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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중앙] 할머니들이 용기 낸 27년간의 '미투'에 우리가 '위드유'로 화답해야

[한국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8/08/13 00:54

8월 15일이 무슨 날인지, 소중 친구들은 다들 알고 있을 겁니다. 우리나라가 일제의 식민통치로부터 벗어나 자주독립을 되찾은 날이죠. 그럼 광복절 전날에도 남다른 의미가 있다는 것도 알고 있나요. 8월 14일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입니다. 지난 2017년 일제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생활안정지원 및 기념사업 등에 관한 법률 개정을 통해 공식 지정했죠.

1991년 8월 14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중 최초로 공개 증언에 나선 김학순 할머니. 할머니의 용기 있는 증언 후 피해자와 피해자의 유족들로부터 신고가 잇따랐다.

세계 각지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기 위한 날로, 1991년 고(故) 김학순(1924~1997) 할머니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최초로 공개 증언한 날이기도 합니다. 그보다 앞선 2012년 ‘제11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아시아연대회의’에서 매년 8월 14일을 ‘세계 위안부 기림일’로 정한 바 있고요. 공식 기림일까지 생겼지만,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글=김현정 기자 hyeon7@joongang.co.kr, 동행취재=김승직(서울 신천중 1)·이지연(서울여중 1) 학생기자, 사진=임익순(오픈스튜디오), 참고도서=『25년간의 수요일』, 자료=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나눔의 집 부설 일본군'위안부'역사관·민족과여성역사관·일본군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희움 일본군‘위안부’역사관

*일본군 '위안부'에 작은 따옴표를 붙이는 것은 일본군에 의해 위안부라 불렸던 것을 나타낸 것으로 1993년 제2차 아시아연대회의에서 논의한 표현입니다. 또 일본군을 붙이는 것 자체로 국가 차원에서 저질러진 범죄임을 표현합니다.

매주 수요일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앞 '평화로'에는 폭염 등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시민들이 모인다.


“할머니들이 계실 때 당신들의 잘못을 사과하십시오. 상대가 없이 하는 사과는 아무 소용없습니다. 당신들이 지은 죄는 공소시효가 없습니다. 지금도 이미 늦었지만 더 늦기 전에 사과하십시오. 하루라도 빨리. 그것이 당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입니다.”
지난 7월 18일 수요일, 1344차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이하 수요시위)에서 나온 자유발언 중 일부 내용입니다. 수요시위는 1992년 1월 8일 미야자와 전 일본 총리의 방한을 계기로 시작됐어요. 지금까지 26년간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과 더불어 피해자들의 명예와 인권회복을 위해 전쟁범죄 인정, 진상 규명, 공식 사죄, 법적 배상, 전범자 처벌, 역사교과서에 기록, 추모비와 사료관 건립의 7가지 사항을 요구해 왔죠.

26년째 계속되는 수요시위

매주 수요일 낮 12시,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앞 ‘평화로’에서 열리는 수요시위는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이하 정의연)가 주최하고 20개의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회원단체와 여성단체 및 수많은 시민사회단체, 일반 시민들이 주관 및 참여합니다. 정의연은 정대협과 정의기억재단이 통합해 구성됐죠. 이지연 소중 학생기자가 찾은 1344차 시위는 서울강서양천여성의전화가 주관하고 약 200여 명이 모였어요.
“바위처럼 살아가보자~ 모진 비바람이 몰아친대도~” 수요시위는 ‘바위처럼’ 공연으로 시작합니다. 윤미향 정의연 대표는 “‘바위처럼’ 끝까지 문제 해결을 위해 힘내자는 의미가 통해 2000년부터 사용하고 있다”고 설명했죠. 이날 시위에는 소년중앙 독자 또래 친구들도 참여했어요. 부천 부인중 3학년 오서진 학생은 “학교에서 위안부로 주제를 정해 2개 반 합동 프로젝트 수업을 하며 할머니께 편지를 쓰고 피켓을 만들어 수요시위에 나왔다”고 했죠. 50여 명 학생 중 4명이 편지를 들고 단상에 올라갔습니다.

1344차 수요시위 자유발언에 나선 부천 부인중학교 3학년 학생들. 할머니들께 쓴 편지도 전달했다.

