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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세희 박사의 '몸&맘'] 가해자 처벌보다 피해자 치료가 우선

황세희 박사
황세희 박사 

[LA중앙일보] 발행 2019/10/30 미주판 24면 기사입력 2019/10/29 19:48

"딸 학교 보내기가 겁나요." 어린 딸을 둔 어머니들의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사실 어린이 대상 성범죄는 일반인의 생각보다 광범위하게 빈발한다. 한 번 사건이 터질 때마다 "세상에 이런 일이…"라며 낯선 반응을 보이는 것은 대부분 사건이 수면 밑으로 가라앉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국 통계에 의하면 10~20%의 어린이가 다양한 형태의 피해를 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한국도 예외는 아닐 것으로 본다.

성범죄는 사춘기 무렵 싹이 보이기 시작해 평생 지속된다. 그 결과 범인의 숫자가 적어도 피해자는 많다. 선진 각국에서 성범죄자에게 강력한 법적 제재를 가하는 이유다.

정신의학적으로 성범죄자는 자신의 행동이 패륜 범죄임을 안다. 하지만 욕망을 실천하지 않으면 너무 고통스러워 결국 성범죄자로 전락한다. 특히 죄책감이나 수치심이 없는 가해자, 약물이나 알코올 중독 상태에서 성범죄를 저지른 사람이라면 앞으로도 성범죄 욕망을 억제하긴 힘들다.

그간 의학계에선 성범죄자에 대해 이런저런 치료법을 제시해 왔다. 하지만 아직 특효약이나 치료법이 없다. 치료의 가장 큰 걸림돌은 가해자가 자신의 병적인 범죄 행위를 '고칠 생각이 없다'는 사실이다. 실제 정신과 상담도 범죄 행위로 인해 강제로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상황이 이러니 인권을 존중한다는 선진국에서조차 성범죄, 특히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성범죄자에겐 발생 초기부터 신상을 공개하고 출소 후 전자 발찌를 착용시킨 뒤 주거 지역을 제한한다. 때론 비인도적 치료(?)란 비난을 무릅쓰고 약물로 아예 성욕 자체를 없애버리는 화학적 거세도 강행한다.

의학적으로는 성범죄 발생 시 가해자에 대한 처벌에 앞서 피해 어린이에 대해 '응급 치료'를 해주는 게 급선무다. 실제 피해 어린이는 지진이나 전쟁을 경험할 때처럼 큰 충격을 받아 '외상 후 스트레스증후군'을 겪어 멍해지고 밤에는 악몽에 시달린다. 또 불안·초조·공포·우울 등 정서불안증을 보이거나 파괴적·공격적 행동을 취하기도 한다.

이런 아이에게 "그 아저씨를 왜 따라갔어?" 등 비난을 하거나 피해 상황을 반복해 연상시키는 것은 고통을 가중시키는 일이다.

의학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또 다른 문제점은 취중 강간에 대한 한국 사법부의 관대함이다. 정신의학적으로 취중 잘못에 대해 면죄부를 씌울 근거는 전무하다. 술을 마시면 마음이 들뜨고 해방감에 젖어 무리한 행동을 하기 쉬운 건 사실이지만 취했다고 마음에 없는 말과 행동이 나오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취중엔 그 사람의 평상시 인격이 강화돼 나타난다. 그러니 취중 잘못에 대해 감형 판결을 한다는 것은 똑같은 잘못에 대해 인격자보다 비인격자의 형기를 줄여주는 것과 같다.

불행한 아동 성범죄를 막기 위해선 사회지도층부터 어린이 성폭력 사건과 취중 잘못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필요하다. 피해 어린이와 가해자에 대한 사회적·제도적 대책도 시급하다.

▶한국 중앙일보 의학전문 기자 출신인 황세희 박사는 현재 국립중앙의료원 건강증진 예방센터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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