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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칼럼] 눈짓과 몸짓: 시민권 선서식 한 날

조소현
2017년 텍사스 중앙일보 한인 예술대전
문학부문 대상

콜로라도에서 호랑이가 한 마리 죽었다. 호랑이는 평생 자신과 함께한 제 가죽을 남기고 죽었다. 동물 왕국의 식구들은 그의 가죽을 보며 죽은 호랑이를 기린다. 인간인 우리들이 남기고 싶어하는 것은 단 몇 글자의 이름. 살아 생전 인간이라면 한 번쯤은 이 세상에 자신의 이름을 남기고 싶다는 마음은 지극히 인간적이다. 특히나 그 세상이 한국에서 미국으로 바뀐 경우, 이민자 라는 또 다른 이름을 가진 우리들이 이 타향에서 이름을 남기기는 참으로 어렵다. 이름을 남기거나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는 커녕, ‘그냥 아시안’이 되기 일쑤다. ‘그냥 아시안’이 되지 않고 내 이름으로 살아남기 위해 우리는 고군분투한다. 나 역시 그러하다. 김춘수 시인의 시에서처럼 ‘나의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나의 이름’이 불려 지기를 고대하며 누군가의 몸짓이 아닌 눈짓이 되기 위해 나는 퍼블릭 스피킹라는 수단을 이용한다. 낯선 사람들 앞에서 마이크를 잡고 말하기는 그 기회를 얻는 것조차 쉽지 않다. 그런데 의외의 날 그런 기회가 왔다. 그 날은 바로 시민권을 취득하여 법정에서 선서를 한 날이다.

시민권을 취득하기까지 4년이라는 길고도 지루하고 또한 적지 않은 비용이 드는 시간들이 지나갔다. 마침 이름을 변경하였기에 선서식에 반드시 참석해야 했다.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캘리포니아의 경우 선서식에 300명이 넘게 온 적도 있다. 나와 남편도 열 두 시에 시작이라 우리는 열 한시 반에 법원에 도착했다. 굽이 있는 신발을 오랜만에 신었더니 피곤함이 또각또각 소리를 낼 때마다 발가락으로 모였다. 건물 일층에서 엄중한 가방 검사, 옷 검사를 마치고 이층으로 올라갔더니, 우리가 빠른 편도 아니었다. 판사님이 나중에 말하는 걸 들어보니 선서식을 치른 당사자는 스물 다섯 명이었고, 총 열 한 개 국가의 사람들이 왔다고 했다. 중국, 일본, 한국, 우즈백키스탄, 러시아, 모로코, 인도, 멕시코, 도미니크 공화국, 남 아프리카 등등. 처음으로 가 본 콜로라도 덴버 시내에 위치한 연방 법원은 건물 내부가 원형으로 되어 있고, 참 깔끔하고 고급스러워 보였다. 연방 법원 판사Judge 들의 큰 초상화가 이층 벽에 주욱 걸려 있었다.

착석을 하고 이런 저런 설명을 듣고, 모든 행사가 두 시 반에 끝난다는 설명을 들으니 또다시 피곤함과 배고픔이 몰려들었다. 아침에 준비하느라 먹은 게 채소와 과일 갈아 마신 것 밖에 없었는데, 이렇게 늦게 끝날 줄이야…… 판사가 들어오기 전, 이 일 관련한 남자 분의 안내가 있었다. “판사님께서 여러분께 시민권을 받은 감상이나 이야기에 대해 물어볼 지도 모릅니다. 만약 이야기 하시고 싶으면 하셔도 됩니다.” 라고 했다. ‘에이, 얼른 종이 한 장이나 받고 빨리 집에 가서 발 뻗고 쉬어야지. 안 그래도 남편도 피곤할 텐데, 괜히 나섰다간 쪽팔리고 말거야.’ 하지만 또 나는 그 반대편에서 말하는 나 자신을 스스로 알고 있다. ‘아니야. 내가 언제 이런 연방 법원 법정 안에서 공개적으로 말을 할 수 있겠어? 이것도 기회다 기회. 물론 뭐 나선다고 나댄다고 욕은 먹겠지만 그게 뭔 대수람? 기회를 준 것이고, 내가 그 기회를 조금 써 먹겠다는 데 말이지!’

시간이 흘러 검은 판사복을 입은 오십 대의 판사님이 들어오셨다. 판사님은 정말로 흘러가는 깨끗한 콜로라도 로키 물처럼 좔좔좔 말을 참 잘 하셨다. 그 어떤 ‘음, 어, ‘하는 불필요한 말이 없었다.



