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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거품 빼기와 속살 다지기

사람이든 무우든 바람 들면 못 쓴다. 겉은 멀쩡한데 잘라보고 바람이 든 무우는 짜증나게 한다. 바람 든 무우로 요리 하면 신선감이 없어 푸석푸석하고 맛이 없다. 속이 덜 찬 것들은 버걱거리고 설컹거린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속이 안 차고 바람이 든 사람은 할일 없이 거만하고 허우대만 멀쩡하며 오만방자 하기 쉽다.

세상에서 제일 힘든 싸움은 자기와의 싸움이다. 이기든 지든 책임은 자기 몫이다. 나는 하루에도 수 십 번 후회하며 산다. 뉘우치고 반성하고 다짐해도 잘 고쳐지질 않는다.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바람 든 무우처럼 구멍 뚫린 가슴 사이로 온갖 교만과 불손, 이기심과 자만이 넘쳐난다. 다혈질인 성격. 인내심 결여. 조속한 판단. 넘치는 자부심. 탱크식 밀어부치기 등등. 평생 고치려고 애 써도 그 나물에 그 밥이다. 그래서 민폐 안 끼치는 선에서 ‘생긴대로 살다 죽자’로 가닥을 잡았다.

나이 들어 철 들었는지 요즘 거품 빼기 하느라 정신 없다. 삶의 곳곳에 두드러기 처럼 돋은 거품을 빼니까 세상살이 잡사가 편안해졌다. 거품이 빠져버린 삶이 진짜 삶이라는 걸 왜 진작 깨닫지 못했을까. ‘보여주기 위해 사는 게 아니라 사는대로 보여준다’가 정답! 자식 기분 맞추려 더 챙겨줄까 고심할 필요 없고 남의 눈치 보며 살 일 전혀 없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나를 속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 잘 살려고, 잘 보이려고, 잘난 체 하려고, 닥달하고 옭아매며 살던 구속에서 벗어나니 생이 홀가분하고 사는 맛이 구수해졌다. 육개장 끓일 때는 거품을 걷어내야 잡냄새도 안 나고 육수가 맑아진다. 정갈하고 맛난 삶, 쫄깃쫄깃 씹을수록 고소한 삶을 살기 위해선 거품을 걷어내야 속살이 보인다.

거품은 액체가 기체를 머금고 부풀어서 생긴, 속이 빈 방울이다. 거품은 무게도 안 나가면서 부피만 크다. 질량은 어떤 물체에 포함되어 있는 물질의 양으로 장소나 상태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 물질의 고유한 양이다. 헤겔에 의하면 모든 존재하는 것은 일정한 질을 가지고 있으며, 이 질은 또한 양적으로 규정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타고난 성질과 품성은 양이 변화해도 일정한 한계 안에서는 질 그 자체는 변화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질량은 어떤 질을 가진 것이 그 질의 변화 없이 어떤 한계까지 양적 변화를 할 수 있는가를 표현하는 것이다. 질량은 양적 변화가 질적 변화에로 전화하기까지의 범위를 특징짓는다. 표준기압에서 액체 상태의 물은 섭씨 0도부터 100도까지는 액체라는 질의 상태를 유지하지만, 그것을 넘어선 온도에서는 기체 상태로 이행한다. 사람은 자기의 품성과 무게에 걸맞는 질량을 가진다. 변하지 않는 고유한 모습이 존재한다 해도 상황이 악화 되거나 참혹한 고통에 시달리면 인간은 어떤 모습으로 변할 지 가늠하기 힘들다.



거품은 무게가 없다. 중량은 물체에 작용하는 중력(重力)의 크기다. 물체를 지탱하는데 필요한 힘이다. 질량이 있는 모든 물체 사이에는 서로 끌어당기는 만유인력이 작용한다. 그대와 나 사이에는 사랑이 만유인력으로 존재한다. 중력이 지구가 물체를 잡아당기는 힘이듯 사랑은 그대와 내가 하나 되게 한다.

꼭 잡은 손 놓지 않으면 그대 사랑의 중력이 나를 허공에 떠 돌지 않게 한다. 보이지 않는 허상 좆지 않고 땅에 든든하게 발 붙이며 살라고 등 두드린다. 거품은 실체가 없다. 성긴 무우처럼 속이 비고, 거품 같은 생의 참모습 볼 수 없다 해도, 삶의 모진 못 자국 하나 둘 뽑으며 조금씩 그대 곁으로 가고 있음을. (윈드화랑대표, 작가)


이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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