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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공모전 수상작> 사랑, 또 다른 삶 그리고 희망

중앙일보와 H mart가 공동주최한 제1회 텍사스 한인예술공모전 수상작
최우수상 조소현(수필)

오클라호마의 봄은 사랑과 희망을 잉태하고 있는 것 같아 가슴이 설렌다. 평야는 초록풀들로 덮이고, 바람이 불면 풀들이 촤르르 몸을 눕혔다가 일어나며 물결을 이룬다. 그러한 모습에 저절로 동화되어 ‘나도 저 풀들처럼 이 환경과 자연에 적응해 꿈을 꽃피워 가며 살아야지.’하는 다짐과 기쁨이 생긴다. 내 미국 생활의 첫발은 척박한 것 같으면서도 강한 생명력을 지닌 오클라호마에서 시작되었다

2013년 봄이 오기 전의 일이다. 취미생활로 한국어를 가르치는 선생인 나와 한국어를 배우는 미국인 남학생 제자와의 만남은 서울에서 일 년을 넘지 못했다. 제자가 미국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운명적인 힘이 작용했다. 동갑내기인 우리는 이미 사랑에 빠져 한국과 미국이라는 시공간을 뛰어넘는 장거리 연애에 몰입했다. 결국 애타는 사랑으로 한해를 보낸 후에, 내가 미국행을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이때 가족들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혔다.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는 미국놈한테 눈이 멀어 시집을 가겠다니’ 집에서는 날벼락을 맞은 듯 난리가 났다. 아름다운 나라 美國만을 상상했던 나에 비해, 아빠는 이민생활의 고단함부터 걱정하면서 절대 안 된다고 하셨다. 두 명의 오빠와 부모님이 모여 온가족 비상회의가 열렸다. 시골집 마당에서 불을 피워 삼겹살을 구워 먹으며 밤새 가족토론을 벌였다. 결국 남자 친구가 한국에 와서 인사를 하고 신분을 확인해 주기 전에는 나의 미국행은 불가로 결정이 났다.

남자 친구가 몇 달 뒤 한국에 와서 부모님과 오빠들에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 나는 그와의 삶을 위해 내 생의 방향을 바꾸는 비행기표를 사고야 말았다. ‘결혼만큼 인생에서 크나큰 도박은 없겠지? 30년을 한국에서 산 나와 같은 햇수를 미국에서 산 남편과의 결합이 쪽박나지 않고 대박으로 무르익어 단단해질 수 있겠지? 그래서 수많은 보석을 담을 수 있겠지? 그 안에는 알록달록한 우리 부부의 아름다운 인생 이야기도 가득 담게 되겠지?’ 이런 꿈을 꾸면서 하루하루 결혼 생활이 시작된 곳은 오클라호마 주에 있는 이니드Enid.



인구 3만 명의 이 소도시는 사각형 후라이팬처럼 생긴 오클라호마 주의 북쪽에 위치해 있다. 처음 와 본 미국은 한국과 많이 다르고 낯설었다. 제일 힘든 것은 고립감이다. 미공군 신분인 남편이 아침 6시 반에 출근해서 오후 다섯 시 퇴근하기 전까지는 혼자 있게 된다. 그럴 때면 한국에서의 생활과 지난날의 내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심란해지면서 어떨 때는 우울해지고 괜히 눈물이 흘렀다. 나는 서울 생활에 익숙했으며, 대학교에서 철학과 국어국문학을 석사까지 공부하고 스웨덴으로 영문학 유학까지 다녀왔다. 그리고 중견기업에서 정식사원으로 해외마케팅부서에서 일했다. 대학생활을 할 때는 학보사 기자와 편집장도 하면서 많은 책을 읽고 독서모임을 이끌기도 했다. 그 때는 결혼이란 내 인생에 등록되지 않았다. ‘결혼은 남의 일이고 인생의 무덤’이라고까지 생각했다. 그런데 어쩌다 스페인 출장을 포기하고 사표를 내던지고 이니드 허허 벌판을 걷고 있는 지 후회와 허탈감이 밀려왔다. 점심시간 후 커피 한 잔 들고 이야기를 나누며 사무실로 향하는 직장동료들의 모습이, 회사 바로 옆에 있는 대한극장 스크린에 비쳐지는 환상으로 눈앞에 나타나기도 했다.

