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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티 포럼] '선한 사마리아인'을 처벌하는 반이민 정권

굶주리고 탈진해서 죽어가고 있는 사람을 만난다면 당신을 어떻게 할 것인가? 그를 살리기 위해 물과 음식을 나누어 줄 것인가? 그가 지친 몸을 회복할 수 있도록 쉼터를 제공할 것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저 없이 그렇다고 말할 것이다. 일단 사람의 목숨을 구하고 보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성경에 나오는 '선한 사마리아인'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강도에게 공격을 당하고 길에 쓰러져 있는 여행객을 만난 사마리아인이 아무 조건없이 그를 도와준 것은 위기에 처한 사람을 만났을 때 우리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에 성경이 알려주는 답이다.

하지만 트럼프 정부 하에서 선한 사마리아인이 칭송을 받기는커녕 중범죄자로 감옥에 갈 위험에 처해 있다. 스캇 워렌(사진)이라는 사람이 바로 지금 이 순간 겪고 있는 일이다. 아리조나 주립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스캇 워렌은 '노 모어 데스 (No More Deaths)'라는 인도주의 구호단체의 자원봉사자로 활동해 왔다. 지난 해 1월 체포되어 연방법 상의 중범죄 혐의로 기소된 그의 재판이 지금 진행되고 있다. 그가 저지른 '범죄'는 수백 마일을 걸어 국경을 넘어 오다 지친 이주민들에게 물과 음식과 쉴 곳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만약 유죄판결을 받게 되면 그는 최고 20년의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다.

국경지대 죽음의 사막



멕시코와 미국의 국경지대에 있는 소노라 사막은 캘리포니아와 아리조나 주에 걸쳐 있는 북미에서 가장 큰 사막이다. 한낮에는 기온이 섭씨 49도(화씨 120도)까지 올라가면서 지옥처럼 뜨거워지고, 밤이 되면 기온이 급강하 해서 일교차가 극심한, 사람이 견딜 수 없는 열악한 환경이다. 물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바로 이 험하고 외진 곳을 목숨을 걸고 건너는 사람들이 있다. 국경을 넘어 밀입국하는 서류미비 이주민들이다.

트럼프 정부 훨씬 이전인 1990년대 중반부터 진행 되어온 강력한 국경 통제로 인해 미국으로 밀입국 하려는 사람들은 국경순찰대의 눈을 피해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더 험악하고 외진 곳을 찾게 되었다. 국경을 넘으려는 사람들은 더 위험한 지역으로 내몰렸다.

그 결과 멕시코 접경 지대의 소노라 사막은 지난 20여 년 동안 치사율이 가장 높은 죽음의 사막이 되었다. 소노라 사막을 건너 미국으로 밀입국 하려던 수많은 사람들이 3일에서 5일이 걸리는 여정 동안 지쳐서 목적지에 다다르기 전에 죽음을 맞는다. 이들의 시신과 유골이 사막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아리조나 투산에 있는 피마 카운티 검시관 사무소에 따르면, 2000년부터 2017년 말까지 이 일대에서 3000구에 가까운 유해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발견된 유해는 빙산의 일각 일 뿐, 사람들 발길이 닿지 않는 외진 곳에 아직 발견되지 않은 시신이나 유골이 많을 것이다.

인도주의 구호 활동에 처벌

스캇 워렌과 같은 자원봉사자들은 이 죽음의 사막에서 단 한 사람의 목숨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이주민들이 지나갈 만한 통로에 물통과 비상 식량 등을 놓아두는 활동을 해왔다. '노 모어 데스'라는 단체의 이름처럼 더이상의 죽음을 막자는 인도주의 구호 활동을 벌인 것이다. 이런 활동은 최근에 시작된 일이 아니다. 소노라 사막에 물과 비상식량을 놓아두고 긴급 구조 활동을 하는 일은 수십 년 동안 국경지대 마을 사람들에게 인도적 차원에서 당연한 일로 여겨져왔다.

하지만 트럼프 정부가 들어선 후 이주민 혐오 선동이 노골적으로 진행되면서 상황이 급격히 바뀌었다. 허가증 발급이 자원봉사들에게 거부되고, 심지어 국경순찰대원들이 자원봉사자들이 남겨 놓은 물통의 물을 땅에 쏟아 부어버리기도 한다. 그 뿐 아니라, 허가증 없이 들어가 물과 비상식량을 남겨두었다고 자원봉사자들이 경범죄로 기소되어 유죄판결을 받는 경우도 2017년 이후 늘어나고 있다. 수백 달러의 벌금과 15개월의 보호관찰형을 받은 경우도 있다고 한다.

