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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으로, 맛으로 정월대보름 전통 음식

이은선 객원기자
이은선 객원기자

[LA중앙일보] 발행 2017/02/11 미주판 17면 기사입력 2017/02/10 18:45



정월대보름 한상 차림. 묵은 나물, 오곡밥, 귀밝이술, 즉석 동치미.

정월대보름 한상 차림. 묵은 나물, 오곡밥, 귀밝이술, 즉석 동치미.

텃밭채소로 만든 묵은 나물.

텃밭채소로 만든 묵은 나물.

봄과 가을에 말린 텃밭 채소들.

봄과 가을에 말린 텃밭 채소들.

"나에게 정월대보름은 엄마의 품이다. 어렸을 때 이날이 오면 우리 어머니는 오곡밥과 9가지 건나물 요리를 푸짐하게 만들어 이웃들과 나눠 주셨다. 그 당시는 어머니가 하시는 일을 그저 경이롭게 물끄러미 쳐다만 보았는데, 어느새 그 일을 하고 있는 나를 보게 된다. 어머니와 함께했던 그 세상을 기억하며."

황유진 영양컨설턴트의 음식 이야기 속엔 유난히도 정월대보름에 관한 사연이 많고, 미국 생활에서 건강하게 전통 음식을 즐기는 노하우가 가득 담겨 있다. 타국 생활에서 명절 음식은 챙겨 먹기도 하지만, 대보름 나물까지 해먹기엔 좀 번거롭지 않으냐 물음에 황 컨설턴트는 "부럼, 귀밝기술, 오곡밥, 묵은 나물 등이 어떤 이들에겐 더 이상 필요없는 전통으로 여겨질 수도 있지만, 건강과 힐링을 중요시하는 트렌드를 생각하면 전혀 동떨어진 시절음식이 아니다. 부럼에 사용하는 견과류는 피부미용에 좋고, 귀밝이술은 각종 한약재에 재워 마시면 혈액순환을 돕는다. 묵은 나물은 겨울 동안 실내 생활에서 오는 비타민D를 보충해주는 최고의 요리재다. 오곡밥 또한 쌀밥을 보충해주는 영양소가 다량 함유돼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 과학적인 웰빙 음식이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딱딱한 묵은 나물을 조리할 생각을 하면 귀찮거나 번거롭다는 생각이 먼저 들어서 그저 형식적으로 대보름이 되면 마켓에서 이미 만들어 놓은 나물 몇 가지를 사먹곤 했다. 어머니가 챙겨주시지 않으면 굳이 시절 음식에 대해 관심도 별로 없었던 탓도 있다. 그런데 황 컨설턴트의 요리들과 텃밭살이를 엿보면 신선한 의욕이 스멀스멀 기어든다.

"텃밭을 한 번 만들어 보세요. 이번 대보름 나물들은 지난봄부터 말려둔 갖가지 채소들로 만든 귀한 나물이에요. 특히 건나물 요리는 잘못하면 질기거나 모래가 씹히기 십상인데 집에서 직접 말려 사용하면 깨끗하고 질기지 않은 건나물을 얻을 수 있어요. 파머스마켓도 유용해요. 이른 가을에 나가보면 빛깔도 고운 가지, 호박, 고추 등 온갖 채소들이 가득해요. 장바구니 하나 정도 담아오면 풍성하게 말린 채소들을 장만할 수 있어요. 적당한 크기로 썰어 채반에 종이타월을 깔고 널어놓으면 반짝이는 가을 햇살을 먹고 깔끔하게 말려진답니다. 이럴 땐 뜨겁고 건조한 캘리포니아의 햇살이 정말 축복이죠. 며칠 말린 채소들은 누런 종이봉투에 담으면 5년 정도까지도 보관이 가능해요."

삶의 가장 중요한 팁은 어쩌면 '동기 부여'일지도 모른다. 마치 즐거운 놀이를 하는 듯한 황 컨설턴트의 음식 장만하는 과정들을 보고 들으면 번거로운 일(?)을 자초하고 싶은 용기가 충만해진다. 그 웰빙놀이를 내 뜰 안에도 들여놓고 싶어 어느새 모종 파는 가게를 기웃거린다. 싹이 트고 잎이 무성해지는 텃밭을 상상하면서. 지나던 길에 제법 신선해보이는 묵은 나물 몇 가지를 집어들었다. 자, 이제 어떻게 삶고 볶아야 야들야들 맛있는 나물이 될까.

"민들레나 고사리는 쓴맛과 독을 제거하기 위해 삶아서 말리고, 질긴 재료는 뜨거운 물에 데쳐서 사용합니다. 보통 나물들은 하룻밤 정도 물에 푹 불려야 질감이 부드럽죠. 불린 나물은 물기를 꼭 짜서 시래기나 고사리 등은 먹기좋게 자르고, 천연 맛을 내는 육수를 만듭니다. 북어채와 다시멸치, 다시마를 넣고 양파 껍질, 파뿌리, 셀러리 겉대, 사과껍질 등을 함께 넣고 푹 우려내면 감칠맛이 살아 있는 천연 조미료가 돼요. 이 육수가 나물 볶을 때 아주 중요합니다."

역시 한 끗 차이가 열 끗 차이를 만든다. 쌀뜨물 정도 넣어서 볶을 줄은 알았지, 천연 육수를 넣어 볶을 줄은 몰랐다. 건나물들을 푸욱 불려놓으며 다음 스텝이 궁금해졌다. 여기엔 어떤 한 수가 숨어 있을까.

"기본 양념은 국간장, 소금, 통깨, 마늘, 다진 양파, 다진 파로 준비하고 각 나물에 이 양념을 넣어서 조물조물 무쳐둬요. 두 개의 팬을 불에 올리고, 한쪽은 연한 나물을 볶고, 한 쪽은 질긴 나물들을 넣어 육수를 부은 다음 낮은 온도에서 뚜껑을 닫고 서서히 익힙니다. 시래기나 무나물 등에는 들깨가루를 넣으면 맛이 훨씬 깊어지죠. 모든 나물 요리가 끝나면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효소를 조금씩 넣어 보관 그릇에 담아요. 9가지 전통적 나물을 사용하면 좋겠지만,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나물이나 채소를 활용해도 충분합니다. 오곡밥에도 조 대신에 치아씨를 사용해도 좋죠."

황 컨설턴트의 특제 귀밝이술도 궁금했다. "간단하죠. 청주에 백봉령, 천궁, 오가피, 산초, 구기자 등을 약간씩 혹은 준비된 것만 사용해서 중탕한 다음 차게 식히면 됩니다. 오곡밥에 함께 내는 즉석 효소 동치미도 별미예요. 고춧가루물이 덜 배인 김치와 마른 홍고추, 신김치 국물 약간, 매실효소액, 물 등을 적당히 섞어 간을 맞추면 시원한 동치미가 돼요. 미국인 손님들도 매우 좋아해요. 달 밝은 밤에 양푼 나물비빔밥과 새콤한 동치미 그리고 그윽한 이명주를 곁들여 남편과 함께 나누니 정월대보름이 어찌 아니 좋은지요!"

이번 주말의 식탁 그림이 내게도 그려진다. 하얀 면보를 깔고 모락모락 김 오르는 찰밥 주발과 윤기나는 구수한 나물 접시 그리고 푸른 도기에 이명주를 담아 오순도순 나누리라. 정겹도록 달 밝은 정월대보름에.

사진 제공 : 황유진 영양컨설던트 (www.thepatioyuj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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