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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맛과 멋] 뭐든 하면 돼!

살아서 다시 새해를 맞는 게 이렇게 기쁠 수가 없다. 나이 먹으면 하루하루 사는 게 기적 같은데, 나처럼 암을 안고 사는 사람이 새해까지 맞게 되니 벅찰 수밖에 없다.

이토록 애틋한 명절 사랑으로 이번 신정도 며칠 전부터 음식을 준비했다. 김치는 크리스마스 무렵부터 넉넉히 담갔고, 와인 대신 정종과 맥주 등 세 가지 술에 삼겹살을 사흘 전부터 담가 숙성시켰다. 만둣국 국물도 양지와 사태 푹 곤 국물에 멸칫국물까지 섞어 감칠맛을 키웠고, 광어회도 미리 떠서 냉동실에서 숙성시켰다. 세 딸과 사위들, 손자 블루, 리차드 동생 카렌, 상언이네 식구와 동은이 동생 지은이, 입양한 아들 세광이 딸 지원이까지 함께 한 설날, 삼겹살로 시작한 먹방은 삼겹살·광어회·떡만두국·치즈케이크의 순으로 완판됐다. 왜들 그렇게 먹성이 좋은지, 아니 내 음식이 그렇게 맛있는지, 꽤 많은 양을 준비했음에도 불구하고 음식들이 깨끗하게 싹싹 비워졌다.

나른한 기분 좋음으로 집에 돌아와서 일본 드라마 ‘잠깐 교토에서 살아봤다’를 보기 시작했다. 드라마는 도쿄에 사는 카나가 직장서 잘린 후 어머니의 권유로 교토에 사는 새끼손가락을 다친 작은 외할아버지를 찾아가 지낸 3일 동안의 이야기다. 할아버지의 심부름으로 교토 구석구석의 맛집이나 오래된 가게들이 마치 관광 홍보용 드라마처럼 속속들이 나오는데, 그래도 맛있는 음식 좋아하는 내가 집중해서 볼 수 있을 만큼 각 노포들의고풍스러운 모습들이 흥미를 자극했다. 나도 지난 10월에 교토에 다녀왔는데, 실은 신사들만 돌아보고 와서 진짜 교토의 속내는 볼 기회가 없었다. 그 아쉬움을 적어도 100년 이상 된 가게들을 3대나 4대에 걸쳐 운영하는 부러운 모습들이 채워줬고, 또한 손녀에게 쇼핑 심부름을 시키면서 역사나 문화의 뿌리를 배워가게 하는 작은 외할아버지의 마음 씀씀이가 우러러 보였다.

특히 외할아버지가 카나에게 산책을 하자며 함께 나선 마지막 대목이 인상적이다. 작은 외할아버지는 카모 강가 벤치에 앉아 손녀 카나에게커피 원두를 갈아 뜨거운 물에 커피를 손으로 내려주면서 커피가 맛있어죽는 손녀 카나와 대화를 나눈다.



“이렇게 멍하니 카모강 바라보면서 커피 마시는 이 시간이 좋아. 내가 좋아하는 곳 중 하나야.”

“저 일을 관뒀어요.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는데 안 됐어요. 남들과 경쟁하느라 늦게까지 일하면서 밥은커녕 매끼를 편의점에서 해결했고,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는 일도 싫어져 버렸어요. 내 인생을 실패해버렸어요.”

“나도 어중간해. 아-아, 결혼도 못 하고, 아이도 없고, 직업도 평생 세네 번 바꿨지. 네 기준으로 본다면 내 인생도 실패 투성이야. 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 안 해. 인생이란 걸 말이야. 좀 더 심플하게 살면 어떨까. 뭐, 뭐든 하면 돼. 하는 동안에 여러 가지 좋아하는 것을 찾을 수 있겠지? 그 좋아하는 것을 점점 더 늘려서 매일 그렇게 생활한다. 신나는 거지. 아니, 응…잘 모르겠지만, 하하하.”

여기서 작은 외할아버지가 이야기 중에 “뭐든 하면 돼”라는 말이 갑자기 귀에 쏙 들어왔다. 그렇다. 뭐든 하면 된다. 실패와 성공은 다음의 이야기다. 새해 목표를 무엇으로 할지 아직 감을 잡지 못한 내게 “뭐든 하면 돼”란 말은 노다지를 발견한 기분이었다.

“인생은 숨을 쉰 횟수, 나이가 아니라 숨 막힐 정도로 벅찬 순간을 얼마나 가졌는가로 평가된다. 열정이 답이다”고 한 마야 엔젤로우의 말이 새삼 떠오른다. 인생은 뭐든 열정적으로 하면 된다. 열정적으로.


이영주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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