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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 대통령과 깡통

정용진/시인

청빈과 무소유의 철인 디오게네스는 일생을 통하여 한 벌의 옷만을 걸쳐 입고 한 자루의 지팡이와 괴나리봇짐에 통(桶)을 집 삼아 살면서 많은 기행과 일화를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하루는 알렉산더 대왕이 그를 찾아가서 소망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아무것도 없다. 햇빛을 가리지 말고 비켜달라"고 말했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것은 위대한 사고성과 빛나는 이성이 있기 때문이다. 통찰에 이르는 깊은 사유, 사물의 이치를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마음의 작용이 둔탁해지고 흐려질 때 인간 본래의 자리를 잃고 동물의 차원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옛날에는 왕으로 즉위하려면 이에 앞서 왕도를 배웠는데 전두환 전 대통령은 통치자로서의 자질도 없고 통치의 도를 배우지 못한 채 무력을 사용하여 갑자기 민족사에 등장한 인물이다. 전두환은 12·12사태, 5·18, 삼청교육대 등 역사상 유례없는 사건들과 국고 찬탈의 부정축재로 민족을 괴롭히고 국가 재정을 훼손한 장본인이다.

전두환은 97년 4월 2204억 원의 추징금 확정판결을 받고 현재까지 314억 원을 납부한 상태로 같은 혐의로 78%를 몰수당한 노태우와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판사가 미납금 1500억 원은 어디에 썼느냐고 따지자 그는 현금 재산 목록은 29만1000원이 전부라고 대답했다.



국민의 재산을 훔쳐다가 토굴 속에 감춰두고 한겨울 차가운 밤에 고무래로 무와 배추 뿌리를 꺼내다가 나와 내 자식이 대대로 즐겨 먹으면서 기뻐한다든지, 산속에 다람쥐가 늦가을이 되면 계집 여럿 얻어 알밤, 개암, 도토리 등을 토굴 속에 가득 채운 후 성한 계집은 다 내쫓고 눈먼 계집 하나만 남겨 자기는 알밤, 개암 등 고소한 것만 먹으며 달공달공 하고, 눈먼 계집에게는 떫고 쓴 도토리만 주어 쓸공쓸공 하면서 눈 덮인 긴 겨울을 함께 넘긴다는 우화와 무엇이 다르랴.

그가 불자(佛子)로서 자의건 타의건 만해 한용운 스님이 수행하던 백담사에 기거한 일이 있으니 이 일쯤은 아는지 묻고 싶다. 하기야 백담사를 떠나오면서 내가 세상에 나가면 손봐줄 놈 많이 있다 하였다 하니 이를 어찌하랴.

젊은 판사로부터 재산 명시 신청과 보정 명령을 받았으니 '재산 명시 신청'이란 재산이 있으면서도 빚을 갚지 않는 악덕 채무자의 재산을 공개하는 제도이니 얼마나 한심하고 불쌍한 말년의 치욕인가.

자식 만대에 호의호식을 위해서라면 자식들을 바닷가로 데리고 가서 낚싯대를 손에 쥐여주고 고기는 이렇게 잡는 것이다, 방법을 일러 주어야 아비가 죽은 후에라도 자식들이 바로 살 수 있지 내가 많이 훔쳐 놓았으니 편안히 잘 먹고 잘살아라 한다면 후손들의 갈 길을 멸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것이다.

우리 민족사에는 대통령만 되면 눈이 멀어 국고를 찬탈하는 죄인들이 너무 많았다. 박정희를 시작으로 전두환, 노태우, 박근혜에 이르기까지 비극의 연속이다.

대통령을 지내고 조석이 간데없어서 종로로 깡통을 들고 다닌다면 홍익인간의 예를 배운 국민들이 그를 그냥 놔두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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