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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 봉의 미국에서 세자녀 키우기] 부모 마음

전 직장동료 케이티가 그만둔다는 소식을 들었다. 다른 직장을 구했거나 인사상 불이익을 당하는 것은 아니고 나이가 들어 은퇴하는 거다. 전 직장에서 매니저였고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도 함께 일하고 있는 스테이시 역시 자기 일처럼 잘됐다면서 기뻐한다.

케이티에게는 내 또래의 자식들이 있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결혼을 일찍 했기 때문에 연세가 아주 많다고는 못하지만 그래도 어머니뻘이고 언제 은퇴하든 이상할 게 없었다. 같이 일하고 있을 땐 딸과 사위가 있는 플로리다에 가서 살 거라고 종종 말하곤 했다.

그럼에도 지금껏 미룬 것은 몇년째 약혼 중인 애인의 사정 때문이다. 공항에서 일하는 그에게는 대학을 다니는 막내딸이 있는데 아버지 노릇을 하느라 등록금을 대줘야 해서 직장을 그만둘 수 없었다는 것이다. 듣자 하니 올해가 졸업이라 드디어 자식을 책임지는 의무에서 벗어나 은퇴를 결행하고 몇년동안 미뤄왔던 결혼식을 올린 뒤 함께 플로리다에 갈 거라고 한다.

화려하진 않되 소박하게 성실했던 그녀다. 일에서 해방돼 홀가분히 떠남을 축하하며 문득 드는 생각이 있다. 보통 미국 사람들은 자식이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알아서 살게 하는 줄 알았더니 꼭 그렇지도 않은가 보다. 넉넉지 않은데도 결혼과 은퇴까지 미루며 아이를 위해 일을 하는 건 한국계를 포함한 아시안들만의 얘기인줄 알았건만 부모의 마음이란 세상 어디든 같은 모양이다.



물론 한인들 말고도 교육열이 높은 소수계들이나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중산층들이 자녀들의 학비를 지원하는 경우가 많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나아가 자녀가 독립해 자리를 잡을 때까지 경제적 지원을 계속하기도 하는데, 그래도 그건 어디까지나 형편이 되는 사람들이나 그런 것 아니겠나.

사회에 막 발을 디딜 자녀가 평생 갚아야 할 학자금 빚을 지고 시작하는 걸 원하는 부모는 없다. 다만 부모의 인생은 부모의 것이고 자식의 인생은 자식의 것이니 부모 능력이 안 되면 안타깝지만 별 수 없는 일이다. 힘들더라도 아이가 알아서 헤쳐나가야지.
이게 미국의 일반적인 정서고 나 역시 그런 생각이다. 월급쟁이 맞벌이로서 연년생 세아이들의 대학 등록금을 한꺼번에 마련한다는 건 아마 불가능할 터다. 어차피 안 되는 것, 미국 사람들의 보편적인 정서에 기대 애들 인생은 본인들이 알아서 해야 한다고 편하게 마음 먹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케이티 애인의 사례를 접하니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예전에 비해 올라도 너무 오른 대학 학비는 학부만 졸업하고 평범한 회사에 취직하는 젊은이들에게 너무나 큰 짐이 된다. 부모 된 자로서 어떻게든 부담을 줄일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하는 걸까. 설사 그게 은퇴 시기가 지난 뒤에도 일을 그만 두지 못하고 본인의 인생은 뒤로 제쳐둔 채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거라도?

미국의 대학 등록금은 지난 40년 동안 1000%가 넘게 올랐고 앞으로도 꾸준히 오를 전망이다. 대학생 학자금 대출이 1조 달러를 넘긴 게 지난 2014년인데 지금처럼 규모가 계속 커지면 정부마저도 감당하기 어려울 수 있다. 얼마 전 트럼프 대통령이 대학 학자금 융자액 상한선을 제한하고 상환 옵션을 줄이자고 나선 실정이다.

한국은 김영삼 정부의 대학정원 자율화와 대학설립준칙주의 정책 이후 학력 인플레가 더 이상 나빠지기도 힘들 정도로 심해졌다. 그 결과는 고학력 실업자 양산에 사회적 불만 팽배다. 미국도 그런 전철을 밟고 있는 걸까. 이미 대졸 취업자의 3분의 1은 대학 학력이 필요 없는 직업에 종사하고 있다는 통계가 있다.

그런 점에선 비싼 등록금으로 문턱을 높이고 자질이 되는 이들이 장학금 등 재정적 지원을 받으며 대학에 들어가는 것도 나쁘진 않다. 다만 내 자식이 그 중 하나가 되지 못하니 문제가 된다. 부모가 허리를 휘어가며 지원을 하든지 아니면 아이의 남은 인생 동안 대출빚이나 갚든지 둘 중 하나다. 철이 일찍 든 아이들은 부모 짐을 덜어주고 나라도 위할 겸 입대하기도 하지만 그것도 본인이 내켜야지 그렇지 않으면 강요할 수 없는 노릇이다.

먹고 살기 바쁜 부모가 능력이 안 되니 조부모까지 나서서 손주 대학 등록금을 내주고 있다는 뉴스를 본 적도 있다. 미국의 절반 가까운 조부모들이 평균 연 2만5000달러 이상 손자손녀 교육비를 지원하면서 노후 걱정을 한다는 내용이다. 언제부터인지 미국도 한국처럼 대학이 예전 중고등학교처럼 "기본" 교육이 돼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엄청난 비용과 함께.

큰 애가 이제 10살이니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다고 해야겠지만 그래도 걱정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해놓은 것 없이 어영부영 나이만 먹는 것 같아서다. 이렇게 몇 년 더 지난다고 뭐가 달라지랴. 20대 후반에 한국을 떠나면서 미국 살면 이런 고민 안 할 줄 알았다. 세상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인 모양이다.[관세사, 그레인저사]


봉윤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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