“일본은 기회를 줄 때 한시라도 빨리 사죄해야 합니다.”
“저부터 일본의 반인륜적인 행동을 알리겠습니다.”
“인권을 대변하는 소녀상, 잊지 않도록 더 많이 세우고 싶어요.”
“할머니들은 항상 마음속에 계십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습니다.”
학생들의 발언에 박수가 쏟아졌습니다. 송송훈 학생은 친구 김태윤 학생과 함께 ‘인간의 고통은 거래가 아니라 끝까지 잊지 않을 현재와 미래의 기록입니다’라는 피켓을 들고 있었는데요. “수요시위 말만 듣고 처음 왔는데, 날씨만 안 더우면 다음 주에 또 올까 생각 중이에요”라고 했죠. “일본 사람도 볼 수 있기 때문에 일본어로 썼다”는 장다원·석민제 학생은 ‘우리는 그날의 진실을 기억합니다’란 피켓을 들고 있었어요. 이지연 학생기자는 취재를 하는 틈틈이 ‘아픔은 지워지지 않으리라’라고 쓴 피켓을 들고 수요시위에 힘을 보탰죠.

수요시위에는 청소년 참여가 많다. 이지연 학생기자(맨 오른쪽)가 십 년 넘게 봉사 중인 임계재 자원활동가(왼쪽에서 둘째)·오서진(맨 왼쪽)·송송훈(부천 부인중 3) 학생과 함께했다.

수요시위에는 자원활동가들도 많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공부하고 2005년부터 봉사한 임계재씨는 “수요시위에 오는 것 자체가 의미 있다”며 “정의를 위해 여기 서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는 수요시위에 참여한 시민들에게 위안부 피해자를 상징하는 나비와 노란 리본 스티커를 나눠주기도 했죠. 1344차 수요시위 성명서 낭독으로 1시간여의 시위가 마무리됐습니다.

기억해야 하는 할머니들의 삶


조금 늦게 합류한 김승직 학생기자와 수요시위에 대한 감상을 나누며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으로 향했습니다. 박물관으로 가는 길은 평화와 인권을 표현한 벽화로 꾸며졌죠. 입장권에는 피해 할머니의 사진과 소개가 실려 그분과 인연을 맺게 되는데요. 김승직·이지연 학생기자는 박영심 할머니를 소중히 품에 안았습니다.

일본 패망 후 버려진 일본군 '위안부'들. 사진 속 임신한 여성은 박영심 할머니다. 2000년 일본군성노예전범여성국제법정의 원고로 참석, 사진 속 역사를 증명했지만 끝내 문제 해결을 보지 못한 채 2006년 생을 마감했다.

포화 소리가 울리는 쇄석길을 지나 이어지는 지하전시관에선 입장권으로 인연을 맺은 박영심 할머니를 영상으로 만날 수 있었죠. 이지연 학생기자는 “공간이 어둡고 좁아 당시 피해자들이 겪었던 고통이 잘 느껴지는 듯해요”라고 했죠. 관람 동선에 따라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주변 벽돌에는 피해자들의 사진과 목소리가 담겼죠.
김승직 학생기자는 ‘내 청춘을 돌려다오’란 메시지를 가리키며 “시간을 돌릴 수 없으니까 더 슬퍼요”라고 말했어요. 한국어·영어·일본어 등으로 쓰인 메시지를 보며 이지연 학생기자는 “전 세계 사람들에게 전달되기에 충분하네요”라고 했죠. “외국인 관람객을 위해 일부러 번역한 것”이라고 말한 김동희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장은 “할머니들의 이야기가 적힌 ‘호소의 벽’ 전시를 통해 할머니가 ‘억울해, 힘들어’만이 아닌 다양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점을 깨달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습니다.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2층에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삶에 대한 기록과 문제 해결을 위한 운동의 발자취를 볼 수 있다.

