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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과 비평’에 4월의 시 선정 됐어요”

[시카고 사람들] LED 비즈니스맨 김원유씨

“고난.”

김원유(사진•65)씨가 지은 시의 제목이다. 얼마 전 ‘창작과 비평’으로부터 4월의 시로 선정되었다는 통보를 받았다.

그는 1990년 시카고 오헤어 공항에 도착했다. “한마디로 돈을 벌려고 왔다.” 부인과 8세 아들, 7세 딸과 함께였다.

시카고에는 간호사인 고모와 켓지길에서 그로서리를 하던 고모부가 있었다.



한국 ‘코리아 제록스’사의 필드 엔지니어로 근무했던 터라 로렌스길에 소재한 관련 한인 비즈니스를 찾아다니며 시카고 정착을 모색했다. 하지만 한국과 비교, 업계 임금 수준이 현저히 떨어져 다시 한국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1년여 만에 시카고로 돌아왔다. 용감하게(?) ‘시카고 카피어’란 비즈니스를 오픈했다.

신문과 옐로우페이지에 광고를 낸 후 소위 ‘대박’이 터졌다. 당시 사무실 렌트가 월 450달러 수준이었는데 시간당 출장비 75달러를 부과할 정도였다.

“초창기에 출장 서비스를 가면 ‘Copy machine’ 발음이 커피 머쉰으로 들렸는지 자꾸 커피 기계 앞으로만 안내하더라구요.”

그는 1997년 북한 나진•선봉 국제투자 포럼에 참석했다. “남쪽과 똑같은 모습으로 살고 있더라구요. 기차길 옆 동네 아이들이 나왔는데 팬티도 안 입고 돌아다니는 모습이 과거 제가 어릴 때 살던 동네에서 보던 모습 그대로였어요. 저에게는 큰 충격이었습니다.”

그는 재미동포연합이란 단체에 들어갔다. 2000년 2월 남북공동성명으로 통일의 길이 열렸다고 보도 되고 한인 커뮤니티도 술렁이던 시절. 미국에서 통일에 기여하기 위해 북한과의 끈을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2001년 7월 두 번째 방북을 한다. 그 해 2월 시카고를 비롯 뉴욕, 샌프란시스코 등 5대 도시를 순회하는 조선음악 대공연을 성공적으로 치룬 후였다.

당시 대북 컴퓨터 수출을 주도해 약 1만 대의 컴퓨터를 수출했다. 155만달러의 대금을 받아야 하는데 문제가 터졌다. UN 대북 경제 제재로 아시아 델타방코 은행 거래 동결로 송금이 봉쇄된 것. 이로 인해 FBI 연락까지 받기도 했다고.

조선음악 공연과 관련, 당시 일리노이 검찰총장이던 리사 매디간 오피스에도 소환됐다. 자선 모금을 위한 라이선스(Charity License)가 문제가 되었다. 결국 벌금을 냈다. 2003년에는 일리노이 노동국에서, 이듬해엔 IRS 감사도 받았다.

북한 및 통일 관련 일을 하면서 그는 많은 시련을 겪었다. 특히 한국전쟁 참전용사로 3급 태극무공훈장을 받은 부친의 외면은 가슴 아팠다. 6남매의 장남인 그는 이후 다른 가족들로부터 ‘투명인간’ 취급을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심한 스트레스로 극단적인 생각까지 했지만 차마 실행하지 못 했다. “부모님과 아이들에게 누를 끼치고 싶지는 않았어요.” 모든 것을 뒤로 하고 한국으로 가서 한달 보름 가량 병원 신세를 지고 난 후 기력을 되찾고 시카고로 돌아왔다.

와중에 비즈니스는 파키스탄 종업원들이 명의까지 가로채 자기 사업처럼 운영하고 있었다. 다시 고객들을 한명 한명 찾아다니며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다행히 고객들이 차례로 돌아와주었다.

5년 전부터는 다른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 이른바 RGB 사업이다. “R은 빨간색 LED, G는 녹색 LED, B는 파란색 LED를 뜻해요. Red, Green, Blue 즉 RGB입니다. 이걸로 무한에 가까운 색을 발현시키는 거예요”라고 설명하는 그에게 “고난”이란 시가 남기는 의미는 무엇일까?


James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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