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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민 칼럼] 패배처럼 보이는 승리

말은 하면 사라진다. 그래서 그 말을 남겨놓기 위해 글자가 만들어 지기도 했다. 사람들은 말이나 글이 나타내려 하는 뜻을 아름답게 하기 위해 별별 수식어를 갖다 붙이기도 한다. 그렇게 말한 글이나 문장을 보면, 쓸데없는 수식어 같은 것이 있을 수도 있고, 반대로 확연히 그 뜻을 밝혀 효과를 나타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말 장난같은 면을 보게 되기도 한다.

오늘의 제목도 그런 느낌을 준다. 패배면 패배고 승리면 승리이지 ‘패배처럼 보이는 승리’란 말은 참으로 말장난 하는 것같은 인상을 주는 말이다. ‘정의가 이긴다’라든가 ‘선이 악을 이긴다’ 같은 말도 결과론적으로 인간의 마음을 혼란케 하는 말이다. 왜? 지금 당장 악이 횡행하고, 불의와 부패가 만연하여 정의나 선한 모습은 찾아볼 수 없는 현상인데 어떻게 정의나 선이 이긴다고 말 할 수 있겠는가 하는 의문이 생기기 때문이다.

선한 자는 아무리 착하게 살아도 잘 못살고, 악한 자들은 나쁜 일을 해도 더 잘 사는 그런 모습에서 “주님은 어디 계십니까”라고 절규하며 인간들은 하나님의 존재나, 악한 자에 대한 심판을 의심하기도 하고, 믿지 않기도 한다. “하늘도 무심하지!” 라는 말이 왜 나왔겠는가? 진실이나 선은 보이지 않고 악한 것, 불의가 눈앞에서 날뛰고 있는 현상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에서 나오는 괴리감 때문이다. 그래서 선한 사람들은 그런 현상 때문에 고통속에 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렇게 표현하는 것의 결과가 사실이라는 것이다. 정의나 선이 악이나 불의에 의해 패배한 것처럼 보이나 어느 싯점에서 결과를 보면 반듯이 불의나 악은 그에 대한 댓가를 받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은 선한 사람이 악한자의 불의에 의해 얻어맞고, 넘어지고, 빼앗기기는 하나, 그 때가 언제인지는 모르나 불의를 행한자가 그가 행한 일에 대한 결과로서 반듯이 처벌받는 날이 있다는 것이다. 시편 기자는 “어느때 까지니이까”라고 질문하기도 하지만, 어느 경우는 당장일 수도 있고, 어느 경우는 오랜 세월을 지나서, 아니면 다음 세대에서 자신이 저지른 악한일에 대한 보응을 받게 된다는 것을 말 할 수 있다.



사람 일이 그렇다. 지금은 당장 빼앗기고, 얻어맞고, 악에 의해 패배하게 된다 할지라도, 결국, 불의를 행하는 자는 처벌받고, 그것으로 억울하게 당한 자는 승리를 하게 된다. 악한 행실로 당장은 이긴자 처럼 보이나 결국엔 패배자가 된다는 것을 말한다. 성경 시편 37: 1에, “악한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시기하지 말라” 하고 있고, 또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 하지 말라” 하고 권면하고 있다. 이유는 지금은 그들이 이긴자 처럼 보이나, 결국은 패배자로서 징벌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국제관계에서의 예를 들면, 일본은 극동은 물론 동남아시아까지 제국화하고, 미국까지 침략 하는 악을 행하다가, 결국은 악의 댓가 즉, 침략의 댓가로 말미암아 원자폭탄 두 발을 맞아 결국은 두 손들고 항복하고 만 것을 우리는 잘 안다. 미국은 하와이 진주만을 공격당해 얻어 맞은 것 처럼 보엿으나, 결국은 일본으로 부터 항복을 받아 제 2차 세계대전을 끝내는 승리를 얻었다.

사람들은 악이 횡행하는 시대속에 살면서 “주님, 어디 계십니까”라며 하나님을 찾기도 하고, “주님 어느때 까지 입니까”라며 기다림을 호소하기도 한다. 이런 질문에 대해 하나님이 어떻게 응답하시는지, 나아가 인간은 어떻게 하는 것이 이기는 것이고, 어떻게 하는 것이 지는 것인지 하늘이 주시는 지혜를 가지고 잘 살펴봐야 한다. 패배는 소나기 오는 것 처럼 눈앞에 보이듯 나타나고, 승리는 이슬비 처럼 소리없이 다가오는 경우가 많다. 승리는 그만큼 언제 오는지 알지 못할 정도록 하나님의 역사의 시간속에서 조용히 나타난다.

아무튼, 사회에 갈등과 불의가 많아 지금까지 말했던 절규는 계속 될 것이다. 새해라고 인간이 도덕적으로 새 마음과 정신을 갖지 않는 한, 그런 질문과 고통의 부르짖음은 계속 될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정의가 불의에 압도되고, 선이 악에 매몰되는 현상이 있다 할 지라도, 패배처럼 보이는 승리가 있다는 사실을 믿어야 할 것이다. 이런 믿음이 있으면 험한 사회속에서 능히 힘차게 살아 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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