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열며] 꽈리 소리
이경애 / 수필가
우리 자랄 때엔 집 주변에 꽈리나무가 흔했습니다. 별 가지고 놀 거리가 없던 시절, 여자 아이들은 꽈리가 익으면 꽈리를 감쌌던 꽃받침을 열고 꽈리를 떼어냈습니다. 손으로 살살 주물러 말랑해진 꽈리 속의 씨들을 바늘로 살살 끄집어 내고, 입 속에서 빈 꽈리에 공기를 넣어가며 뽀드득 뽀드득 부는 것은 아주 기술을 요하는 놀이였습니다. 물론 나는 잘 하지 못했지요.
동의 보감에 "꽈리는 성질은 평하고 차며 맛이 시고 독이 없다"고 했습니다. 해열과 해독, 이뇨작용에 효능이 있고 인통.황달.이질.부종.정창을 다스린다고 했습니다. 의원이 멀던 시절, 집집마다 처마 밑에 말린 꽈리 몇 가닥씩 매달아 놓는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여름 내 더위에 지쳤던 누런 마른 풀잎 사이에 빠알갛게 익은 꽈리 열매들은 아름다운 풍경이 되곤 했지요.
꽈리 선물을 한 그 여인은 꽈리를 먹기도 한다는데 나는 꽈리를 가지고 놀 줄만 알았지 먹는 것은 몰랐습니다. 그녀의 뒤뜰엔 직접 담은 고추장.된장.간장이 담긴 장독대와 그녀가 어릴 때 자라던 고향집 울안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꽈리.봉숭아.맨드라미 등이 우거져 있고, 담벽에는 초록빛 반짝이는 조선호박이나 조선오이도 매달려 튼실하게 크고 있습니다. 그 분은 고국을 떠난지 벌써 50여 년이 흘러갔다 합니다. 남편과 평생을 해로하며 지고지순한 한국여인의 성정 그대로 옛 그녀가 살았던 고국을 그리워하며 이곳에서도 50여 년 전의 생활방식 그대로를 따르며 사는 것을 즐기는 것 같습니다.
아들네, 딸네 식구들이 우리 집에 다 모인 어느 날, 나는 선물 받은 꽈리다발을 식구들에게 자랑했습니다. 여기서 태어난 손주들뿐 아니라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란 1.5세인 딸과 아들, 사위와 며느리까지 모두 신기한 듯 바라보았습니다.
나는 아이들에게 어릴 때 꽈리를 가지고 놀던 것을 시범으로 보여주려고 들떴습니다. 그러나 내 의욕이 무색하게 폼나게 꽈리소리를 내 보려던 할머니의 시도는 여지없이 '쉬~익, 쉭' 바람빠지는 소리만 납니다.
"에~이…" 아이들이 못 믿겠다는 표정으로 동요합니다.
"가만 있어봐" 나는 급히 달아나려는 아이들을 제지하며 입속의 꽈리에 바람을 집어넣고 앞 이빨로 지그시 누릅니다. 그런데 아무 소리도 안 납니다. 꺼내보니 꽈리의 입구가 이미 찢어져 있습니다. 나는 다시 꽈리 하나를 사알살 주물러 바늘로 속의 씨들을 빼냈습니다.
나를 주시하는 손주들의 초롱 초롱한 눈를 보며 이번에는 꼭 성공 해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부담까지 밀려옵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쉬~익'하고 실패라고 말합니다.
나는 손주들의 인내심을 더 이상 붙잡을 힘을 잃고 꼬리를 내리게 되었지만, 그래도 나는 또 다른 꽈리의 주홍빛 너울을 떼어내고 그 속을 파내고 있습니다. 꼭 성공해서 손주들이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우리시대의 자연 장난감의 정겹고 신기한 소리를 들려 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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