그럴 때는 아주 사소한 일로 남편에게 짜증을 내고 자존감이 떨어져 눈물 흘리는 날이 많아졌다. 부부라고는 하지만 누군가와 함께 낯선 곳에서 산다는 것이 그렇게 많은 눈물의 의미가 될 줄은 몰랐다. 두 눈에 콩깍지가 씌워, 친구들의 충고도 가족의 걱정도 들리지 않던 내게 서서히 현실이 밀고 들어왔다. 골드미스의 왕관을 팽개쳐버리고 사랑이란 이슬만 먹고 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일상이란 태양이 이슬을 말려버렸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이니드의 춥고 황막한 겨울도 봄을 맞이해 새싹이 나고 꽃을 피우듯이 내 삶도 마냥 겨울일 수만은 없었다. 혼자만의 시간도 줄이고 돈도 벌 겸 나는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좁은 이니드에서는 쉽지 않았다. 여러 곳의 문을 두드린 끝에 다행히 한 가게에서 일을 하게 됐다.

평생 처음 해보는 일이라서 첫날부터 긴장되고 셈도 빨리빨리 되지 않았다. 꼼꼼하게 계산 한다고 해도 일을 마친 후에 정리해보면 돈이 부족해서 관리자에게 지적을 당하기도 했다. 이 때 가장 힘든 것은 고객들이 사용하는 화장실을 청소하는 일이다. 별로 부족함 없이 자란 막내로 어려움을 겪어보지 않았던 내가 미국에 와서 남자 화장실 변기를 청소할 줄은 정말 꿈에도 상상해보지 못했다. 한국으로 도망가고 싶었다. 예전의 나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가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세상엔 공짜가 없다’는 말을 믿고 마음에 새겼다. 오늘 내 눈물이 헛되지 않을 것이라 다짐하며 뒤를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뚜벅 뚜벅 걸어 나갔다.

결혼은 사랑을 통해 이루어지지만 사랑을 가꾸어 나가는 노력과 능력이 없으면 안 된다. 맹목적인 사랑은 생명력이 길지 않다. 결혼생활을 통해 남과 같이 사는 의미와 방법을 배우고 내 삶을 전적으로 남편에게만 의지 하지 않는 주체적인 사고와 노력이 필요하다. 아마 그 배움과 노력은 평생 진행형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 만큼 결혼은 인생의 성숙이고 재미있고 의미 있는 일이다.

이제 울지도 않고, 우울하지도 않으며 혼자서 운전도 잘 하고, 공부도 하고 파트타임으로 내 적성에 맞는 일도 한다. 지나가버린 지난날에 매여 있는 일이야말로 바보짓이다. ‘아, 내가 한국에서는, 예전에는 이러이러 했는데…’ 라는 태도와 마음가짐을 버리지 못하면 불행이다. 돈을 계산하는 일이든, 화장실 청소든 아니면 지금 하는 사무직 일이든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묵묵히 성심성의껏 하는 게 더 중요하다. 그래도 사랑하는 남편이 옆에서 손잡아 주는 힘이 있기에 용기를 잃지 않고 씩씩하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오클라호마의 풀처럼 해가 갈수록 나도 적응력을 키워 뿌리를 내리고 푸르른 봄날을 맞이하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초록빛이 짙어지는 들판을 바라보면 나도 더욱더 생기가 돈다. 인생에는 항상 봄만 있을 수는 없다. 하지만 이 험난하고도 살벌한 삶의 현장인 미국에서 꿈을 키우며 희망을 노래하리라. 언젠가는, 오클라호마행 비행기 안에서 가졌던 사랑에 무르익은 아름다운 삶이 현실이 될 것이다. 마음 가득 언제나 봄, 그 싱싱함을 간직하고 내 인생이 대박으로 열매 맺는 날까지 노력하고 또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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