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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흡 칼럼] 배신의 정치, 배신의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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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업으로 하는 역사학자를 빼고 ‘역사’란 말을 가장 즐겨 입에 올리는 사람은 정치인이 아닐까 싶다. 이들은 역사를 창조하고, 역사의 죄인이 되며, 역사의 심판을 받는다고 자주 말한다. 국가지도자의 반열에 든 사람 치고 ‘후세 사가들의 심판에 맡기겠다.’는 식으로 말 안 해본 이도 드물 거다. 역사가 정치인들의 익숙한 수사(修辭)가 된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자신의 행동이나 정책에 역사성을 부여하면 득 되는 게 많다. 엄숙하고 진중하며 사려 깊어 보인다. 그래서 속으론 권력게임, 정치공학적 계산에 애면글면, 노심초사하면서도 겉으로 심오한 역사의식의 이끌림을 받는 것처럼 가장한다. 사마천(司馬遷)이 떠오르는 요즘이다.

사마천이 남긴 ‘사기(史記)’는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한 3000년 통사다. 사마천은 당시 자신이 섬기던 한무제에게 밉보여 사형을 선고받았지만, 미처 마치지 못한 ‘사기’를 완성하기 위해 성기를 잘라내는 ‘궁형(宮刑)’을 자청하고 풀려나는 치욕을 감수했다. 그는 ‘사기’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던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한번 죽는다. 그러나 어떤 사람의 죽음은 태산보다 무겁고, 어떤 사람의 죽음은 새털보다 가볍다. 이것은 죽음을 쓰는 방향이 다르기 때문이다.”

천명과 인간 세상을 통찰한 불후의 역사서 ‘사기’를 저술한 사마천이 남자로서는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치욕인 궁형을 당하고 나서 그 울분을 친구 임안(臨按)에게 토로하면서 ‘죽음’에 대해 한 말이다. 사형을 선고받고 궁형을 자청하여 풀려나기까지 사마천은 3년 가까이 옥에 있었다. 지독한 고문에 몸과 마음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여러 차례 자결을 생각했다. 당시 지식인들이 자신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자결하는 것은 얼마든지 용인되었다. 하지만 사마천은 죽음 대신 수치스러운 궁형을 택했다. ‘사기’를 완성하기 위해, 아니 ‘사기’의 내용을 완전히 바꾸기 위해서였다.



사마천은 감옥에 있는 동안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하늘의 도는 사사로움이 없어 항상 착한 사람과 함께한다고 한다. 백이와 숙제는 착한 사람이 아니던가. 그러나 그들은 굶어 죽었다. 공자는 일흔 명의 제자 중 안연(顔淵)만이 학문을 좋아한다고 칭찬했다. 하지만 안연은 항상 가난해 술지게미나 쌀겨 같은 거친 음식조차 배불리 먹지 못했다. 또 젊은 나이에 죽었다. 하늘이 착한 사람에게 베푼다고 한다면,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춘추시대 말기 도적인 도척(盜)은 날마다 죄 없는 사람을 죽이고 그들의 간을 회 쳐 먹었다. 온갖 잔인한 짓을 다하며돌아다녔지만, 하늘이 내려준 목숨을 다 누리고 죽었다. 도대체 하늘의 도는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

인간이란 존재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시작으로 인간의 행위와 사상에 관한 깊은 통찰을 했다. 그리하여 복잡다단하고 다중적인 인간의 본성과 그 행위에 대해 누구보다 치밀한 분석을 가할 수 있었다. 나아가 보통사람들이 역사를 추진하는 원동력임을 확인했다. 그리하여 ‘사기’는 지배층 위주가 아닌 수많은 보통사람의 역사서로 거듭날 수 있었다. ‘사기’의 진정한 가치는 여기에 있다.

사마천이 궁형을 받은 것은 그의 나이 48세 때의 일로 3년 후 출옥했다. 그 비분과 원한은 상상할 수조차 없다. 이러한 원인은 자살로까지 사람을 몰아붙이는 절망으로 통한다. 이러한 원한은 복수의 집념으로 해서 잔학한 비수(匕首)로 화할 수도 있다. 이러한 원념(怨念)은 자포자기의 늪으로 사람을 끌고 가는 허무감으로 경사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그렇지 않았다. 붓을 들었다. 역사와 인생의 변천과 그 실상을 적어 최후의 심판자가 누구인가를 정립하여 스스로의 사명을 통해 자기증명을 만세에 제시하려고 했다. 그렇게 해서 이루어진 것이 곧 ‘사기(史記)’ 이다. 사마천은 기록되지 않으면 영원히 묻히고 말 가슴 아픈 이름들을 위하여, 그들의 행적을 한 자 한 자 새겨 세상 앞에 드러냈다. 부당한 권력을 비판하고 약자를 옹호했다. 역사가 앞에선 절대권력자도 그저 작은 먼지 같은, 지나가는 자연현상과 비슷할 따름이었다. 기록자는, 기록은 그렇게 무서운 것이다.

과연 선거는 민주적인가? 국민의 손으로 대표자를 뽑는 행위가 민주주의의 전부인 것처럼 여겨지는 우리나라에서 발끈할 이야기이지만, 버나드 마넹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대답한다. 선거는 투표와 출마에 관한 기회의 평등은 보장하지만, 실제 선거에 필요한 사회적 자원, 즉 돈이나 인적 네트워크, 사회적 인지도 등은 불평등하므로 늘 국민보다 이 같은 자원이 풍부한 소수에게 유리한 과두적 제도라는 것이다. 국민들은 주권을 행사한다고 믿지만, 늘 정치는 정치꾼들에 농락당하는 ‘배신의 정치’가 바로 선거 때문이라는 기막힌 사실이다. 정치란 정치인한테만 맡겨두기엔 너무나 심각한 문제이다.

선거가 한 달 앞으로 다가오면서 정치판에서는 온갖 요설(饒舌)과 가짜뉴스들이 난무한다. “정치인들은 자신이 말한 것도 믿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의 말을 믿는 것을 보면 화들짝 놀란다.”는 샤를 드골의 말은 정치인들의 가면을 꿰뚫은 명언이다. 사실 정치란 정치인한테만 맡겨두기엔 너무나 심각한 문제다. 속지 말아야 한다. 심판은 국민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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