“시민권자가 되신 것을 환영합니다. 미국처럼 법이 강한 나라도 없습니다. 헌법 Constitution을 반드시 읽으시고 숙지하십시오. 우리는 법원에서 매일 이 헌법을 적용합니다. 미국처럼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을 받아주는 열려있는 나라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시민권자로서 무엇이든지 될 수 있습니다. 딱 한 가지, 대통령직만 빼고요. 크록스 신발을 만들어 큰 비지니스 사업가 된 사람이 콜로라도 출신이라지요? 여러분도 가능합니다. 시민권자로서 세금을 내십시오. 지금 이 곳에서 일하는 연방 공무원들, 저를 포함해서, 모두 여러분의 세금으로 먹고 사는 겁니다. 반드시 투표를 하세요…….” 나는 최대한 시계를 보지 않으려고, 판사님과 눈을 마주치며 이야기에 집중하려고 했다. 그래도 시간이 빨리 지나가길 바랬다. “여러분에게 오늘 기회를 주는 겁니다. 이 연방 법원 법정에서 공적으로 여러분의 이민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몇 년이 걸리고, 어떻게 시작이 되었나요? 법정에 서서 뭔가를 이야기 하는 경우는 대부분 좀 좋지 않은 일이 많은데, 오늘은 아닙니다. 자, 누가 계신가요?” 바로 이때다 싶어, 앞 줄에 앉은 내가 나도 모르게 오른손을 번쩍 들었다. 눈도 최대한 번쩍이고 얼굴엔 미소를 띄우면서 말이다. 그래서 내게 마이크가 쥐어졌다.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에서 온 조이 리라고 합니다. 제 이민 이야기는 4년 전 오클라호마 이니드에서 시작한답니다. 오클라호마 이니드에 대해 아시는 분이 여기 계신가요? (물론 없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이토록 작은 삼만 인구 도시를 누가 알까? 나는 관중들의 웃음을 끌어내고 싶었지만, 아무도 웃지 않았다. 심지어 내 목소리는 내가 들어도 민망할 정도로 떨리고 있었고, 엄청나게 soft voice였다. 부드럽고 작다 못해 떨리는 것이 너무도 확연한! 그렇다고 쪽팔린다고 그냥 탁 주저 앉을 수는 없었다. 공짜 퍼블릭 스피킹 연습 한다 치자. 그런 목소리로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저는 이 자리를 빌어 그 시간을 함께 웃고 웃은 제 남편에게 감사함을 표하고 싶습니다. 제 남편은 공군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결국 사실은 이 말을 하고 싶었다. 공적으로 남편아 고마워! 더하기 내 남편은 공군이에요 여러분~ 이라는 자랑 말이다.)

참, 저는 한국 사람이고 러시아말도 할 줄 안답니다. 여러분 Happy New Year!입니다 를 한국말로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이고 Pozdrablayou s Nobom Godom! (그런데 너무나도 떨린 나머지 스스스스 노노노밤밤밤 고담담담담 이라고 말하고 말았다.) 어쨌거나 내 목소리도 떨리고, 나댄다고 욕도 먹을 것 같고, 나 스스로도 맘에 들진 않았지만 나는 내 앞으로 온 기회를 스스로 차 버리지 않았다는 생각에 스스로 즐거워졌다. 또한 내가 너무 빨리 손을 들었고 쓸데없는 말을 길게 나부랑댄 탓인지 내 뒤로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자신감을 갖고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전 시민권 따는데 십년이 걸렸습니다.” 라고 내 뒤의 한 남미에서 오신 할머니가 말을 했다. 그에 이어 한 아저씨는 “멕시코에서 왔습니다. 시민권을 딸 수 있는 조건은 수년 전부터 되었지만 왠지 시민권자가 되고 싶진 않았습니다. 그래도 오늘 여기에 왔고, 저를 축하해 주러 제 딸과 가족들이 와 있습니다. 제 어머니도 오시면 좋았을 텐데, 어머니는 이미 돌아가셨습니다. 여기 모든 이들에게 신의 축복이 있기를!” 어머니 이야기를 하는 아저씨의 눈가가 촉촉해졌고, 목소리가 경미하게 떨렸다. 이 멕시코계 미국인 아저씨의 진정성있는 목소리에 울림이 전해졌다.

또 다른 한국인 여성분도 시민으로서의 일을civic service 다하겠노라고 다짐했고, 시민권자 중 가장 나이가 어린 스무살 여성도 멕시코에서 왔다고 하며, 자신을 물심양면으로 지지해준 엄마에게 감사한다고 했다. 또한 모로코에서 온 여성분도 자신이 대학원에서 연구를 하고 있는데, 자신이 하는 연구는 미국에서 지지를 받는 일이라며 만약 모국에서 있었다면 그 일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여러분도 미국의 교육을 잘 활용하라고 당부해 주었다. 모든 이들의 이야기는 각자 고유한 빛을 지녔을 것이다.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시민권을 한 명씩 호명하여 받고 사진도 찍고, 밖으로 나와 찬 공기를 들이마시니 다시 웃음이 나왔다. 남편은 고맙다는 말보다 먼저 ‘우리 마누라는 나대기를 엄청 좋아해. 그리고 엄청 길었어.’ 라고 쿠사리 아닌 쿠사리를 주었지만, 그의 쿠사리가 내 웃음을 막지는 못했다. 결국 한 번사는 인생이고, 어떤 순간이든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를 최대한 활용하는 것, 그러면서 내 존재감 ‘나 살아있네!’를 스스로 느끼는 즐거움이 미국 사회에서 이민자로서의 내 생존법이다. 나의 경우는 오늘 어찌하였든, 연방 법원에서 ‘한 마디’ 남겼고, 법원에 기록으로 남는다고 하니 이 또한 조씨와 이씨 가문에 길이 남을 일을 하였도다!

조소현
2017년 텍사스 중앙일보 한인 예술대전
문학부문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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