역사관·생애관·운동사관 등이 자리한 2층에는 일본군 문서를 비롯한 당시 신문기사, 피해자 사진과 유품, 증언 영상 등이 전시됐죠. 일본군에 의해 조직적·체계적으로 이루어진 국가 범죄로서의 ‘위안부’ 제도의 실상과 이로 인한 고통, 현재까지 진행 중인 수요시위를 비롯한 여러 법정 투쟁, 국제 활동 등 할머니들의 삶을 살펴볼 수 있어요. ‘위안부’ 피해자 정서운 할머니의 육성을 바탕으로 제작된 애니메이션 ‘소녀 이야기(Her story)’도 상영 중이죠.
이지연 학생기자는 추모관에서 한동안 시간을 보냈어요. “한 분 한 분 이름이 새겨진 걸 보고 이렇게 많은 분들이 있고, 많이 돌아가셨는데 왜 아직까지 일본 정부의 사과를 받지 못했을까 생각이 드네요.” 김 관장은 “어느 분이 추모관을 보고 ‘계속 진행 중인 전시’라고 하셨어요. 안타깝게도 할머니들이 돌아가고 계시잖아요. 돌아가시면 추모관에 이름이 또 하나 새겨지게 되죠”라고 설명했어요.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2층에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삶에 대한 기록과 문제 해결을 위한 운동의 발자취를 볼 수 있다.

“추모관엔 북한이나 다른 나라 할머니도 계세요. 올해 또 한 분이 자신이 위안부였다고 말씀하셔서 신고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는 모두 240분입니다. 하지만 정부에 밝히지 못하신 분은 훨씬 많죠. 10만에서 20만 여성이 끌려갔다고 추정하거든요. 추모관 빈 벽돌은 이름 없이 돌아가신 분들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이름은 있는데 얼굴 사진이 없는 분도 있고, 끝까지 밝히기 싫어하신 분, 처음에 신고는 하셨지만 죽음을 알리지 못한 분도 있죠.” 박물관 1층에는 세계 분쟁과 여성 폭력에 관한 전시가 마련돼 있습니다. 특히 기획전시관 2에서는 광복 70년 특별전으로 베트남 전쟁에서 한국군에게 성폭력 피해를 입은 베트남 여성들의 아픔을 소개하죠. 김 관장은 “베트남에서 우리는 가해자죠. 상황에 따라 피해자도, 가해자도 될 수 있어요. 우리가 꼭 피해자임을 인식하고 싸우자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평화롭게 전쟁 없이 살아가는 세상을 만드는 게 할머니들의 마지막 소원”이라고 밝혔어요.

고인이 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추모할 수 있는 추모관. 누구나 헌화할 수 있으며 헌화를 위한 추모금도 기부할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 240명(2018년 7월 4일 기준) 중 생존자는 28명, 평균 연령은 90.9세입니다. 그분들은 7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사실인정’과 ‘진심 어린 사과’를 바라고 있어요. 광복절의 ‘광복(光復)’은 빛을 되찾았다는 의미죠. “피해자가 살아 있다, 내가 바로 증거다”라며 최악의 인권 침해를 호소해온 '위안부' 피해자들이 명예와 인권을 회복하는 진정한 광복을 맞이하는 날이 하루빨리 오도록 우리 모두가 노력해야 합니다. 소중 학생기자단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김동희 관장을 인터뷰했죠.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시위에 대해 일본은 어떤 반응을 보이나요.
영화 ‘허스토리’를 보면 할머니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법적 소송을 해요. 관부(시모노세키)재판이라고 하는데 2심까지는 일본 정부의 범죄 행위를 인정받죠. 나중에는 패소하지만요. 영화엔 잘 나타나진 않지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양심적인 일본 시민들이 있어요. 재판을 하려면 변호사가 있어야죠. 이걸 맡은 것도 일본인 변호사예요. 나이 40, 50에부터 지금까지 30년 넘게 일본 내에서 이 문제를 알리기 위해 꾸준히 활동하고 있죠. 수는 적긴 하지만 정말 옳은 일이 무엇인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고 한국에 대해 좋지 않게 여기는 상황에서도 목숨을 걸고 해온 사람들이 있다는 거예요. 박물관 건립 과정에서 모금을 했는데, 일본에서도 퇴직금 일부나 부모님 유산, 책을 팔거나 영화를 만들어 모금한 돈을 보내왔어요. 일본인들이 수요시위도 자주 와요. 일본 정부에 계속 요구하고 있지만 일본 정부는 하나도 실행하고 있지 않지만요.

평화비 소녀상과 포즈를 취한 이지연 소중 학생기자.


