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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몽상] 개인적인 것과 창의적인 것

아카데미 감독상 수상 때 봉준호 감독이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이라고 한 말에 내심 크게 감동했다. 마틴 스코세이지의 말이라며 노장 감독에게 경의를 표하는 모습은 당연히 멋졌고, 스코세이지가 정확히 이런 표현을 했는지는 몰라도 그 말 자체가 대규모 자본과 스태프가 동원되는 상업영화를 만들며 개인적 비전을 관철해온 봉준호의 고뇌와 의지를 전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했다.

그런 영광의 순간이 3주 전이 아니라 아득한 옛날 같다. 그사이 한국사회 전체가 재난영화처럼 변해버렸다. 엊그제 홍상수 감독의 베를린 영화제 감독상 수상 소식에 환호하기에는 오늘도 코로나19의 확산세가 무섭다. 게다가 어느새 그의 개인사에 대한 관심은 그의 모든 영화가 받아온 관심을 압도한다. 수상작인 ‘도망친 여자’를 보지도 못했으니, 그의 또 다른 영화 제목처럼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번 작품을 논할 수는 없다.

홍상수는 지난 10여년 동안 거의 매년 한두 편의 새 영화를 내놓았다. 그중 관객 10만 명을 넘어선 영화가 없다. 반대로 1만명 미만에 그친 영화는 몇 편 있다. 그런데도 영화 작업을 계속할 수 있는 것은 통상적인 상업영화와 다른 방식이라서다. 이름난 배우들이 출연료 없이도 기꺼이 출연하곤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면에서 봉준호와 홍상수는 대척점에 있는 것 같지만, 공통점도 있다. 한국영화의 주요 작가로 꼽히는 여러 감독들처럼 1990년 중반~2000년대 초에 데뷔했다. 지금 한국영화가 누리는 국제적 영광은 새로운 재능의 감독들에게 과감히 투자할 수 있었던 그때의 과거에 빚을 진 셈이다.



홍상수의 방식이 영화산업의 대안이라거나 새로운 표준이 돼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도 처음부터 그렇게 영화를 만들진 않았다. 요즘 젊은 감독 지망생들이 제2의 봉준호는 몰라도 이런 의미에서 제2의 홍상수를 꿈꾸는 경우는 별로 없을 것이다. 홍상수의 분투는 그래서 돋보인다. 할리우드가 장르 영화나 블록버스터 영화로 산업적 표준을 제시했다면, 프랑스의 평론가나 누벨바그 감독들은 카메라를 만년필에 비유하곤 했다. 개인적 표현의 수단이라는 점에서다. 한국영화의 미래를 논하려면 산업 논리와 개인 창의성 사이에 건강한 상호작용이 살아나야 한다.


이후남 / 한국 문화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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