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최선호 역사 칼럼] 소도 잡아먹는 외상, 할부의 역사

“외상이면 소도 잡아먹는다”라는 속담이 있다. 당장에 이득이 되고 편리하면 뒷일을 생각할 겨를이 없이 일을 벌이고 본다는 뜻이다. 주로 부정적인 상황을 묘사할 때 쓰는 속담이다. 하지만 우리는 살다 보면 외상으로 일을 벌이고 보는 경우가 한둘 아니다. 현대에 와서는 아주 보편화한 것이 외상이라고 할 수 있다. 가장 흔한 예가 주택과 자동차를 살 때 할부제도를 활용한다. 할부를 이용하지 않으면 주택과 자동차를 마련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닐 것이다. 할부의 개념은 언제부터 꽃을 피웠을까?

기원전 2500년 무렵에 지금의 중동지방에 있었던 고대 아시리아 왕조의 기록에도 할부 판매의 기록이 보인다. 로마 시대에도 시저와 동시대에 살았던 크라수스가 로마 외곽에 대량으로 주택을 지어 팔았는데, 할부를 이용해서 팔았다는 기록이 보인다. 이러한 것으로 유추해 보면 할부 판매 방식은 인류 문명의 역사만큼이나 오래 됐음 직하다. 하지만 막상 할부 판매가 꽃을 피운 때는 역시 미국의 역사와 맞물린다. 본격적으로 할부 판매가 이루어지게 된 일은 재봉틀의 대량 생산이 가능하면서부터이다.

재봉틀이 생겨나자 재봉틀을 가장 먼저 반긴 사람은 역시 여성들이다. 손바느질하느라 밤을 지새우다시피 해야 하는 수고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니 오직 반가우랴. 1856년에 싱어(Singer)라는 사람에 의해 가정용 재봉틀이 대량으로 생산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가정용 재봉틀을 대량으로 생산하고 보니 잘 팔리지 않았다. 재봉틀 가격이 만만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정용 재봉틀 한 대의 가격이 봉급생활하는 보통 가정의 석 달 치 봉급액 수를 웃돌았다. 고민에 빠진 싱어는 멋진 아이디어를 생각해냈다. 할부 판매를 하기로 한 것이다. 할부 판매를 통해 재봉틀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 싱어 재봉틀은 재봉틀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다음 할부 판매를 통해 대성공을 이룬 기업은 바로 제너럴 모터스(GM) 자동차 회사이다. 미국에서 자동차의 대량 생산을 처음으로 이룬 사람은 헨리 포드(Henry Ford)이다. 하지만 포드는 할부 판매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이었다. 가계의 부채가 늘어나면 국가 경제에 커다란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 듯하다. 포드는 자동차의 단점을 파고든 회사가 바로 GM 자동차이다. 1919년에는 General Motors Acceptance Company(GMAC)라는 금융회사를 세워서 소비자들이 할부를 통해 쉽게 자동차를 살 수 있도록 했다. 이 아이디어는 대박을 터트렸고, 금세 GM의 판매량은 포드를 추월하게 되었다. 포드도 나중에 할부제도를 도입하기는 했지만 한참 후의 일이다.. 지금은 모든 자동차 판매 업체가 100% 할부를 이용해 자동차를 판다고 보면 된다.
일정한 이자를 받고 할부 판매를 하면 판매량이 증가해서 좋고 이자를 받으니 이윤이 늘어서 좋으므로 그야말로 일거양득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할부 판매에는 파는 측에 적잖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이것을 방지하기 위해 대개 물건에 저당을 걸어 놓는다. 그러나 저당을 걸어 놓아도 물건을 가지고 자취를 감추어 버리든지, 물건을 망가트리고 도망가면 판매자 측에게는 손실이 발생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현대에 와서는 대개 신용이 좋지 못한 사람에게는 더 높은 이자율을 붙여서 할부를 허락해 준다.
일설에 의하면, 자동차 판매의 경우에 자동차 딜러 측은 할부를 이용하지 않고 현금으로 자동차를 사는 사람을 별로 반기지 않으며 또한 신용도가 낮은 사람을 신용도가 좋은 사람보다 더 반긴다고 한다. 신용도가 낮으면 더 많은 이자를 받아 이윤을 높일 수 있으므로 그렇다는 뜻이다. 주택을 사는 경우에는 융자에 따른 이자 지급액은 과세 대상에서 공제시켜 주기도 한다. 이로 미루어 보아 정부도 결국 할부 판매를 권장한다고 말할 수 있다. 백화점이나 홈 디포(Home Depot) 같은 대형 소매 회사에서 물품을 살 때 판매원들이 구매자에게 할부로 살 것을 적극적으로 권하는 것을 보면, 할부 판매가 결국 물품을 파는 측에는 많은 이점이 있나 보다. 외상이라고 무조건 소도 잡아 먹지 말고 할부 판매가 소비자에게도 실질적으로 이득이 되는지는 소비자 스스로가 판단해야 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고 하겠다.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