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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사막의 유리 성

더운 여름 날 80분 산책을 하고 돌아와 라이트 비어 한 캔을 들이켰다. 찬 맥주는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 온 내장을 시원하게 적셔 주었다. 기분이 좋아 한 캔을 더 마실까 하다가 그만 두었다. 박세리가 여자 US OPEN에 우승하며 정상에 우뚝 섰을 때 미국인들은 SE RI PAK를 'Six Pack'이라고 불렀다. 수퍼마켓에 가면 6개로 묶은 맥주가 있다. 술을 좋아하는 미국인들이 가장 듣기 좋아하는, 음악 같은 말이다. 갈증을 적신다는 이유로 자주 6병을 마시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 간다. 맥주 배가 나오고 매일 마시지 않으면 허전해 견딜 수 없게 된다.

Jeannette Walls의 자서전 'The Glass Castle'을 읽었다. 이 소설에 나오는 아버지는 웨스트 버지니아의 가난한 탄광촌에서 태어나 어려운 유년시절을 보냈다. 그는 성인이 되자 빈곤과 무지의 마을을 떠나 아리조나.캘리포니아를 전전하며 금광을 찾는다. 일확천금을 만들어 사막에 유리성을 지어 행복한 생활을 누릴 꿈을 꾼다.

그는 그랜드 캐년 계곡에서 한 무리의 여자 관광객을 만난다. 계곡 폭포에서 다이빙을 할까 망설이는데 한 여자가 먼저 물 속으로 뛰어든다. 용기를 내서 따라 낭떠러지 물 속으로 몸을 던진다. 그는 수영을 하면서 그 여자에게 말한다. "나는 틀림없이 당신과 결혼할 것이다." 여자는 기가 막혔다. 이미 10여 명 남자의 청혼을 받았다. 당신 같은 당돌한 사람은 처음 봤다. 얼마 후 그녀는 정말 그 남자의 아내가 되었다.

회고록 저자의 어머니는 여행하면서 그림을 그리고 유명한 소설을 쓸 꿈을 가지고 있었다. 이 부부는 안정적인 생활 보다 광야의 거친 삶을 택한다. 자동차에서 아이들과 함께 자고, 배가 고파 쓰레기통을 뒤지기까지 한다. 제대로 일이 풀리지 않자 아버지는 술에 의존,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 간다. 술을 구하기 위해 아이들의 돼지 저금통을 훔치기까지 한다.



저자가 10살이 되었을 때 아버지는 꼭 갖고 싶은 선물이 뭐냐고 물었다. 아이는 망설였다. 아빠는 사람의 능력으로 구할 수 있는 선물이면 하겠다고 말했다. 딸은 말했다. 아빠가 술을 끊는 것입니다. 아빠는 아이 앞에 무릎을 꿇었다. 작심삼일, 그는 결국 술로 돌아갔다. 사막을 전전하다 웨스트 버지니아로 돌아간 월스 가족의 아이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하나 둘 뉴욕으로 떠난다. 여자들은 웨이트레스, 남자들은 막일을 하면서 자리를 잡는다.

고등학교 때 학교신문 편집장을 지낸 저자는 콜럼비아 대학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해 작가가 된다. 부모 역시 뉴욕으로 따라와 홈리스가 된다. 아버지는 금광을 발견해 유리 저택을 마련하겠다는 꿈을 이루지 못하고 59세에 세상을 떠난다. 어머니는 비만 오면 지붕이 새는 단칸 방에 자기의 그림을 걸어놓고 밤이면 타자기를 두들기며 작품을 써 나간다. 이들은 꿈을 이루지 못했지만 독특한 삶을 살아온, 개성이 뚜렷한 인물로 많은 여운을 남겼다.

시원한 맥주를 마시고 나는 생각에 잠겼다. 나는 용기가 없어 떠돌이 생활도 못했다. 금광을 찾아 유리 집을 지을 엄두도 못 냈다. 몸이 상할 까봐 겁이 많아 취할 수도 없었다. 미쳐야 좋은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세상사람 시선이 두려워 미치지 못했다. 이제 꿈을 접어야 될 때가 온 것을 알고 있다. 슬그머니 퇴장할 때가 되었다. 어차피 사막의 유리 성은 부서지기 쉬운, 한 여름 밤의 꿈이었을 것이다.


최복림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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