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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잘못 만난 아기 팔자, 나라가 개입할 일 아니다”

아기가 위험 상황 처했는데 외교부 답변은
“범죄에 연루된 국민은 보호하지 않습니다”

한미 해외입양 65년/⑩ 어린이 보호를 해외에 맡겨온 한국정부의 민낯






문제는 한국이었다. 미국에서는 이런 경우 각 정부부처의 역할과 적용 법률이 명확하고, 어느 법원의 관할인지도 분명해서, Due Process(적법절차)를 따라가면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란 예측이 가능했다. 반면 한국에서는 60여 년간 자국 어린이의 보호를 외국에 맡겨온 나라의 법제가 어떤 지경이고, 어떻게 정부의 영혼을 파괴했는지 여실히 드러났다. 미국 당국은 이 갓난아기가 국외로 불법 이송되었다고 보았지만, 한국은 거기에 공적기관이 책임이 있다고 인식하지 않았다.



우선 인천공항의 출입국 관리에서 외국인이 아무런 연고가 없는 생후 2주 한국 아기를 데리고 나가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고 이후에도 이 절차는 특별히 개선되지 않았다. 또한 법무부는 이 아기의 입양절차에 대해서도 한국법상 가능한 절차라는 의견이었다. 국제입양이라는 절차가 외국의 가족법과 이민법까지 총체적으로 검토해야 하는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입양관련 법제조차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은 채 자기 부처의 책임소재를 막기 위해서 달랑 민법의 두세 조항만을 근거로 방어벽을 치기에 급급했다.

자국 영아가 미국에서 위험에 처한 상황에서 외교부의 답변은 '우리는 범죄에 연루된 국민은 보호하지 않습니다' 였다. 순간 귀를 의심했다. 대한민국 여권을 가진 아기의 안전을 영사관에서 직접 확인하고, 국내 송환절차를 검토해야 한다고 거듭 요청했다. 그러자 ‘그 엄마가 아기를 그런 위험에 빠뜨렸다면서요’ 라는 답변이 다시 돌아왔다. 결국 부모 잘못 만난 아기 팔자이니, 나라가 개입할 일이 아니라는 인식이었다. 범죄자라도 영사접견권을 가진다. 무슨 근거로 이런 대응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으나, 책임을 회피할 수 있다면 어떤 근거라도 내놓겠다는 의지만 보였다.

법무부는 이 사건에서 끝까지 뒷짐만 지고 있었고, 외교부는 결국 미국 측의 요청으로 영사가 적극 개입할 수 밖에 없었다. 양국 법원에서 수없이 오고간 법적 공방을 다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한국법제의 결정적 흠결은 아기의 후견인 문제에서 불거졌다. 미국에서 A씨 부부의 양육권이 박탈되고 아기는 보호자 없이 난민센터로 갈 위기에 처하자, 한국 정부는 아기를 인도받기 위해 공무원을 한 명 보내겠다고 했다. 미국 측은 한국법원에서 지정한 아기의 후견인(guardian)이 미국법원에 직접 나와야 아기의 신병을 인도할 수 있다고 답했다.

후견인 제도는 어느 나라에서나 미성년 보호를 위해 기본이 된다. 일반적으로는 부모가 법적 후견인이 되지만, 이 아기의 부모는 그 역할에 부적합하니, 법원이 다른 후견인을 지정해야 한다. 미국법에 근거한 요구였지만, 이는 한국의 법이기도 하다. 한국도 민법과 아동복지법에 부적합한 친권에 대해서 정부가 개입하고 법원 결정으로 후견인을 지정하도록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이 조항은 살아있는 화석처럼 법조문에만 존재해왔다. 1960년대 법 제정 이후 수십년간 실제로 작동한 사례가 거의 없다. 지방지차단체도 가정법원도 보건복지부도 이런 일을 해 본 적이 없다. 한국전쟁 이후 고아원 수용과 해외입양을 위해서 사적시설들에서 어린이의 신병을 확보해 왔기에 적법절차가 작동할 여지가 없었다. 관련된 사람들은 이 절차가 법조항으로는 존재한다는데 한편으로는 놀라고 한편으로는 안도했다.

서울시장은 서울가정법원에 아기 친모 대신 서울시 아동복지센터장을 후견인으로 지정해 줄 것을 요청하고, 가정법원에 의해 지정된 후견인(court appointed guardian)이 미국 법원에서 아기를 인도받아 한국으로 돌아왔다. 아기는 서울시 아동복지센터에서 입양자격을 심사 받은 양부모에 바로 위탁되어 그 해 새로 도입된 법원허가를 거쳐 입양되었다. 이 아기는 한국과 미국에 입양에 대한 법제가 어떻게 작동하는 것이 진정한 적법절차인지를 가르쳐준 셈이다. 이 사건을 마무리하고 난 후 미국 외교관이 남긴 말이다. “더 이상 미국인들이 한국을 아기를 구하는 수퍼마켓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경은 고려대학교 인권센터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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