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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삶] 뭉클함에 얼비치는 잔상들

저녁이 쉽게 오는/ 사람에게/ 시력이 점점 흐려지는/ 사람에게/ 뭉클한 날이 자주 온다//희로애락/ 가슴을 버린 지 오래된/ 사람에게/ 뭉클한 날이 자주 온다// 사랑이 폭우에 젖어/ 불어터지게 살아온/네가/나에게 오기까지 힘들지 않은 날이 있었을까

-이사라 시인의 '뭉클'부분

이른 저녁을 먹은 난 후 국화차 한 잔을 들고 거닐어 보는 뒷마당. 계절과 계절이 교차하는 지점 아니 계절과 계절이 스치며 제 갈 길로 향하는 지점엔 쇠하려는 것들과 승하려는 것들 사이에 은근한 기(氣) 겨루기가 엿보인다.

장미는 모든 욕망을 놔버린 색깔로 무심하고 베고니아는 갈 길이 먼 여행자처럼 붉은 기운을 더해 간다. 떨어져 내린 꽃잎들은 시간의 잔해처럼, 그리움을 토대로 펼쳐지는 연극처럼 다양한 의미로 뒤척인다.



계절은 다른 계절을 만나야 제 위치를 알게 된다. "초록이 지쳐 단풍들 채비"(서정주 시인의 시)를 하는 푸릇한 것들의 순응을 바라보는 일은 미비하나마 존재의 자의식이기도 하다. 식어가는 국화차의 경로처럼 우린 어떤 경로를 따라 흘러간다.

경로를 따라 흘러가는 것, 그걸 일상이라고 말해 본다. 눈부심이나 찬란함이 아닌 구수한 밥 냄새 같은 일상에서 우린 대부분을 산다. 그 일상의 저력으로 삶은 사람을 키운다. 화려한 어떤 인생을 흠모해 보기도 하지만 이내 자족하며 일상의 터를 분주하게 고른다. 그 일상에서 마주치는 뭉클, 추임새 같은 마음의 굽이침, 뭉클함이야말로 삶의 뼈가 되고 살이 되어 준다. 이 뭉클이 없었다면 아마도 마음은 성장을 멈춘 난쟁이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딸로 태어나 누군가의 어미로 살아가는 지난하고 고단한 여정. 그 만만치 않은 길에서 만나는 뭉클은 감탄사이며 권태의 탈출구이며 누추함을 보송보송 말리는 일광욕이기도 하다. 존재 가치가 희미한 변방의 여성시인으로 살아가며, 전방위 역할인 모성애의 실현과 시적 파동의 비행을 열망하는 두 길 사이에서의 갈등에서 뭉클은 요긴하고 변함없는 자기애의 표상이 되어 주었다.

어미란 밥의 총수이다. 먹이는 임무를 부여 받은 자다. 피하고 싶은 이 의무를 마다 할 수 없는 이유는 밥이 주는 뭉클 때문이다. 쌀을 씻다가 떨어져 내린 한 톨의 쌀, 쌀 한 톨 속에 응축된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이 뜸 들어가는 냄새, 그 냄새는 뭉클이다. 밥은 밥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만 밥의 상징성은 가족이라는 질기고 벅찬 관계의 아우라다. 내가 전기밥솥을 마다하고 냄비 밥을 선호하는 것은 뜸들어가는 밥 냄새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갓 지어낸 밥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바라보는 일은 뭉클함이다. 살과 뼈와 생각과 마음을 만들어 주는 밥의 무한한 효용성, 세상의 어떤 예술이나 교훈이 밥의 힘을 능가 할 수 있을까.

어미에게 밥은 미션이다. 아이들의 입을 책임지는 무거운 임무를 지치지 않고 해낼 수 있는 건 고단함 중에도 선물처럼 마음이 건네주는 뭉클함을 다정인양 끌어안고 행복하게 곤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숨은 그림 찾기처럼 오래 바라보면 보여 지는 삶의 잔상들이 고맙기 때문이다.

파괴의 여신이라 불리는 칼리는 지구의 모든 피조물들을 부수고 물어뜯고 죽이다가도 아이 우는 소리가 나는 저녁이면 밥하러 집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신화조차도 여신에게 밥하는 의무를 벗기지는 못한 것 같다. 어미란 반복적이고 소모적인 일상을 성지 삼을 수 있는 유일한 종족이다. 수천 년이 지나도 좀체 진화가 안 되는 질긴 종족이다.


조성자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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