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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삶] 마음의 근력

조성자 / 시인
조성자 / 시인  

[뉴욕 중앙일보] 발행 2019/10/30 미주판 12면 기사입력 2019/10/29 17:31

타살이라고 할 증거가 없으면 자살로 본다/ 법의 말씀이다// 어느 자살도 깊이 들여다보면 타살이라고 할 증거가/ 너무 많다// 심지어 내가 죽인 사람도/ 아주 많을 것이다// 자기 손으로 밧줄을 목에 걸었다 할지라도/ 모든 죽음을 잘 살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안다// 자살도 타살도/ 금환일식이다

-김승희 시인의 '서울의 우울3'전문

한국의 자살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 국가 중 1위라는 사실은 오래된 일이다. 2005년부터 1위 자리를 유지하다 2017년 잠시 주춤하더니 다시 선두로 올라 선 모양이다. 자살률은 그 사회가 얼마나 살만한 곳인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숫자로 사회현상의 리트머스 시험지 같기도 할 터여서 염려가 클 수밖에 없다.

자살이란 개인의 병적 징후가 초래하는 결과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경제 상황과 공동체 안에서 소외와 무관심, 스트레스와 불평등이 불러오는 나쁜 파장이기도 하다, 범국가적 예방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 수가 줄어들지 않는 것에 대해 '베르테르 효과'라는 진단을 하기도 한다. 유명 연예인들의 자살을 보고 모방 자살로 이어지는 경우가 근래 부쩍 많아졌다고 한다.

얼마 전 황병승 시인이 유명을 달리했다. 시집 '여장남자 시코쿠' '트랙과 들판의 별'로 주목을 받았고 새로운 감수성을 드러내는 대표적 젊은 시인으로 꼽히던 그가 문단 내 미투 폭로에 휘말리면서 정신적 고통을 이기지 못했던 것이다. 그의 죽음에 관해 시인 박진성은 '이 죽음은 명백한 사회적 타살'이라는 글을 SNS에 올려 논란의 여지를 남기기도 했다.

이유 없이 삶을 마감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사람을 살게 하는 힘이 있듯이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이유들도 많다. 한 사람에게 가해지는 공동체 혹은 사회적 압박감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사람이 있다면 타살의 흔적이 남아있는 금환일식임을 누구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지나치게 타인의 삶에 왈가왈부하는, 그러면서 질타하고 비난하며 매도하는 일을 즐기듯 마스크를 쓰고 있는 익명의 다수 때문에 자살이라는 극단의 선택을 하게 된다면 이 또한 명백한 타살이라고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자살이란 개인의 병적 징후가 주는 나쁜 결과이기도 하겠지만 그 못지 않게 타인의 시선, 혹은 밀려오는 사회적 눈총 같은 것의 결과이기도 하니 말이다

SNS 악성 댓글은 얼굴 없는 저격수다. 악의적이고 검증이 되지도 않은 일로 한 사람을 코너로 몰아 넣고 몰매를 주는 일이 허다하다. 유명세를 타는 사람들이 제일 먼저 겪는 일이 악성 댓글의 피로감이라고 한다. 누군가 장난으로 던진 돌에 죽는 개구리처럼 심심풀이로 던진 글이나 말들이 한 인생을 파국으로 몰고 가기도 한다.

내가 재미로 던진 말의 돌멩이를 맞고 누군가 일어나지 못한다면 이 또한 타인의 삶을 파괴하는 짓이다. 내가 경멸의 시선으로 쏘아 본 누군가가 그 눈빛의 화살을 맞고 쓰러진다면 이 또한 한 인생을 짓밟는 범죄일 것이다.

그렇더라도 자살이란 마음의 근력이 약한 탓이라고 생각된다. 어려움과 위험이 닥친다고 다 극단의 선택을 하지는 않는다. 몸의 근력 못지 않게 강한 마음의 근력을 만들어 가야 한다. 모두가 나에게 호의적 일수는 없지 않은가. 비난이나 질타가 몰려온다면 펀치를 막아낼 맷집을 더 단단히 키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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