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삶의 한 가운데서] 장사익과 마틴 허켄스의 노래

3살인 손주가 장사익 씨의 노래를 듣고 “베리 파워풀 송”이라 하더니 열심히 연습해서 ‘아리랑’을 배웠다. 그리고 할머니를 위해서 특별공연을 한다며 페이스타임으로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십 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 불러줬다. 좀 서툰 발음이었지만 음정 박자 잘 맞추고 장사익 씨의 무대 공연을 흉내내어서 아이가 덩실덩실 춤을 추는 것을 보며 폭소를 했다.

아이가 신나게 질러대는 정겨운 노래를 들으면서 내 가슴에 뭉클한 감정이 일었다. 모국의 민요 아리랑은 바로 한인들의 정서 총집결체가 아닌가. 세상 어느 곳에 살더라도 아리랑 노래를 들으면 한이 서린 고향이 그립다.

아이의 공연에 박수를 쳐주고장사익 씨와 비슷한 나이의 또 한 사람의 가수를 떠올린다. 네덜란드인 마틴 허켄스씨 (Martin Hurkens)다. 나는 평소에 이 두 사람의 삶과 음악을 생각하며 그들의 노래를 좋아한다. 두 사람은 공통점이 많다. 한 사람은 한국에서 또 한 사람은 네덜란드에서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해서 성악가가 되고 싶었지만 우선 먹고 사는 일이 급급해서 생계를 해결하느라 청춘기를 보냈다. 하지만 그들의 젊은 시절의 꿈은 가슴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마흔 중반에 친구의 권유로 무대에 섰던 장사익 씨는 독특한 창법으로 신나게, 가슴 후련하게 쏟아낸 한과 정으로 각광을 받고 데뷔했다. 그의 향토색 물씬한 구수한 노래들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리고 32년 제빵사로 일하던 제과 회사에서 해임당하고 일자리를 찾던 57세의 허켄스씨는 막내딸이 그를 네덜란드의 탤런트 쇼에 등록시킨 바람에 무대에 섰다. 평소에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적에 부르던 노래인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의 아리아 ‘누구도 잠들면 안 된다’로 청중을 완전히 사로잡고 우승했다. 두 사람은 무명에서 일약 스타덤에 올라 젊은 시절의 꿈을 살게 됐다.

늦깎이 가수 두 사람은 우선 겸손하다. 음성에 포근함이 담겨있고 그들의 희끗희끗한 수염과 깊게 패인 주름진 얼굴에 퍼진 밝게 웃는 모습조차 소탈하고 친근하다. 어쩌면 우여곡절을 겪고 살면서 체험한 온갖 기쁨과 아픔이 그들에게 담백한 삶의 자세를 가르쳐 준 것일까. 대기만성한 그들은 대중에게 다가와 가슴을 열고 사랑을 노래한다. 그들의 대표적인 노래인 장사익 씨의 “찔레꽃”과 허켄스씨의 “You raise me up”, 이 두 노래에는 인생사의 모든 것이 함유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그들이 불러주는 노래를 들으면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오는 성숙한 감정이 있다.

언젠가 장사익씨가 미국 순회공연을 할 적에 워싱턴DC에 사는 딸과 사위가 그의 공연을 봤다. 무대에 오른 단아한 한복을 입은 늙수그레한 남자가 전통음악과 가요를 독창적인 목소리로 열정적으로 불러서 딸과 사위를 매료시켰다. 그의 무대 공연은 매우 흥겹다. 특히 한국어를 모르는 사위가 그의 ‘아리랑’ 노래가 좋았다며 흥얼거릴 적에 왠지 나도 기분이 좋았다. 그 당시 내가 유일하게 듣던 한국 노래가 장사익 씨의 노래임을 알던 딸은 그때까지 출판된 그의 CD 5장을 모두 사서 보내줬다. 그의 노래는 스토리를 담고 있어서 좋다. 해학적이고 코믹한 사연들을 애절하게 쏟아내는 그의 목소리에 빠지다 보면 내가 사는 곳이 한국인 양 착각한다. 그리고 정겨운 옛사람이 그리우면 나는 그의 노래를 들으면서 눈을 감고 타박타박 걸어서 귀향길에 오른다.

참으로 오랜만에 손주 덕분에 장사익 씨의 노래를 다시 들었다. ‘찔레꽃’은 언제 들어도 좋다. 가슴을 울리는 아픔이 있는 가사를 따르면 나이 들면서 허약해진 마음이라 눈물이 나도록 절실함이 있지만 동시에 위로도 받는다. 사람 살이 희로애락 그러려니 하고 차분하게 받아들이게 한다. 세월의 흐름을 신선한 샘물 같이 받아들이게 한다. 그의 ‘희망가’를 듣고 바로 허켄스씨의 노래를 이어서 들었다. 그들은 나에게 마음과 몸과 혼이 하나로 세상살이 모든 것을 사랑으로 껴안도록 길안내 한다.

청중의 가슴에 짜릿한 전율을 주도록 혼신을 다해서 열창하는 두 노장 가수는 세계 여러 나라를 방문해서 자신들이 가진 천부적인 재능으로 많은 사람을감동하게 한다. 나는 이 두 사람을 생각하면서 아무리 나이 들어도 젊은 날의 꿈을 이루려고 노력할 것을 새삼 각오한다.


영 그레이 / 수필가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