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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칼럼] 겨울 이야기

정란숙
2017년 텍사스 중앙일보 한인 예술대전
문학부문 우수상

따뜻함이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몇차레 눈소식이 들려왔던 한국과 달리 이곳 달라스는 더운 날씨가 이어져 겨울은커녕 가을도 오지 않으려나보다 여겼는데, 12월에 들어서자 기온이 롤러코스터처럼 오르락내리락하더니 마침내 겨울이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지난주부터 겨울비가 자주 내렸다. 그 비에 미처 물들지 못한 이파리들이 떨어져 세상의 색채는 수채화에서 수묵화로 바뀌었다. 오늘도 기다리던 눈은 오지 않고 반갑지 않은 비가 종일 쉬지 않고 내렸다. 겨울비는 나뭇잎들을 땅으로 돌아가게 하고, 사람들은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게 하는 묘한 힘이 있는 것 같다.
추운 날씨가 시작되면 우리 집 냉장고에는 고구마와 호빵, 어묵, 옥수수 등 다양한 야식 재료들이 채워진다. 밤이 길어지면서 남편과 방학을 맞이한 아이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궁금한 입을 달랠 게 뭐 없을까하며 부엌을 서성거리기 때문이다. 야심한 밤 온 가족이 식탁에 앉아 고구마와 호빵으로 출출한 배를 채우다 목이 메면 콜라나 사이다보다 더 생각나는 음식이 있다. 친정엄마가 만들어준 시원한 동치미다. 나이 탓인지, 때로는 음식의 맛보다 음식에 얽힌 추억 때문에 더 먹고 싶은 음식이 있게 마련인데, 내게 동치미가 그렇다.

첫 아이를 가졌을 때, 음식 냄새를 맡거나 먹을 생각만 해도 거부감을 일어 헛구역질을 할 만큼 입덧이 심했다. 그때 유일하게 먹고 싶었던 음식이 어렸을 적 먹었던 시원한 동치미였다. 살얼음이 살짝 낀 동치미 국물에 메밀국수나 냉면을 말아 먹으면 입덧이 싹 사라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미국에서 그것도 한여름에 엄마가 만든 동치미를 먹는다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것이었다. 평소 즐겨 먹던 음식도 아니고 미국에 온 후에는 잊고 있었던 동치미 국물이 애가 타도록 간절했던 이유는 아마도 입덧으로 지친 내가 미각 속에 새겨져 있는 추억으로 위로 받고 싶었던 게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김장철이 되면 엄마는 매운 김치보다 어린 자식들이 먹을 수 있는 동치미를 먼저 담그셨다. 추위가 시작될 무렵부터 알맞게 익은 동치미는 하루도 빠짐없이 겨울 밥상에 올라왔지만 크게 관심을 받지 못했다. 동치미의 진가는 밤늦게 야식을 먹을 때 비로소 드러났다, 식구들이 둘러앉아 찐 고구마나 팥죽을 먹다가 목이 메면 특유의 시원함으로 고구마와 팥죽 맛을 살려 주었다. 특히 살얼음이 낀 동치미 메밀국수의 환상적인 맛은, 야식을 먹으며 웃음이 끊이지 않았던 가족들의 모습과 함께 아직도 생생하여 잊히지 않는다.

동치미가 맛을 제대로 내려면 요란한 양념은 필요 없다. 대신 숨을 쉬는 독에서 천천히 익히는 기다림을 필요로 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발달로 대부분 사람은 아침에 스마트폰의 알람 소리에 눈을 뜨고, 자기 전까지 핸드폰으로 친구들과 메시지를 주고받거나 인터넷 서핑을 한다. 분명 스마트폰과 인터넷은 우리에게 빠르고 정확한 정보와 많은 편리함을 제공한다. 하지만 사람과 대화를 나눌 시간도 없이 사이버 속 미디어에 빠져 정작 친구나 주위 사람들과의 대화가 줄어들어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나 자신도 스마트폰의 편리함에 젖어 무슨 일이든 빨리 이루려 하고 이뤄지지 않으면 쉬 조급해하고 있지는 않은지, 빠르고 화려함이 넘치는 세상에서 사람을 봐야 할 시선이 불필요한 것들에 한눈팔고 있진 않은지 면밀하게 살펴야겠다.



떠나는 해의 끝과 새로운 해의 시작이 교차하는 계절이다. 12월을 순우리말로 ‘매듭달이라 부른다. 마음을 가다듬는 한 해의 끄트머리 달은 지나간 시절에 대한 매듭과 새로 시작될 날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한다. 이맘때가 되면 어떤 이는 후회를, 어떤 이는 희망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나의 쉰두 번째 해는 평범한 삶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를 깨닫게 해 준 한 해였다. ‘매일이 행복할 수는 없지만 하루에 한가지는 행복한 게 있다‘고 곰들이 푸는 말했다. 나도 새해에는 하루 한가지 행복을 찾아 감사하며 살아야겠다.
다사다난했던 2017년이 저물어 간다. 남은 겨울은 우리 가정도, 이웃도, 나라도 흉한 뉴스 말고 따뜻하고 훈훈한 이야기만 들려오기를 소망하며 정유년을 마감한다,

정란숙
2017년 텍사스 중앙일보 한인 예술대전
문학부문 우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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