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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무엇이 우리를 목마르게 하는가

이기희
이기희 

[시카고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9/10/29 16:34

사는 게 목 마르다. 돈 명예 권력 행복 사랑에 목이 마르다. 찬물을 벌컥 벌컥 들이켜도 생의 갈증은 좀체로 가라앉지 않는다. 무엇을 위해 무엇 때문에 이토록 허덕이며 살아야하나. 별일 아닌 것에 성질내고 지푸라기만한 일에 목숨 걸고 매사 잡을 수 없는 것과 갈등하는지. 별것 아닌 것이 별것이 되고 소중하지 않는 것들이 소중해지고 지키려 해도 지켜지지 않는 것들 앞에 초라해진다. 인생은 비교 분석으로 속단 할 수 없다. 겉보기와 크기, 무게로 측정이 불가능하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는 한반에 학생이 60명 정도였다. 키 작은 순서대로 줄 서면 내 번호가 53에서 56번 사이였으니 키가 큰 편에 속한다. 동그란 얼굴에 피부는 하얀 편이고 꺽다리는 아니지만 키도 제법 크고 통실통실 했다. 그런 내가 미국에 오자마자 완연히 다른 인물로 변신했다. 내 애칭은 ‘달콤하고 작은 것 (Sweet little thing)’! 서양 사람들 눈엔 나는 사람이 아니라 방실방실 웃는 까만 머리 노란 피부의 작은 인형으로 둔갑했다.

고백컨데 학창시절에는 나도 한가락 했다. 선머슴에 왈패 수준이어서 남학생들이 부른 내 별명은 ‘야생 짐승(Wild animal)’이다. 같은 사람이 자기 구역을 벗어나면 똥개보다 점수를 못 얻는다.

뿌리 내리고 싶었다. 소명인지 사명인지 운명인지 모르지만 돌팔매처럼 멀리 떨어져 나와도 푸른 잎새로 하늘까지 닿는 무성한 나무로 살고 싶었다.

사막은 라틴어로 ‘버려진 땅(dēsertum)’이란 뜻이다. 사막에는 비가 오지 않는다. 초원에서 새가 울고 꽃이 피고 열매 맺어도 사막에는 모래바람이 분다. 버려진 땅에는 나무 한 그루 없다고 말하지 마라. 거칠고 황량한 사막 모래 언덕에 묻혀 뿌리 내리는 어린 나무를 보라. 죽은 듯 서 있지만 나무는 살아있다. 죽을 만큼 힘들다고 엄살 부리지 마라. 선인장은 잎을 퇴화시켜 가시로 만들어 수분과 양분의 손실을 줄여 물이 증발 되는 것을 막는다.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잎이 가시가 됐을까. 죽는 것이 사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모래바람이 아무리 거세게 몰아쳐도 뿌리만 살아있으면 생명은 싹을 틔운다. 생의 끝없는 사막에서 나홀로 서 있어도 목숨줄 단단히 잡고 희망을 꺾지 않으면 살아남는다.

‘나의 지식이 독한 회의를 구하지 못하고/ 내 또한 삶의 애증(愛憎)을 다 짐지지 못하여/ 병든 나무처럼 생명이 부대낄 때/ 저 머나먼 아라비아의 사막으로 나는 가자/ 거기는 한 번 뜬 백일이 불사신 같이 작열하고/ 일체가 모래 속에 사멸한 영겁의 허적(虛寂)에 /(중략)/ 밤마다 고민하고 방황하는 열사(熱沙)의 끝/ 그 열렬한 고독 가운데/ 옷자락을 나부끼고 호올로 서면/ 운명처럼 반드시 나와 대면케 될지니-유치환의 生命의 書(1章) 중에서

오아시스는 지층을 뚫고 지하수가 지표면에 올라와서 샘터를 만든다. 오아시스의 물은 마르지 않는다. 물이 증발 되더라도 지하수가 고갈 되지 않는 한 오아시스 물은 마르지 않는다. 사막의 나무는 안다. 모래바람이 몰려와 죽음으로 사지를 덮는다 해도 지하수 깊게 뿌리박고 목만 내 놓고 있으면 생명줄 지킬 수 있다는 것을. 산다는 것이 아프고 힘들어도, 희망이 절망이 되고, 소망이 부서진 가지처럼 삭풍에 흩날려도 죽은 듯 살아있어야 한다는 것을.

깊고 깊은 지축에 뿌리 박고 지하수로 수액을 빨아올리는 사막의 나무를 보라. 오아시스 찿아 구원의 발길 돌리는 자는 생명의 지하수 가슴으로 퍼 올린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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