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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죽음에서 배운다

별은 자기 질량에 따라 다른 종말을 맞는다.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이 있는가 하면 검은 구멍을 만들기도 한다. 질량은 물체의 고유한 역학적 기본량이다. 사람도 각자의 생에 따른 고유한 질량을 가지고 살다가 죽음이라는 종말을 맞이한다. 한평생 자신의 어깨에 지워진 생의 무게를 감당하며 사는 게 무겁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나락의 길목에서 모든 걸 버리고 싶은 순간이 없었으랴. 그래도 살 사람, 살아야 할 사람은 산다. 생사를 선택할 권리가 인간에게 없다.

유성(流星)은 우주 공간의 먼지덩어리가 지구의 대기권 안으로 들어가 빠른 속도로 낙하하며 공기와 마찰하면서 내는 빛이다. 유성은 밝은 빛줄기다. 별이 아닌 유성이 내는 빛은 1/수십 초에서 수 초 사이다. 인생은 유성처럼 그 한 순간의 빛을 내기 위해 먼지 속에 헤매이다 자취없이 사라지는 별똥별이 아닌지.

혜성(彗星)은 태양이나 큰 질량의 행성 주위를 타원 또는 포물선 궤도를 가지고 도는 태양계 내에 속한 작은 천체다. 꼬리별이라 부르는 혜성도 잠시 빛나다 사라진다. 혜성처럼 등장해도, 살별이란 또 다른 슬픈 이름을 가진 혜성은 긴 꼬리 내린 채 어둔 밤하늘에 포물선을 그리며 종국에는 자취없이 사라진다.

인간에게 철저하게 평준화된, 피해 갈 수 없는 게 죽음이다. 나이 탓인지, 요즘 죽는 사람 숫자를 너무 많이 본 때문인지 사는 게 두려워졌다. 삶 속에 죽음이 주리를 틀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부모가 돌아가셨는데 그림이나 가구를 어떻게 처분해야 되는지 화랑으로 문의 전화가 자주 온다. 남의 일같이 생각 했는데 요즘 심각한 고민으로 다가온다. 내가 죽으면 이토록 알뜰살뜰(?) 벌려놓은 살림은 누가 정리하나. 민폐 안 끼치게 일찌감치 정리할 생각을 하니 마음이 슬프다.



윤흥길의 중편소설 ‘아홉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의 주인공 권씨는 방 한칸에 세들어 살지만 반짝거리는 구두가 열 켤레나 된다. 권씨는 택지개발 때 내 집 마련의 꿈을 안고 철거민 딱지를 샀다가 낭패를 보고 철거민 대책위원회 회장을 하다 시위 주동자로 몰려 징역살이를 한 인물이다. 아내의 출산 입원비를 빌려 달라며 화자인 집주인을 찿아가지만 거절 당하고 그날밤 주인 집에 서투른 강도짓을 하려다 도망을 간 뒤 행방 불명이 된다. 돈을 안 발려준 집 주인은 마음이 편치 않아 권씨 아내 수술비를 대주는데…. 그날 밤, 가장 값 나가는 세간이라곤 하나 밖에 없는, 장롱이 있던 그 자리에 아홉 켤레나 되는 구두들이 ‘사열 받는 병정들 모양으로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라고 작가는 적고 있다. 출판사에 일했다며 “이래 봬도 나 대학 나온 사람이오”를 중얼거리던 권씨의 늘 반짝거리는 아홉 켤레의 구두는 선량한 소시민의 인간적 위엄을 지키려는 자긍심의 상징으로 표현된다.

사람은 죽어서 무엇을 남기나. 정답은 ‘아무 것도 없다’이다. 파바로티는 천상의 목소리를, 고호, 고갱은 불멸의 빛과 색을, 베토밴은 위대한 교향곡을 남겼지만 서민들이 남길 건 사회복지단체에 기증하거나 버릴 자질구레한 물건 뿐이다. 죽음의 의미를 깨우치면 삶이 달라진다. 산다는 것은 죽음을 염두에 둔 행진곡 이다. 죽음은 모든 것을 남기고 혼자 떠난다. 무엇을 남길까 걱정하지 말고 무엇을, 어떻게 하며 오늘을 살 것인가 고심해야 한다. 죽음은 선택이 없는 신성한 이별이다. 이름 명예 남길 생각 말고 깨끗하게 지우고 떠날 준비를 해야 한다. 죽음에서 배운다. 죽음은 사는 동안 경건하게 엄숙하게 살라고 가르친다.(Q7 Fine Art대표, 작가)




이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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