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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수 칼럼] ‘비겁한 승리’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에서 2019년은 잊고 싶은 해다. 휴스턴 애스트로스(Houston Astros)팀이 2017년 외야 쪽에 설치한 비디오카메라 시스템을 사용해 조직적으로 상대 팀 포수의 사인(sign)을 미리 읽어내 그 정보를 타석에 있는 자기 팀 선수에게 전달하는 ‘사인 훔치기’ 불법행위를 한 일이 드러난 것이다. 휴스턴 애스트로스는 2017년 월드시리즈 챔피언이고 사인 훔치기는 2017년 이후에도 계속되었다고 한다.

포수의 사인은 투수가 투구에 앞서 포수와 주고받는 무언의 소통 수단이다. 애스트로스는 상대 팀 투수와 포수 사이에 손가락 신호로 주고받는 구종과 코스 사인을 훔친 것이다. 휴스턴 타자들은 상대 투수가 패스트볼을 던질지 아니면 커브, 슬라이더, 체인지업 등의 변화구를 던질지, 또는 공이 어느 쪽으로 올지 미리 알고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시험문제가 사전에 유출된 형국이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애스트로스 구단의 제프 루노 단장과 A.J. 힌치 감독에게 무보수 1년 자격 정지, 휴스턴 구단의 2020∼2021년 신인 드래프트 1∼2라운드 지명권 박탈, 메이저리그 규정상 구단 최대 벌금 500만 달러를 각각 부과했다. 같은 날 애스트로스는 루노 단장과 힌치 감독을 해고했고 그 파급 효과는 다른 구단에도 미쳤다. 휴스턴 구단에 몸담고 있던 시절 사인 훔치기에 연루되었던 보스턴 레드삭스의 알렉스 코라 감독이 해임되는가 하면 뉴욕 메츠의 카를로스 벨트란 신임 감독은 경기 한 번 치러보지 못하고 물러나는 수모를 당했다. 로스앤젤레스시 의회는 휴스턴과 보스턴의 2017, 2018년 월드시리즈 타이틀을 각각 박탈해서 로스앤젤레스 다저스팀에 주라는 결의안을 채택하기도 했다.



더러는 스포츠 세계를 약육강식의 정글에 비유하여 승리만이 최상의 가치라고 한다. 이기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의 정당성은 도외시해도 좋다는 견해다. 그러나 이런 승리 지상주의에 찬성표를 던질 사람은 많지 않다.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사인 도둑질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지난해 11월, 전에 휴스턴 애스트로스팀의 투수였던 마이크 파이어스(현재는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소속)가 스포츠 매체 ‘디 애슬레틱(The Athletic)’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그 사실을 폭로하면서였다. 파이어스의 폭로를 놓고 한편에서는 용기 있는 행위라고 하는가 하면, 휴스턴팀에 있을 때는 조용하다가 오클랜드로 이적한 후에 뒤늦게 폭로하는 기회주의자라는 비판도 있다.

스포츠에서 저지르는 불법행위나 비행은 새로운 일이 아니지만, 이런 부정행위가 MLB에서 장기간에 걸쳐 조직적으로 계속되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다. 이런 일이 저질러지는 동안 애스트로스 구단 내에서 “이게 뭡니까? 이래서 되겠습니까?” “떳떳하지 못한 일입니다. 페어플레이 정신과 스포츠맨십에 어긋납니다.”라고 나선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이 사건이 터진 뒤에도 명예의 전당 헌액자 페드로 마르티네스는 “클럽하우스에서 생긴 일은 클럽하우스에 머문다.”라며 파이어스의 사인 훔치기 폭로를 비난했다고 한다. 이는 “악한 것은 보지도 말고, 듣지도 말고, 말하지도 말라(see no evil, hear no evil, speak no evil)는 말과 다름없다. 조직의 이해가 걸린 일에는 법과 양심도 가리지 않는 조폭 세계의 행동 강령과 무엇이 다른가?

사인 훔치기가 세상에 널리 알려지고 MLB를 뒤흔들어 놓았으나 2017년 휴스턴 애스트로스 선수 중에 선뜻 나서서 그 부정행위에 가담하고 침묵으로 일관한 일을 사과한 선수는 없었다. 지금은 시카고 화이트삭스로 이적한 댈러스 카이클 선수가 애스트로스 선수 중 처음으로 지난주 뒤늦게 사과를 했다는 보도가 있긴 하다.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나 플레이오프 진출로 받은 보너스를 반납하겠다고 나선 선수는 아직 아무도 없다.

태종수
전 아칸소대학 정치학 교수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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