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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한 가운데서] 사랑 사랑 내 사랑아

최근 몽고메리 지역 신문의 1면에 내가 잘 아는 부부, 존과 앤 클라인의 스토리가 크게 실렸다. 살며 사랑하며, 서로에게 삶의 의미가 된 부부의 근황을 읽으면서 가진 아릿한 아픔이 가슴에 무겁다.

앤은 치매환자다. 지난 17년 동안 치매를 앓고 있는데 오랫동안 존이 집에서 돌보다가 작년에 양로원으로 옮겼다. 그후 존은 매일 앤을 찾아가서 함께 시간을 보냈다. 특히 세계가 코로나바이러스와 전쟁을 치르면서 몽고메리의 상황도 전과 다르다.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천하고 면역력이 약한 노약자들이 머무는 양로원의 방문은 일체 금지됐다. 이제는 그저 망이 쳐진 창문을 사이에 두고 존은 사랑하는 아내를 만난다. 결혼 45년차이며 나이가 동갑인 80세의 존과 앤, 멀찍이서 아이를 달래듯 애타게 자신의 사랑을 확신시키며 존이 부르는 ‘어메이징 그레이스’는 서럽도록 아름답다.

시간과 환경을 떠나 ‘사랑 사랑 내 사랑아’를 흥얼거리는 그들의 오늘을 보며 나는 과거를 회상한다. 존은 한때 내 보스였다. 존이 멕스웰 공군부대에 있는 공군대학의 Academic Provost로 근무할 적에 나는 같은 소속의 선임하사관으로 근무했다. 그가 나의 직계 상사여서 자주 만나며 서로 잘 알게 됐다. 긍정적이고 외향적인 밝은 성격의 존과 달리 그의 아내 앤은 잔잔한 미소를 머금은 내향적인 성격이다. 나처럼 자그마한 체구의 앤은 원래 영국출신이지만 마치 일본 여인의 조신한 자세로 늘 존의 그림자였다.

두 사람은 교회나 지역 봉사 활동을 열심히 했다. 특히 효과적 의사소통의 전문가인 존은 지역 지도자 육성에 앞장섰고 의사소통에 관한 여러 저서를 발간해서 적극적으로 후배교육에 참여했다. 내가 군에서 퇴직하던 해에 그도 공군대학을 그만두고 트로이대학으로 옮겼다. 각자 다른 방향으로 진출하면서 슬그머니 우리들의 사이가 멀어졌지만 간혹 어떤 행사에서 만나면 반갑게 서로의 근황을 나누었다. 언젠가 지인으로부터 앤이 치매를 앓는다는 소식을 듣고 가슴이 서늘했었다. 시어머니가 치매로 10년을 앓고 세상을 떠나서 치매환자들의 변화과정을 잘 알고 있던터라 앤의 상황이 안타까웠다.



요즈음 존은 사랑하는 아내의 창 밖에서 아내와의 옛추억을 더듬으며 노래를 부르는 백발의 신사다. 휠체어에 앉은 앤을 보며 그들이 젊은 시절에 즐겨 불렀던 옛노래나 찬송가를 부른다. 가끔 앤이 몇 소절 따라 부른다. 실마리 같은 기억의 조각들이 아직도 앤을 지탱해주고 또한 존을 향해 미소를 띄게 한다. 그 순간에 행복한 존은 죽음이 그들을 갈라놓을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앤에게 그의 사랑을 천명할 것이다. 존의 어깨가 예전처럼 든든하지 않고 조금 한쪽으로 기운 것은 나의 착각일 것이다.

예전에 그들이 준 인상을 내 가슴에 간직하니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그들의 아름다움은 오랜 세월 고락을 함께 산 두 사람의 결정체 같다. 그들을 떼어놓지 못한 치매나 코로나바이러스도 역시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증명한다. 나이 들수록 외로움 보다 더 진득한 사랑이 삶의 중심임을 알려준다. 존이 망이 쳐진 창 밖에서 희미한 아내의 모습을 보는 시간이 얼른 지나가고 더위가 기승을 부리기 전에 다시 아내의 방을 찾아가서 그녀의 손을 잡고 함께 그들이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며 행복하도록 코로나바이러스가 빠르게 지나가고 모든 사회생활이 전처럼 회복되길 간절히 빈다.

간혹 남편의 이름을 기억하고 반갑게 부르는 아내나 비록 정신은 멀리로 떠났지만 가까이 있는 아내의 체온을 느끼는 남편은 어쩌면 행복한 부부다. 몇 년 전 80이 넘은 한 지인의 아버지는 병든 아내가 싫다며 이혼을 요구했다. 맏딸인 지인이 휠체어를 탄 어머니를 모셔와서 그녀가 세상을 떠날때까지 모셨다. 신체적인 불편이 있어도 정신은 말짱했던 그녀의 어머니를 보면서 내가 가졌던 억울하고 분하던 생각은 잠시였다. 나 하나 돌보기도 벅찬 노인이 늙고 병든 아내와 극단적으로 이혼을 결정한 마음에는 사랑이 식어 있었다.

존과 앤, 그리고 지인의 부모 등 나보다 나이든 사람들의 사연은 훗날 나의 스토리임을 인식시켜주는 동시에 삶과 죽음을 따갑게 의식하게 한다.


영그레이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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