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호수의 얼굴
호수의 얼굴
호수 위로 수직 수평의 선들이 지나간다
길게 둥글게 연결되어 한 선처럼
그녀는 잔잔한 물결을 이루며 눈을 뜬다
흔들리는 풀같이 고단한 하루를 시작한다
앞으로 다가서고 뒤로 물러나며
평면의 그녀는 일어나 입체로 접어진다
빛의 방향으로 그림자가 길게 눕고
어둔 그림자 속에서도 빛의 존재가 어렴풋이 보인다
그녀는 양면으로 팔을 뻗으며 긴숨을 들이 마신다
풍경은 저 멀리서 빠르게 눈앞으로 다가온다
나를 지우는 것도 나를 그리는 것이어서
좌우로 빠른 손끝의 움직임에 그녀는 멀고 가까워진다
호숫가 잘려나간 나무 밑둥에 앉는다
오른쪽 끝을 만지다 왼쪽 끝으로
머리를 매만지다 턱밑이 깊어진다
눈 가장자리를 만지다 귀 매무새를 정리하고
콕 눈동자, 코끝의 정점을 찍는다
눈매가 살아나고 갸름한 양볼의 돌출 같은 웨이브
호수는 그녀 얼굴로 깊어간다 (시카고 문인회장)
문득 호수의 얼굴은 그녀의 삶과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것도 없는 쓸쓸함. 기댈 곳 없는 막막함으로 그만 지쳐 쓰러져 버릴 것만 같은 그녀의 인생이 애처로워 보인다. 그럼에도 불평없이 홀로 씩씩하게 살아갔던 그대를 바라보듯 호수를 바라본다. 가까이 갈수도 말할 수도 없는 그대를 마음으로 따라가본다. 그대가 견디어 냈어야 할 삶의 무게들을 생각해보면 나도 그 무게만큼의 아픔이 몰려와 호숫가에 철퍼덕 주저 앉는다. 바람이 불어온다. 그녀의 따뜻한 약손이 내볼을 훔친다. 철없는 자녀들을 위해 저녁밥을 지으며 눈물을 감춰야 했던 그녀를 안아본다. 속옷을 꿰매어 입으면서도 명랑하게 웃었던 그 기억의 한 순간도 놓칠 수 없다.
그대는 지금 이곳에 없다. 지금 이곳에 그녀가 없는 것처럼 그녀는 사는동안 내내 자신을 조금씩 지우는 삶을 살았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혹은 의도적으로 여러갈래로 난 길들을 지웠다. 그녀는 자신의 몸 안에 보이는 한길 만을 걸었다. 옆을 바라보지 못하는 장애자처럼 살았다. 무거운 한걸음을 띄면 희미하게 보이는 다음 길로 발을 옮기면 나아가야 할 길이 어렴풋이 보이곤 했다. 그녀는 어느 날 달아 없어졌다. 자신의 몸을 새끼에게 먹이고 껍데기만 남아 둥둥 떠나는 가시고기처럼 그녀는 둥둥 하늘나라로 갔다. 호수에 비친 하늘에 그녀가 보인다. 그녀는 물결 사이로 고통도 없고 눈물도 없는 그곳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신호철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