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동서교차로] 생의 마지막 화폭

그래서 그렇게 아팠구나. 생의 새로운 장을 펼치는 것이 두렵고 힘들어 슬픔이 몸을 갉아 먹었구나. 아무 일도 아닌듯 구렁이 담 넘어가듯 그냥 슬쩍 넘어가면 될 줄 생각했는데 극의 2막을 종결하는 두터운 장막이 이토록 뼈저린 고통으로 다가올 줄 몰랐다. 수술하고 가슴에 붕대 감고도 이틀 만에 출근 했는데 2주간 사경을 헤매듯 아팠다. 연극의 장이 바뀔 때마다 등장하는 인물이 바뀌고 갈등과 위기가 촉발 됐지만 생은 재공연 할 수 없기에 죽자사자 버텨왔다. 이제 아프지만 피해 갈 수도 되돌릴 수도 없는 인생의 마지막 커텐을 올릴 준비를 한다.

인생은 리허설 없이 단 한 차례 공연이 허락 된 연극과 같다. 연극은 하나의 막으로 구성된 단막극과 장막극이 있지만 보통은 3막 또는 5막으로 구성된다. 인생이 단막극이면 너무 슬프고 비극적이다. 연극은 막이 바뀔 때마다 커튼이 내려진다. 무대 배경이나 여러장치가 이때 바뀐다. 막과 막 사이에 장으로 나누어 무대의 조명이 꺼지면 등장인물의 등장과 퇴장이나 장면이 바뀌는 준비를 한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모든 이야기에는 시작이 있고 중간이 있고 끝이 있다"고 말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지적대로 인류가 만들어 낸 모든 이야기들은 처음, 중간, 끝으로 구성되는 3막의 구조와 파국과 결말이 존재한다. 1막은 시작 부분으로 주제에 대한 암시나 상황 설정의 설명, 시대와 장소 및 배경, 주인공의 모습이 압축적으로 펼쳐지면서 앞으로 전개될 상황과 스토리의 아웃라인을 제시한다. 2막은 전체 이야기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주인공이 순탄하지만은 않은 자신의 길을 가고, 방해하는 적대적 인물이나 상황의 설정으로 갈등이 전개되고 다양한 사건과 다른 여러 인물들과 사이에 도움과 마찰이 구체적으로 펼쳐진다. 3장은 결말 부분으로 상황이 종결되고 갈등이 해결되며 주인공이 원하는 바를 얻게 되는지를 보여 주면서 일관성 있게 전개되어 온 주제 의식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부분이다.

미국으로 오기 전까지 내 인생의 1막은 파스텔화 처럼 부드럽고 수채화 처럼 아련한 눈물 번지는 그리움으로 존재한다. 미국으로 건너 온 뒤 펼쳐진 2막은 치열하고 장렬했다. 차별 없다는 세상에서 차별과 편견에 맞서며 사업을 키워냈고 다운 증후군과 심장이상으로 태어난 리사의 풀잎 같은 목숨을 지켜냈다. 식도암으로 리사 아빠를 먼저 보내고 어머니를 이국 땅에 묻었다. 우서방 만나 남들에겐 보통이지만 내게는 기적 같이 태어난 두 아이는 건강하고 착하게 자라 사랑하는 배우자을 만났다. 천국과 지옥을 오갔지만 한 순간도 불행하지 않았다. 모질게 지켜내야 할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불행에 빠질 여유가 없었다.



이제, 제3막의 커텐을 올릴 시간이 됐다. 뒤돌아 보지 않고 오직 나를 위해 자숙하고 나만을 위해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것 하며 살아 갈 시간이 왔다.

슬프면 눈물이 약이다. 아파하자 아파하자. 슬프면 슬퍼하자. 마음도 생각이 있다. 슬픔은 화선지에 번진 검은 먹물 처럼 참아도 지워지지 않는다. 마음도 쉬엄쉬엄 쉬어가게 하자. 고목을 만나면 그늘 아래 낮잠도 자고 하천을 만나면 강물에 두 발 담그고 물살 찰랑이며 놀다 가자. 흐르는 눈물 감추지 말고, 넘어지면 아무일 없는 척 혼자 툴툴 털고 일어나지 말고, 반창고 붙여 달라고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보자. 아득히 내 생의 마지막 화폭을 채울 그리움이 아지랑이처럼 보인다.


이기희 / 윈드화랑대표·작가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