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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광장] 양심의 소리를 듣는다

인체의 중요한 기관인 심장과 허파는 갈비뼈로 보호를 받는다. 이 기관은 생명 그 자체이기도 하다.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또 하나 있다. 형체가 없어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는 않지만 모두가 갖고 있는 양심이다.

양심은 태어날 때 가지고 태어나지는 않는데 누구나 분명히 갖고 있다. 자라가면서 언제라고 확실히 말할 수는 없지만 가슴 속 아주 중요한 자리를 죽기 전까지 절대로 양보하지 않고 차지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양심을 나침반으로 붙들고 자신의 생을 살아가고 있다.

지금도 어제 일인 듯 또렷하게 생각난다. 마주 앉은 열두 살 위인 언니와 나는 오랜 시간 힘겨운 실랑이를 했었다. 확실한 정황의 증거가 언니 손에 환하게 있다는 앞뒤 판단을 하기에는 내가 너무 어렸다. 그냥 아니라고 하다가 말이 막히면 뜸을 들이다가 하는 것이 고작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편이었다. 결국 얼마 못가서 내가 서랍에서 큰 돈을 꺼내서 써버린 일을 하나씩 다 말하게 됐다.

그 일을 시작으로 양심은 한시도 쉬지 않고 내 가슴 속에 들어앉아 나를 다스리고 조절하고 군림해왔다. 이 괴물은 손도 발도 없지만 눈만은 크게 달렸다. 보통은 움직이지도 않고 가만히 죽은 듯 조용하다. 그러다가 느닷없이 눈을 크게 뜨고 제 맘대로 횡포를 부리면 여간 괴롭지가 않다. 이는 또 끈질기기는 그만이라서 끝내 나를 항복시키고 복종시키지 않으면 절대로 눈을 감는 법이 없다. 그는 내 마음의 하늘을 마음대로 바꾼다. 일기예보는 순전히 그의 손에 달렸다. 그는 바람도 되고 비도 되고, 천둥도 번개도 되며, 무지개를 걸었다가 지옥도 만들고 천국도 지었다.



어느 날, 이렇게 막강한 양심이 내 안에서는 큰 위력을 발휘하지만 아무리 커도 나보다 크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나의 모든 것, 즉 의식과 무의식을 다 합하고 내가 여태껏 습득한 지식, 풍습, 관념, 철학을 모조리 합한다 해도 너무나 작고 초라한 내 존재가 아니던가? 양심은 내가 자라가면서 함께 자라지만 나라는 존재의 한계를 넘어서 클 수는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생각하니 우습지 않은가. 내가 내 속에만 있고 나라는 존재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는 그것에 의해 좌우되고 또 이를 의지하고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나는 하늘과 땅 그리고 우주 만물이 만들어진 이야기와 태초 이래 역사를 주관하시는 이가 누구신지 듣게 되었다. 나는 양심의 소리를 늘 세밀하게 듣지만 더 이상 내 가슴 안에서 콩닥거리는 양심을 붙들고 의지하지는 않게 되었다. 하나님은 지식 위의 지식, 법 위의 법, 모든 것 위의 모든 것이다. 나는 이 크고 비밀한 것을 향해 날마다 조금씩 나아가려고 애쓰고 있고, 내 양심도 함께 살찌우며 키워가고 있다.

이제 양심은 더 이상 나에게 흉측한 괴물이 아니다. 내 삶의 눈과 귀이고 고마운 울타리이다.


민유자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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