-7가지 요구사항은 어떻게 정해진 건가요.
1992년에 첫 번째 수요시위를 하기 전부터 논의했어요. 유엔 인권위의 ‘피해자 인권 규제’를 보면 7대 요구의 대부분이 들어 있죠. 처음엔 6가지였는데 나중에 책임자 처벌이 들어갔어요. 당시 책임자들 역시 지금 100살이 넘었거나 돌아가셨겠죠. 하지만 지금도 유사한 범죄가 콩고, 나이지리아 같은 분쟁 국가를 비롯한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어요. 근데 거기 피해자들은 피해를 봤다는 인식을 못 한다고 해요. 가해자는 성폭력을 저질러도 처벌받은 적이 없으니 해도 된다고 생각하고요. 현재의 범죄를 막기 위해서도 책임자 처벌 항목이 필요한 거예요. 추모비와 사료관 건립 부분도 재발 방지를 위한 거예요.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제대로 교육해야 하죠. 일본군이 저질렀던 잘못을 교과서 등을 통해 올바르게 기록해야 하는 게 망언 대신 일본 정부가 해야 하는 일입니다.

1992년 1월 8일 수요일에 열린 최초의 수요시위.


-나비가 할머니들을 상징하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나비의 삶을 생각해 볼까요. 나비는 알에서 애벌레, 번데기를 거쳐 나비가 되죠. 추워도 비바람이 몰아쳐도 스스로 나비가 되어가는 과정을 할머니의 삶에 투영한 거예요. 보라색과 노란색을 쓰는데요. 보라색은 할머니예요. 스스로 고통스러운 삶을 박차고 일어난 할머니를 상징하죠. 노란색은 할머니와 연대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런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는 우리들의 다짐을 표현한 거예요.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정원에는 평화비를 만든 김서경·김운성 조각가의 '김복동 길원옥은 평화다'가 있다. 사진은 김복동(왼쪽)·길원옥 할머니가 각자 자신의 조각과 함께한 모습.


-일본은 위안부 문제 합의금으로 10억 엔을 줬지만 마음을 담은 사과는 아니라고 봐요.
진정한 사과, 진정한 화해가 뭘까요. 승직이와 지연이가 싸우다 지연이가 때렸다고 해봐요. 사과를 했는데 승직이가 느끼기엔 진짜 미안해서 하는 말이 아닌 것 같아요. ‘난 사과했잖아, 너도 나빠, 난 이제 책임 없어’ 그러면 받아들일 수 있나요. 아니죠. 할머니들이 기본적으로 원하는 건 진심 어린 사죄죠. 피해자의 의견이 배제되지 않은, 피해자가 인정할 수 있는 사죄가 필요한 거예요. 수십 년 동안 고통받은 피해자로서의 권리를 말하는 겁니다. 나의 일생을 지옥으로 바꾼 것에 대한 미안함이 느껴져야죠. 그런 피해는 돈으로 해결되는 게 아니에요. 근데 일본은 한일협정으로 법적 책임은 끝났고, 10억 엔은 위로하기 위해 주는 거니 더 이상 이야기하지 말라고 하는 거죠. 1965년 한일협정은 일본이 한국을 식민 지배하며 많은 문제를 저질렀지만, 고통을 받은 사람들에게 하나하나 배상하지 않고, 정부에 차관을 줘서 경제적 성장을 돕기로 한 겁니다. 일본은 계속 한일협정으로 모든 합의를 했다, 법적 책임이 끝났다고 하죠. 10억 엔이라는 문제는 2015년 당시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의 무마시키려는 행위에 동조했다는 거예요.

 할머니들은 일본 정부를 상대로 법적 소송도 했다. 사진은 일본 정부가 최초로 위안부 문제를 인정한 관부(시모노세키)재판 당시 모습.


