운 것을 경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살이가 다 ‘헛되고 헛되다’고 고백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헛되다”도 히브리어로 ‘헤벨’이다. ‘헛되다’는 것은 ‘없음’을 경험하는 것이다. 솔로몬은 세상에서 모든 것을 소유한 자처럼 살았지만 결국 ‘헤벨 (없음)’의 인생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솔로몬은 ‘없음’을 깨닫는 순간 하나님을 발견하였고 ‘없음’속에서도 하나님의 선물과 은혜를 발견할 수 있었다. 왜 그런가? 하나님은 ‘없음 속에서 창조의 활동 (creatio ex nihilo)’ 을 하시기 때문이다.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께서 ‘무 (헤벨, 없음)’에서 ‘유’를 창조하신 결과이다.
우리가 추수의 계절에 ‘뚜렷한 열매가 없는 상황’즉 ‘없음’을 경험한다고 해서 인생을 포기하거나 절망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없음 속에서 창조적인 활동(creatio ex nihilo)’ 을 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자시요 통치자시요 힘이시다.

이대열 목사 (열매맺는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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