20년형 가능 중범죄 기소

이 와중에 워렌은 경범죄가 아닌 20년 징역형이 가능한 중범죄로 기소가 된 것이다. '노 모어 데스'가 국경순찰대원들이 일부러 물통의 물을 쏟아버리는 것을 폭로하는 리포트를 발표한 직후인 작년 1월, 워렌은 두 명의 서류미비 이주민과 함께 체포되었다. 그는 이주민들이 사막을 건너다 얻은 열사병과 발의 물집을 치료하려고 '노 모어 데스'의 구호소에 머무는 것을 돌보고 있었다.

지난 해 트럼프 정부가 불법이민에 대한 소위 '무관용 원칙' 의 일환으로 국경에서 밀입국을 시도하다 체포된 부모와 아이들을 강제로 격리한 것이 폭로 되면서 여론의 화살을 받고 한 발 물러선 적이 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125명 시설에 900명 수용

단적인 예로 지난주 CNN 보도에 따르면, 텍사스 엘파소에 있는 125명 수용 정원인 이민 구치소에 900명 가까이 수용되어 있다고 한다. 8명 정원의 방에 정원의 5배가 넘는 41명을 수용하고, 35명을 수용하는 방에 125명 집어 넣는 등 그야말로 사람들을 한데 우겨넣고 있다. 이런 비인간적인 환경에서 사람들은 누울 자리는커녕 제대로 서있을 수도 없어서 숨을 쉬기위해 변기 위에 올라가 서 있기도 한다고 한다.

과밀 수용으로 위생 상태가 엉망이 되면서 이주민들의 건강과 안전에 심각한 문제를 초래하고 있다. 2018년 말까지 트럼프 정권 2년 동안 22명이 이민 구치소에서 사망했다. 이 달 들어서 며칠 사이에 이민구치소에서 사망한 사람의 수가 벌써 3명이나 된다. 희생자 중에는 난민 신청을 하려고 엘살바도르에서 온 트랜스젠더 여성이 있다. 계속 가슴 통증을 호소했지만 치료를 못 받았던 이 여성은 결국 6월 1일 사망했다. 성소수자 권리를 지지하는 프라이드 달인 6월의 첫 날, 폭력과 박해를 피해 찾아 온 땅에서도 그녀는 인간다운 대접을 받지 못하고 쓸쓸히 세상을 떠났다.

광기 어린 반이민 정책

트럼프 정부가 보내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폭력과 가난을 피해 오는 난민과 이주민에게 미국에 들어올 생각을 아예 하지 말라는 것이다. 미국에 발을 딛는 순간 당신들이 경험할 현실은 본국에서 겪었던 폭력과 가난 이상으로 비인간적이고 처참할 것이라는 메시지이다.

워렌의 경우는 그를 본보기 삼아 우리 모두에게 경고를 하는 것이다.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는 사람들 뿐 아니라, 국경 안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경고하고 있다. 감히 이주민에게 편의 제공을 하지말라고. 그러면 워렌처럼 감옥에 갈 수도 있다고. 죽어가는 사람이 있어도 그가 서류미비자라면 눈감고 외면 하라는 얘기다.

워렌이 기소된 죄목 중 하나는 서류미비자 은닉죄이다. 죽어가는 사람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물과 음식과 쉼터를 제공한 것이 은닉죄라면, 서류미비자에게 기타 다른 편의를 제공하는 것은 어떤가? 워렌을 기소한 논리대로라면 그것 또한 은닉죄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가족 중 일부는 시민권이나 영주권 등 합법 체류신분을 가졌지만, 일부는 서류미비자인 경우가 많다. 한인 가족들 중에서도 그런 경우는 부지기수다. 워렌의 행위가 유죄라면, 서류미비자 가족과 같이 살면서 함께 밥을 나누어 먹는 것도 은닉죄에 해당 될 수 있다. 그러면 이민자 커뮤니티에 사는 우리 모두는 잠재적 범죄자가 되는 것이다. 이제부터는 누군가에게 선의를 베풀기 전에 그들의 체류자격을 먼저 확인해야 할지도 모른다.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그 말도 안되는 소리가 지금 바로 이 곳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목이 말라 죽어가는 사람에게 물을 건네는 것이 징역 20년에 처해 질 수 있는 중대한 범죄라고 하는 것을 나는 광기라는 말 이외에 달리 표현할 수가 없다. 도대체 이 광기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예측하기 힘들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지금 이 광기를 막아내지 않는다면,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 가까운 미래에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칭송 받아야 할 선한 사마리아인이 범죄자로 감옥에 갇힐 운명에 처한 것처럼 말이다.


남수경 / 공익·인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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