-지난 1월 위안부 문제로 재협상을 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 발표에는 정부의 기본적인 처리 방향이 나와요. 앞서 말한 것처럼 피해자의 의견을 배제한 2015년 합의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진정한 해결이 될 수 없고, 피해자 의견을 수렴해 문제를 해결하겠다, 화해치유재단 기금 10억 엔은 정부 예산으로 충당하겠다 등의 내용이죠. 양국 간 공식 합의였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어 재협상은 요구하지 않겠지만 일본이 국제 보편 기준에 따라 계속 노력하길 바란다는 얘기도 했고요. 그 전인 4일엔 문재인 대통령이 할머니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이전 정부에서 한 합의가 올바르지 않다고 얘기했죠. 사람들은 문제가 해결되겠구나, 생각했어요. 하지만 지금까지 화해치유재단을 해산하지도, 할머니들 의견 수렴도 하지 않았어요. 그 이유로 북핵 문제 등을 드는데 할머니들도 남북 평화를 바라세요. 빨리 통일이 돼 북에 계신 할머니들도 만나고 싶어 하시고요. 근데 그것 때문에 이걸 못 하는 건 아니죠.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채 시간만 흘러가요. 기다려서 해결되는 부분도 있겠지만 지금도 할머니들이 돌아가시고 계세요. 올해만 벌써 다섯 분의 할머니가 돌아가셨죠. 할머니들의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아요. 한 분이라도 살아계실 때 올바른 사과를 받고 싶은 마음을 일본 정부가 외면하더라도, 우리 정부가 제대로 헤아려주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소중 친구들이 대통령에게 편지를 쓰고, 기사로 알리는 것은 어떨까 제안하고 싶네요.

강덕경 할머니가 그린 '배를 따는 일본군'. 할머니가 남긴 작품들은 지금도 세계 곳곳을 돌며 일본 정부의 만행을 고발 중이다.


-지난해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가 무산됐다고 들었어요.
진실은 알려져야 하고 역사는 왜곡돼선 안 되죠. 앞으로도 여러 나라와 공조해 나갈 겁니다. 일본이 유네스코 등에 로비하고 지원금을 많이 쓰고 있어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요. 피해자라기보다 인권활동가로서 활동해온 할머니들의 목소리는 지금도 여러 곳에 전해지고 있습니다. 소년중앙학생기자들도 기사로 널리 알려주세요. 또 역사를 올바로 알기 위한 노력이 필요해요. 박물관에 오면 막상 안다고 했던 것들도 새롭게 보일 거예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김동희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장(가운데)을 인터뷰한 김승직(왼쪽)·이지연 학생기자.


-최근 미투 운동으로 여성의 인권과 권리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어요.
기자를 비롯해 사람들이 할머니들께 많이 했던 질문이 있어요. 왜 해방이 됐을 때 얘기하지 않고 몇십 년이 지나서야 이런 얘길 하냐는 거죠. 승직 학생기자 말처럼 용기의 문제도 있겠지만, 그땐 할머니의 얘기를 들을 청중이 없었어요. 할머니가 살아왔던 세상을 생각해 봅시다. 광복 후 6.25전쟁을 겪고 분단 되고 독재 정권도 거치죠. 사회적으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인식하고는 있지만 껄끄러워하고 그 여성들을 수치스럽게 여겼어요. 할머니들의 경우 살고 있는 공동체에서 쫓겨나거나 더 살기 힘들어질까 우려했죠. 인권이 존중받지 못하는 독재 사회에서 다들 침묵하고, 전쟁 통에 여성들이 고통을 당할 수도 있지 하며 이 문제가 전쟁 범죄임을 깨닫지 못한 거죠. 할머니들 첫 증언집을 보면 가명도 많아요. 여성은 순결해야 하는 가부장적 사회였기 때문이죠. 이름조차 명확하게 말 못하는, ‘불쌍한’ 할머니에서 점차 용기 있고 당당한 모습으로 진실을 밝히며 자신의 삶을 일구고 계신 겁니다. 수요집회에 참여한 사람들이 할머니들께 감사를 전하는 일도 많죠. 할머니들이 용기를 낸 최초의 ‘미투’에 우리가 ‘위드유(with you)’로 화답해야 하지 않을까요. 또 잘못된 것은 인정하고, 이해하는 용기가 필요하죠. 혐오·차별하지 않는 것도 중요합니다. 어떻게 하면 차별하고 차별받지 않고 함께할 수 있는지 손잡고 나갈 방향을 고민해야 해요.

