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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푸른 바다 겨울 여행

오헤어 공항을 이륙한 비행기는 고도를 높여 늘 아침마다 지나는 90번 하이웨이 위를 날아올라 이내 솜털 같은 구름바다 위를 서서히 달리고 있다. 이제 막 아침이 오는 시간, 저 멀리 구름 위로 태양이 떠오르고 비행기 작은 창을 통해 햇살이 눈부시게 들어오고 있다. 이렇게 Mexico의 Cancun을 향해 나는 날고 있다.

나는 자유하고 싶다. 루틴한 일상을 깨고 다른 풍경, 다른 생각으로 발을 내딛는다는 건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얼마만큼의 희생과 손해를 감수해야겠지만 다른 세상을 경험한다는 것 외에도 내 내면의 생각을 다시 정리하고 refresh한다는 의미에서 더 큰 유익이 있음이 분명하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헤르만 헷세의 데미안에 나오는 글이다. 새는 알을 깨뜨리고 나올 때만이 다른 세상과 접하게 된다. 비로소 접었던 긴 날개를 펼치고 새로운 비행을 시작할 수 있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늘 새로운 풍경과 다른 색깔의 하늘이 펼쳐지고 계절마다 다른 옷으로 바꿔 입은 나무와 숲이 있었다. 아무도 살고 있지 않은 언덕에는 눈꽃을 피운 나무들과 햇빛에 반짝이는 서리꽃을 매달은 들풀들의 여유로움을 관망하는 것은 또 다른 희열이었다. 다가오는 순간 순간은 아름다움 그 이상으로 소중한 시간이었다.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과 스치는 바람의 유희, 내 앞에 부딪쳐오는 삶의 무게도 내겐 모두 다 춤추는 순간들이었다. 비행기 작은 창문엔 끊임없는 구름바다. 그 황량한 구름바다 위로 쪽배처럼 우리는 푸른 바다로 가고 있다.



확 트여진 바다의 끝은 둥글까? 아쿠아 블루로부터 푸르샨 블루로 이어지는 에메랄드 해변에는 연인끼리, 친구들과, 가족과 어울려 저 멀리 하루가 내리는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소리도 없이 저무는 수평선은 아름답다는 표현보다 차라리 장엄하다고 말하는 편이 나을만큼 내 눈 앞에 펼쳐진 해변은 신비로웠다.

발 밑에 고운 모래의 촉감이 흩어진다. 하얀 포말의 밀려오는 파도는 모래 위에 부서지고 이내 자석에 끌리듯 빠르게 붙어 되돌아가는 파도. 같은 간격으로 다시 해변으로 밀려온다. 그리고 이내 바로 지나온 발자국을 지워버린다.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서로 모르는 사람들처럼.

바다의 짠맛과 밑으론 모래를 끌고 몰아오는 파도는 나의 생각과 닮아 한번에 여러개의 기억을 물고 뭍으로 온다. 뱉어낸 짠맛과 모래는 하얀 둔덕이 되어 해변으로 차곡차곡 쌓인다.

빌딩의 층마다 불이 켜지고 꺼지듯 기억의 창가엔 그리움이 쌓여간다. 멀리 보이는 수평선은 각을 세운 사람들의 생각을 보담아 길고 편하게 누이고 있다. 해변의 돌멩이는 모난 것이 없는 듯 오랜 파도의 쓸림에 둥글고 가벼워진다. 바닷새의 날갯짓은 파도를 가르고 모래 위에 사람의 발자국과 사뭇 다른 훅 불면 날아가버릴 것만 같은 가벼운 삼각의 무게만을 남긴다. 바닷새의 깃털이 바람에 날리는걸 보니 바다는 사람의 무게도 덜어 가볍게 만들 수 있나 보다.

이제 떠나야 할 시간이다. 동트는 아침 수평선 위로 붉고 둥근 해가 떠오른다. 바다를 물들이고 내 마음 또한 뜨겁게 달구고 있다. 잘 있거라. 또 만나자. 그곳이 대서양이 되든, 태평양이 되든 비로 내려 미시간 호수가 되든, 널 다시 볼 수 있기를, 뜨겁게 내 안에 출렁이는 파도로 남겨지기를, 샤아~ 밀려오는 비릿한 너의 향기로 남겨지기를….(시카고 문인회장)


신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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