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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 그레이 칼럼] 어떤 재회

아침을 먹으러 들린 동네 식당에서 옛 지인을 만났다. 오래전 함께 공군으로 같은 부대에서 근무했던 나와 나이가 비슷한 흑인 동료다. 18년만에 만났으니 반가워서 옆에서 눈총을 주는 남편이나 주위 테이블의 손님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우리는 법석을 떨며 서로의 손을 잡았다. 상공회에서 일하며 사귄 사람들보다 군복을 입고 같이 일했던 동료들과는 깊은 교감을 나눴던 각별한 인연이라 재회하면 무척 반갑다.

근데 그와 마주앉은 여자는 낯설었다. 내가 기억하는 그의 와이프가 아니었다. 그는 퇴직 후 아내를 잃고 재혼한 여인이라며 소개해줬다. 같은 시기에 남편과 사별하고 그를 만났다는 여인은 스스럼없이 대화에 참여했다. 내 딸들이 성장해서 집을 떠났듯이 그의 아이들과 그녀의 아이들도 성장해서 모두 출가했고 두 사람은 우리 부부처럼 단출하게 산다. 그는 군복을 벗은 후 남부침례교 목사로 변신해서 몽고메리 서쪽에 있는 교회에서 목회하며 봉사와 헌신의 삶을 살고 있다. 서로의 변화와 성장한 아이들 소식에 이어서 손자 손녀들의 사진을 보여주며 우리는 연신 키득거렸다. 그들 부부는 합쳐서 벌써 11명의 손주로 자손 부자가 되어 있었다. 손주들이 많아서 생일을 기억하는 것이 힘들다는 그들을 부러워하는데 남편이 옆에서 욕심내지 말라며 핀잔을 줬다.

이어서 우리가 함께 일했던 다른 동료들의 근황을 아는 대로 서로 나누다가 그를 통해서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흑인 여군 탄야의 스토리다. 20대 초였던 탄야는 내 아래 사병이었다. 그녀와 또 한 젊은 백인 사병 마커스에게 야망을 가지라고 격려해서 대학교육을 받도록 권장했다. 그들은 다른 병사들보다 순수했고 성실해서 내가 특히 아꼈다. 가능성이 많는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갖고 꿈을 펼치라고 선동했더니 점심시간과 퇴근 후에 대학 강의실을 찾아서 열심히 공부한 그들은 마침내 학위를 취득했다. 그리고 장교로 승진했다. 그들의 성공이 마치 나의 업적인양 가슴이 뿌듯했었다. 장교 교육을 마친 두 사람은 타 부대로 발령받아 떠났고 나도 퇴직한 바람에 슬그머니 그들과의 연락이 끊어졌다.

가끔 그 두 사람을 생각하면 흐뭇했다. 그리고 그들이 어딘가에서 잘 근무하며 행복하게 살리라 믿었다. 마커스는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탄야의 소식은 듣지 못했다. 그러니 탄야가 15년 전에 세상을 떠났다는 뉴스에 화들짝 놀랄 수 밖에. 무소식이 희소식이 아니었다. 수줍게 미소를 띄우던 그녀의 여린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그는 지인을 통해서 어린 아들을 남겨두고 세상을 떠난 탄야의 슬픈 소식을 들었다고 했다. 탄야의 아이는 미시시피에 사는 친정 부모가 데려갔다고 했다. 군 복무하며 몇 년 힘들게 공부해서 승진했는데 훨훨 날지 못하고 날개를 퍼덕이다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는 탄야의 뉴스는 내 가슴에 아픔을 줬다. 오래전 하늘의 별이 된 그녀의 소식은 나의 기운을 뺏다.



그녀가 살아있음을 의심하지 않았던 과거의 날들이 좋았다. 아끼고 사랑했던 후배를 잃고 내 삶의 균형이 비틀거렸다. 심성이 고운 그녀는 ‘타이거 맘’처럼 강하게 밀어부치던 나의 후원을 한번도 불평하지 않고 고분고분 잘 따라서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공부했다. 내 딸이 공부하면 집안 청소나 설거지도 시키지 않았듯이 시험 때가 되면 나는 그녀의 업무를 가볍게 들어줬다. 그런 나의 작은 배려를 늘 감사해 하던 그녀는 이제 이 세상에 없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리’ 로 기적적으로 만날 기회를 기다리던 나는 찬물 세례를 받았고 탄야는 이제 내 속에 아픔으로 머문다.

몇 지인들과 계속 연락하지 않고 무심히 지내는 나의 버릇을 기억하니 어쩌다 소식이 끊어진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저 바쁜 일상을 핑계로 세월의 흐름에 따라 나의 관심 밖으로 엉거주춤 밀려난 그들의 소식이 궁금하다. 그들이 아무리 먼 곳에 살아도 흔한 이메일이나 텍스트로 손만 내밀면 순식간에 닿을 수 있지만 탄야의 소식을 들은 후라 동시에 두려움도 인다. 어쩌면 스쳐 지나간 지인들과의 인연은 소멸한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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