김동희 관장은
2001년부터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서 활동하며 2011~2016년 정대협 사무처장을 역임했다. 2016년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부관장을 거쳐 2018년 2월 관장으로 취임했다. 저서(공동저술)로 『역사를 만드는 이야기』가 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자세히 살펴보려면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들이 겪었던 고통의 역사를 기억하고 교육하며, 이 문제를 알리고 해결하기 위해 활동합니다. 지금도 계속되는 전시 성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연대하며 전쟁과 여성 폭력이 없는 세상을 위해 행동하는 박물관입니다.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관람시간: 화~토요일 오전 11시~오후 6시(일·월요일 정기휴관, 공휴일 관람은 홈페이지 참고)

주소: 서울 마포구 월드컵북로11길 20
관람료: 성인 3000원, 청소년 2000원, 초등학생 이하 1000원(10인 이상 단체 홈페이지 예약 시 교육 프로그램 신청 가능)
문의: 02-392-5252
홈페이지: www.womenandwarmuseum.net


일본군‘위안부’ 역사관
나눔의 집에 위치한 일본군‘위안부’역사관은 일본군 성노예제를 주제로 세계 최초로 세워진 역사관입니다. 1930년대부터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까지 자행된 일본군 성노예제 관련 자료를 전시하고 이에 대한 역사 교육을 진행하며 돌아가신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를 추모하기 위해 1998년 8월 14일 개관했죠. 나와 같은 피해자가 다시는 없어야 한다는 할머니들의 바람과, 9년여간 모금에 참여하고 건립에 뜻을 모아준 사람들의 힘으로 세워졌습니다.
나눔의집 부설 일본군'위안부'역사관
관람시간: 3~10월 오전 10시~오후 6시, 11~2월 오전 10시~오후 5시(월요일, 설·추석 연휴 휴관)

주소: 경기도 광주군 퇴촌면 가새골길 85
관람료: 성인 5000원, 초·중·고생 3000원 / 30인 이상 단체(홈페이지 예약) 성인 4000원, 초·중·고생 2000원
문의: 031-768-0064
홈페이지: www.nanum.org


민족과여성역사관
1990년 이래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과 투쟁해온 자료를 전시하여 일본의 만행을 알리고, 일본 정부가 할머니들에게 사죄하고 배상할 때까지 할머니들을 지키고 위하는 장소로 김문숙 (사)정신대문제대책부산협의회장이 마련한 역사관입니다. 할머니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 일본 정부가 최초로 위안부 문제를 인정하고 보상하기로 결정하기까지 7년 동안 투쟁의 영상·문서·사진 등 자료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관부재판은 영화 ‘허스토리’로도 알려졌죠.
민족과여성역사관
관람시간: 평일 오전 9시~오후 5시

관람료: 무료
주소: 부산 수영구 연수로 397
문의: 051-754-3444
홈페이지: www.womenandwarbusan.com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
일제 강제동원의 개념부터 그 진상을 밝히고 끝나지 않은 강제동원 피해자의 고통을 알리며, 인권과 세계평화에 대한 국민 교육의 장을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건립됐죠. 정부에서 수집한 강제 동원 수기, 사진, 피해자 기증 물품 등을 전시하며, 자유학기 연계 프로그램, 체험 프로그램(예약 051-629-8632·3)을 진행합니다.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
관람시간 : 오전 10시~오후 6시(30분 전 입장 마감, 월요일, 1월 1일, 설날 및 추석 당일, 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다음 평일 휴관)

관람료: 무료
주소: 부산 남구 홍곡로 320번길 100
문의: 051-629-8600(10인 이상 단체 전시 해설 신청 가능)
홈페이지: museum.ilje.or.kr


희움 일본군‘위안부’역사관
일본군 ‘위안부’ 제도와 생존자들의 기억, 문제 해결을 위한 운동사를 전시하며, 나아가 평화와 여성인권이 존중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실천하는 역사관입니다. 2010년, 고(故) 김순악 할머니께서 “내가 죽어도 나를 잊지 말아 달라”라는 유언과 5천여만원의 유산을 기증, 다른 할머니들도 뜻을 함께해 마련된 씨앗기금에 시민들의 성원을 더해 건립됐습니다.
희움 일본군'위안부'역사관
관람시간: 화~토요일 오전 10시~오후 6시(30분 전 입장 마감, 일·월 정기휴관, 임시 휴관일은 홈페이지 사전 공지)

주소: 대구 중구 경상감영길 50
관람료: 성인 2000원, 청소년 1000원, 초등학생 이하 무료(10인 이상 단체 예약 필수)
문의: 053-254-1431
홈페이지: www.heeummuseu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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