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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산책] '휘모리'에서 '진양'으로 가는 삶

마에스트로 카를로스 클라이버가 지휘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음악에 빠져들게 된다. 때로는 춤을 추듯 격렬하게, 때로는 부드럽고 섬세하게 움직이며 음악과 혼연일체가 되어 몰입하는 모습은 자못 감동적이다. 철저한 몰입이 주는 감동이다.

클라이버는 숱한 일화를 남긴 인물인데, 일본 공연 때의 일화는 유명하다. 공연 도중에 큰 지진이 나는 바람에 청중들은 놀라서 모두 나가버렸는데, 지휘자는 지휘를 멈추지 않았고 연주는 계속되었다고 한다. 연주가 끝나고 지휘자가 단원들에게 “왜 그렇게 침착하지 못 했나?”라고 나무라자 연주자들은 “지진 때문에 그랬다”고 대답했다. 클라이버는 “어, 그래? 난 몰랐는데"라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음악에 빠져 세상이 심하게 흔들리는 것도 몰랐다는 말이다. 참 대단한 몰입이다.

그런데, 왜 나는 카를로스 클라이버처럼 움직임이 크고 역동적인 지휘를 좋아하고, 정명훈처럼 점잖은 지휘를 지루하다고 느끼는 걸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는 음악을 감상할 때 주로 힘차고 정열적인 음악만을 골라서 들은 것 같다. 말하자면 편식인 셈이다. 생애 처음으로 빠져든 클래식 음악이 시벨리우스의 ‘핀란디아’ 같은 우렁찬 음악이었기 때문에 그런지, 주로 그런 종류의 음악을 듣게 된다. 어딘가 극적이고 격정적인 것에 끌리는 것이다. 연극 활동을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전문가의 설명을 들어 보니, 그런 것이 초보자들의 일반적인 성향이라는 것이다. 물론 개인적인 취향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흔히 초보자들이 빠지기 쉬운 정서적 편견이라는 설명이다. 동의한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



전문가의 말에 따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다고 한다. 예를 들어, 아주 높은 소리를 내거나 소리를 크게 내지르면 노래를 잘 한다고 생각하고, 악기를 빠르게 연주하면 잘 한다고 박수를 보내고, 동작이 크고 격렬할수록 연기를 잘 한다고 생각하는 식이다. 감정을 고조시키면 잘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의 생각은 온통 편견 투성이다. 단순한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분명한 편견이다. 예를 들어 악기 중에서도 첼로 연주를 유달리 좋아한다든지, 주로 웅장하고 현란한 오케스트라 연주를 듣고 오페라나 성악곡은 잘 안 듣는다든지… 내가 생각하기에도 한 쪽으로 심각하게 기울어져 있다.

하나하나 따지고 보면, 음악뿐 아니라 인생살이 전반에 걸쳐 고약한 편견들이 자리 잡고 있는데 알면서도 잘 고쳐지지가 않는다.

그나마 나이가 조금 들면서 슬며시 가슴으로 스며드는 잔잔한 것, 부드러운 것의 힘을 조금씩 느끼기 시작한 것 같아 다행이다. 이를테면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이나 브루흐의 ‘콜 니드라이’ 같은 음악의 깊은 맛을 느끼려 애를 쓴다. 판소리에서도 휘몰아치는 휘몰이나 자진모리보다 애잔한 진양의 깊은 맛을 느끼고, 여백의 의미를 곱씹으려 애쓴다. 물론 아직 멀었다는 느낌이지만 조금씩 달라지는 느낌이다. 예를 들어, 허름한 촌부가 흥얼거리듯 내뱉는 노랫가락이 잘 차려입은 명창이 무대에서 부르는 노래보다 한결 진하다.

예술은 손끝 재간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영혼으로 하는 것이라는 진리가 어렴풋이 어른거리니 노을이 짙어진다. 늙어간다는 이야기겠지….


장소현 / 시인·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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