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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 그레이 칼럼] 감사의 계절

워싱턴DC에 머물 적마다 즐겨 이용하는 커피숍은 베테랑스들이 운영한다. 나도 베테랑이라 이왕이면 그들의 비지니스가 잘 되길 바라면서 일부러 몇 블럭을 더 걸어가도 그 커피숍을 찾아간다. 커피도 맛있고 가게 분위기도 편안하고 좋다. 이번에 주문하려고 줄을 섰는데 앞에 서있던 젊은 여자가 불쑥 돌아서서 “스카프가 멋져요” 했다. 순간 당황했다. 갑자기 내려간 기온으로 집을 나서며 두리두리 목을 둘러싼 스카프는 디자인이나 색깔이 별로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작은 친절로 추위를 잊게 해준 여자의 뒷모습을 보며 “이렇게 배우는구나”싶었다. 낯선 사람들 사이의 벽을 무너뜨릴 줄 아는 지혜, 얼마나 멋진가. 진정 인간적인 관심을 보여준 그녀는 겨우 30대 인데 그 두배를 살면서 실천에 둔한 내가 배웠다. 사계절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달력의 마지막 페이지를 마주하며 올해 나는 낯선 사람의 얼굴에 미소를 띄게 한 적이 몇 번이었을까 자신에게 묻는데 여름에 런던에서 일어난 일이 떠올랐다.

상가로 유명한 옥스포드 거리를 걷다가 사람들로 붐비는 대로에서 빠져나와 샛길로 들어섰다. 어떤 사무실 건물1층에 건강 음료점이 있어서 들어가 봤다. 미국과 같았다. 직접 싱싱한 채소나 과일들을 짜서 쥬스를 만들어주고 건강식 수프와 샐러드도 함께 팔았다. 오르가닉 취급점인 가게안을 둘러보고 나서는데 주인이 불렀다. 그녀는 쇼핑백에 수프가 담긴 통들과 다양한 샐러드 박스들을 잔뜩 담아서 줬다. 가져가서 먹어보고 좋으면 앞으로 자신의 가게를 이용해달라고 했다. 여행객이고 호텔에 묵는다고 사양했더니 괜찮다며 스푼과 포크에 냅킨까지 챙겨서 넣어줬다. 돈을 지불하겠다고 해도 그녀는 사양했다.

커다란 쇼핑백을 들고 나서니 문 앞에서 기다리던 남편이 놀랐다. 사실 나도 여태껏 이런 체험을 한 적이 없다. 낯선 손님에게 공짜로 음식을 싸서 안겨주는 가게 주인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놀랍고 신기했다. 내가 앞장서서 샛길로 들어섰을 적에 길을 잃어버릴까 걱정하던 남편에게 “누군가 막강한 파워가 나를 이 길로 인도해서 이런 축복을 줬다” 했더니 남편이 씩 웃었다. 호텔로 가져온 음식은 여러 사람들과 나누어 먹었지만 아무도 나의 스토리를 믿지 않았다. 다음날 그 가게에 다시 들렀다. 야채쥬스를 주문하고 두리번거리며 그녀를 찾았다. 잘 먹었다고 인사하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그녀를 보지 못했다. 아무튼 앞으로 런던을 들리면 꼭 방문할 곳이 생겼다.



추수감사절에 온 가족이 큰딸네에 모였다. 두 딸과 사위들, 귀염둥이 손자에 둘러싸인 우리 부부는 이제 영락없이 할머니 할아버지 위치로 자리잡았다. 손자와 함께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남편은 세월의 흐름을 잊었다. 부엌에서 추수감사절 전통음식을 요리하는 든든한 두 사위를 지켜보다가 방에 들어가 딸들의 대화에 잠시 귀 기울였다. 그녀들은 직장 일의 스트레스를 풀고 있었다. 하지만 인연의 끈으로 뭉쳐진 다문화 가족 각자의 마음에는 평안과 행복이 가득했다. 식탁에 둘러앉아 맛있게 구워진 터키를 먹으며 1863년에 추수감사절을 연방공휴일로 정한 링컨대통령에 감사하고 각자 올해 받은 축복을 서로 이야기했다.

무엇보다 둘째 사위는 자신에게 일어난 일연의 일들을 열거하며 2018년은 특별한 해였다고 감사했다. 영국인인 사위는 미국 시민권자가 됐고 조지아법대를 졸업했다. 여름에 모국을 방문해서 가족과 해후한 후에 돌아와 연방법원에 근무한다. 변호사 시험에 통과해서 정식으로 조지아주 변호사로 등록했고 보태서 지난달 선거에 투표권까지 행사하며 그는 완전히 주류사회에 들어섰다. 한 이민자의 빠른 변신이다.

나도 벅찬 가슴을 누르며 올해 여러 곳을 자유롭게 여행 다닐 수 있었던 축복에 감사한다. 여행지에서 보고 감탄했던 아름다운 정경들이 파노라믹 그림으로 눈앞을 지나가자 그 그림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이 선명하게 다가와 미소를 띄게 한다. 친절과 배려를 아끼지 않았던 사람들의 따스한 마음이 아직도 느껴진다. 여행하며 내가 얻은 수확은 새로운 체험만 아니라 지역인들과 나눈 인간애도 있다. 피부색과 문화는 달라도 모두 동질의 감정을 가졌다. 여행지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 옷깃도 스치지 않고 지나간 사람들조차 나의 삶을 풍요롭게 해줘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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