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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고] 진영논리 앞세운 '불통'의 글

문영호 / 변호사
문영호 / 변호사 

[LA중앙일보] 발행 2019/10/30 미주판 21면 기사입력 2019/10/29 19:43

"오늘도 어김없이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며 두 번째 저서를 준비하고 있다. 지난 10여년 동안 이런 새벽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고 땀을 흘리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다는 각오로 글을 써 왔다."

연초 모 일간지 '독자 에세이'란에 실린 글이다. 필자는 어린 시절 가난 때문에 중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구두닦이·신문팔이·공사판 막일 등으로 생계를 이어온 60대 나이의 빌딩 경비원이다.

결혼 후 자녀들을 데리고 도서관을 드나들며 책과 신문을 읽은 게 오늘의 그를 만들었다고 한다.

'책을 보면 독자지만 책을 내면 작가가 된다'라는 글귀에 꽂혀 시작한 글쓰기에 재미가 붙어, 일간지나 자치단체 소식지 등에 수시로 기고해 왔다고 한다.

좁은 공간에서 추위와 졸음을 쫓으며 쓰는 그에게 글쓰기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 현실의 고달픔을 잊는 도피수단이 된 적도 있겠지만, 내면 깊숙이 침잠하는 시간이 되지 않았을까. 글쓰기가 다져준 자존감 덕분에 그는 당당하게 세상과 소통할 수 있었으리라.

소통하려고 쓴 글이라면 공감을 얻어야 한다. 그러자면 글에 진정성이 담겨야 한다. 가면을 벗고 알몸을 드러낼 만큼 당당해지지 않으면 읽는 사람의 공감을 끌어낼 수 없다. 다양한 글감을 동원할 수 있으면 진정성이 더 부각될 수 있다. 경비원의 글이 두루 공감을 얻은 건, 아마도 그의 진정성을 파란만장 인생역정이라는 글감에 담았기 때문이리라.

공감은커녕 당혹감을 느끼는 글을 접할 때도 있다. 현안 문제에 너도나도 목소리를 높이는 요즈음, 단톡방 글 중에 그런 경우가 있다.

이념적으로 편향된 진영 논리가 두드러지게 드러난 글은 읽기가 거북하다. 소통 창구에 빗장을 걸 수 없으니 그런 글에 속수무책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일간지 기명 칼럼처럼 글쓰기 에티켓이 검증된 글에 더 애착이 간다. 균형 잡힌 시각의 글에 공감하다보면 '편가르기'를 부추기는 글은 점점 더 멀리하게 된다.

공감지수 높은 글을 읽다보면, 자신이 썼던 글이 부끄럽게 느껴진 적이 많다. 언젠가 신문에서 참회의 심경을 털어놓는 인터뷰 기사를 읽다가, 비슷한 포맷의 글을 수없이 썼던 검사 시절이 떠올랐다. 심문 조서가 그런 글이다.

검사가 던지는 질문에 답하는 말을 요약 기재하는 조서는, 상투적인 문구와 무미건조한 어휘로 채워지는 공소장이나 판결문과는 확연히 구별된다. 혐의를 부인하며 어떻게 둘러대느냐에 따라 팽팽한 '밀당' 같은 두뇌게임이 펼쳐진다.

더구나 범행 동기나 범행 전후 심경 변화 등은 내면 의식에서 우러난 것인 만큼 글감으론 광맥 같은 거다. 리얼리티를 잘 살린 조서는, 법정 진술보다 높은 증거가치를 인정받을 때도 있다. 까다로운 재판장에게서 공감을 받아낸 거다.

그런데 업무과중을 핑계로 조서에 리얼리티를 살려주지 못한 적이 많았으니 부끄러운 일이다.

회개의 눈물을 쏟으며 털어놓는 이야기를 잘 실어줘 형의 감경에 도움이 되지 못한 것도 아쉬움이 남는다.

공감을 많이 받으려면 간결 명료하고 논리적인 글로는 부족할 것 같다. 승복을 넘어서 공감을 끌어내려면, 한걸음 더 나가 읽기 쉬운 글이 돼야 할 것 같다.

산뜻하고 밸런스 잡힌 느낌의 와인 한 모금 같은 향기로운 글이라면 더 좋지 않을까. 그런 글이 널리 퍼져 그 울림이나 여운에 공감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과도한 '편가르기'에서 조금씩 벗어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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