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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마당] 고향 형님께 올리는 글

형님, 두둥실 달이 밝습니다. 쟁반 같은 한가위 달이지요. 저 달을 보며 고향의 달은 어떻게 생겼을까 그려보다 형님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형님은 역마살이 끼어 안 가본 지방 없고 안 해본 일 없다고 했지요. 하지만 지금은 어엿한 사장님으로 고향을 굳게 지키고 있는 성공한 고향의 파수꾼이 되었지요.

형님이 말한 진해 항만공사장에서의 일이 기억납니다. 형님과 사흘을 같이 한 다음 저는 제주도와 동해안에서 서해안까지 두루 돌았지요. 그리고 다시 남해로 들어가 이곳저곳을 다녔습니다. 남해대교 위를 걸으며 난간도 두드려 보고 그 아래 여울목의 물살도 굽어보다 이순신 장군을 떠올리기도 했지요. 옆으로 스쳐 가는 차에서 옛 친구 하나쯤 뛰어내려 손을 잡지 않을까 기대하기도 하면서요.

옛 집터에 앉아 멀리 바닷가에 낚시를 던지는 낚시꾼이 되었다가, 방파제 끝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등대와 먼 고깃배의 등불이 점점 또렷해지자 다도해의 바람이 소매를 들췄지요. 창에 어른거리는 등대 불빛과 풀벌레 소리가 고향 찾은 나그네의 밤을 뒤척이게 해 꿈인지 생인지를 되풀이하다가 해가 높이 떠서야 일어났지요.

아이들은 자라서 제 길을 찾아가고 저는 서리 낀 대머리가 되었습니다. 형을 만난 게 27년 만의 고향길이었지만 그리던 고향이 아니었지요. 살던 집도, 오솔길도, 정든 교실도 모두 사라지고 구수한 사투리의 옛 얼굴들이 아니라 낯선 이들로 가득했지요. 아마 형이라도 만나지 못했으면 저의 실망이 더 컸을 겁니다.



살아온 길 후회되는 일 많아도 모두 잊고 다시 무언가 손에 잡고 두들겨 보렵니다. 붓글씨도 그려보고 시도 읽고 외진 곳도 찾아 작은 위로가 되어볼까 합니다.

읍에서 떼어온 호적등본은 나의 자서전, 족보로 간직하렵니다. 달이 맑고 찹니다. 하지만 형이 넣어준 유자차의 향은 아직도 짙습니다.

LA의 철새 후배 올림


지상렬 / 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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