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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삶] 가을 비망록

조성자 / 시인

당신이 내게 오는 방법과 내가 당신에게 가는 방법은/ 한 번도 일치한 적이 없다/ 그러므로 나는 어떤 전언 때문이 아니라, 하나의 문장이 꽃봉오리처럼 터지거나/ 익은 사과처럼 툭 떨어질 때/ 비로소 당신이 당도한 걸 알아차린다/ 당신에게 가기 위해 나는 구름과 바람의 높이에 닿고자 했지만/ 당신은 언제나 내 노래보다 높은 곳에 있고/ (…)나는 이미 너무 많은 말을 발설했고 당신은 아마/ 먼 별에서 맨발로 뛰어내린 빛줄기였을 것이다// 오랜 단골처럼 바람과 오래된 노래가 넘나들고 있다

-송중규시인의 '죽은 새를 위한 메모'부분



삶은 융통성이 없다. 지나치게 정직해서 얄밉기도 하고 대체로 엇박자다. 머피의 법칙이다. 되돌아보면 우연 같은 필연의 반복인 걸 감지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다 이해가 되는 것은 아니다.



가을이라는 선하고 매혹적인 계절에 나는 당신에게 다가가는 방법을 다시 생각해본다. 당신이라는 대명사가 의미하는 삶의 의미들을 생각해본다. 나는 어떤 형식으로든 당신에게 도달해야 한다. 아니 그러고 싶었다. 그것이 발라드의 형식이든 로큰롤의 형식이든, 내 몸에 맞는 형식을 취사해 하나의 장르를 만들어 내야 한다. 가을은 자꾸 네 장르는 뭐냐고 묻는다.

볕이 따사로운 날 그로서리를 사려고 마켓에 가다가 나는 방향을 놓치고 말았다. 좌회전을 했어야 했는데 우회전을 했다. 이유는 단 하나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음악이었다.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2번, 피아노 소리는 어느 별에서 타전되는 전언 같았고 소리에 이끌려 무작정 페달을 밟았다.

길을 이탈하고 한참을 가다가 방향을 되돌리려 할 때, 나는 내가 도달하려던 목적지는 어디였을까 묻게 된다. 어디쯤에 이르면 안도할 수 있을까. 어디쯤에 다다라야 삶의 민낯을 제대로 읽어낼 수 있을까. 당신이라는 대명사 앞에 깃발을 꼽을 수 있을까.

성질 고약한 사람의 으름장마냥 삶이 맹목적 불안을 야기 시킬 때처럼 점점 왜소해지는 가을, 시간이 익혀낸 단맛들이 뭉그러지는 걸 보고야 거기쯤이 한계선이란 걸 알게 되는 걸까. 삶에게 묻는 모든 질문들은 가을 뒤로 슬슬 몸을 숨기고 계절의 절벽에서 뛰어내리려 한다.

미숙한 눈으로 넘겨다보던 미래는 꽤나 화려하고 멋지기도 했다. 미래라는 말이 주는 힘만으로도 거기엔 묘한 매력이 있었다. 아마도 그건 계절의 강을 힘차게 건너가려는 일종의 최면이었는지도 모른다. 한 계절은 다른 계절을 위한 복선이다. 맞이하는 이 가을은 들끓던 지난 계절이 피우고 싶던 봉오리다.

당신이라는 도달하고 싶던, 당도하려던 가치들은 허울을 벗겨도 빛나는 걸까. 그럴 것이다. 그러나 그 가치들은 별에서 맨발로 뛰어내린 빛줄기라는 시인을 말을 빌린다면 애초부터 끝내 도달할 수 없는 생의 빙벽이었는지도 모른다.

아침, 몸을 소파 깊숙이 파묻고 음악을 듣는다. 오랜 세월 퇴색 않고 빛나는 음을 내는 음악들은 누군가 구사해 놓은 자신만의 창법이다. 안위에 포박당하지 않고 고독에 협박당하지 않고 자벌레처럼 오체투지라는 저만의 기도법이 만들어 낸 감성과 정신의 근육들이다.

가을은 그 근육질들이 여기저기에서 알통을 자랑하는 계절이다. 그래서일까 나에게 남겨진 시간을 계수하게 된다. 시간을 카운트하는 일은 일종의 자학이다. 가을은 왜 자꾸 그런 일들을 강요하는지 모르겠다. 머리맡에 쌓아 놓은 책들 역시 누군가의 알통이다. 첫 장을 넘겨보지도 못한 책들은 이 가을의 허무와 겨루라는, 일종의 피난처이자 돌파구다. 여전히 남아 있는 삶을 향한 질문들과 동행하며 허무의 늪을 통과해야 한다. 한 계절 햇빛과 바람을 받아먹고 제 창법을 획득한 모든 것에게는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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