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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사람들] 미주문화예술가협의회 명계웅 회장

“그저 그저 감사하죠”

애틀랜타로 유학을 온 해가 1970년이다. 명계웅(사진•77) 미주문화예술가협의회장은 미국에 오기 전 대전 한남대 영문과 조교수였다. 연세대 영문과 60학번이다.

2년의 석사 과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가서 강단에 섰으나 한국 정치의 혼돈 속에서 곧 사표를 내고 1973년 시카고로 들어왔다. 목사나 신부 등 지인이 있었기 때문이다.

로욜라대학 병원에서 통역을 6개월 했었다. 그러다가 시카고공립학교(CPS)에서 이중언어 교사를 뽑는다는 소식에 응모했다. 사실 대광중고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기도 했었기 때문이다.

시카고 공립학교에서 ESL(English as a Second Language) 교사로 재직하다 60세 때 은퇴했다.



재미한국학교협의회(NAKS) 총무로 봉사하던 시절, SAT II 시험에 한국어를 포함시키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고 당시 삼성그룹에서 50만 달러를 기부 받아 성사시켰다. 미중서부한글학교협의회를 1994년부터 맡아 이끌었고 2011년부터 4년간 다시 노스이스턴대학에서 아시안 아메리칸 세미나 코디네이터로도 활동했다. 당시 대학 총장과 협의해 음악 강당에서 소프라노 조수미 초청 음악회를 개최했던 일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1984년 시카고 문인회를 창립해 초대회장을 지내며 이태영, 김유미씨와 함께 활동하기도 했다. 시카고 예술인협회는 손만성, 박정윤씨와 뜻을 모아 1986년 결성했다.

클래식, 팝송에 대한 취미가 남달라 지금도 1천장의 CD를 소장하고 있으며 영화 DVD도 많다.

1988년부터 노스브룩에 거주 중인데 이화여대 국문과 출신 부인 장영자씨와의 사이에 아들만 둘을 뒀다.

큰 아들은 일리노이대 어버나 샴페인을 졸업한 엔지니어로 쿡카운티에서 근무한다. 큰 며느리는 노스웨스턴 의대 출신 소아과의사로 네이퍼빌에서 개업해 일하고 있다. 막내는 웨스트 포인트 출신, 예비역 대령이다. 용산 기지를 평택으로 옮기는데 관여했고 지금은 파키스탄에 파견 나가 있다.

명 회장은 미주 중앙일보 ‘밝은 미래 중앙신인문학상’ 소설, 평론 등에 대한 심사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거의 반 세기를 미국 땅에서 지내 온 그는 지나 온 자신의 삶을 회고해 볼 때 다음의 화두 3가지로 요약할 수 있겠다고 말했다.

첫째, 그저 그저 모든 것에 감사할 뿐입니다. 둘째, 지금까지 잘 지내온 것은 주님의 크신 은혜이지요.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 즉 살아서 천당, 죽어서도 천당!(Paradise in this life, Paradise after life, too)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지옥처럼 살다가 훗날 천당에 가는 것이 아니라 지금 발 붙이고 살아가는 곳이 천당이라면 더 좋지 않겠느냐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Why not?


James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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