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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만진 문학칼럼] “잉카 문명의 흥망성쇠와 만나다”

[텍사스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8/06/08 09:35

해마다 6월 24일이면 페루 쿠스코에서 '태양 축제'가 열린다. 올해도 잉카의 후예들이 페루 전역에서 모여들고, 세계 곳곳에서 이 축제를 보기 위해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을 것이다. 페루에 가면 잉카제국의 인디오들이 사는 나라라는 느낌이 피부에 확 와 닿는데 아내와 나는 2014년 11월, 추수감사절 연휴에 페루를 여행했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잉카제국 최후의 슬픈 역사가 담겨 있는 세계 7대 불가사의 마추픽추와 태양의 도시 쿠스코를 여행하면서 그들의 찬란한 문화 유적과 뜨거운 태양도 만났다. 페루 여행은 버킷리스트에 일찌감치 올라 있었기에 은퇴 후에 가보려 했으나, 그해 8월 인기리에 방영된 "꽃보다 청춘 페루 편" 때문에 계획을 앞당겼다.
한국의 뮤지션인 윤상, 유희열, 이적이 페루의 유적들을 돌아보며 나누었던 따뜻한 우정이 나의 외로움과 향수를 어루만져 주었기 때문이다. 물론 사진에서만 보던 잉카 문명의 유적들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아름다운 영상도 좋았지만, 유명 PD의 현란한 편집기법이 나를 페루로 향하도록 유혹했다.

휴스턴에서 출발하는 UA United Airlines 직항편을 타고 7시간 만에 수도 리마에 도착해서 다음 날 국내선 비행기로 쿠스코에 도착했다. 잉카 제국의 수도였던 쿠스코는 안데스 산맥 해발 3,399m 지점에 있다. 잉카 제국 번성기에는 이곳에 100만 명이나 거주했다고 한다. 구시가지의 중심에 있는 아르마스 광장에서 잉카제국 황제 파차쿠텍의 동상이 서 있는 분수대와 쿠스코 대성당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스페인 침략자들이 잉카 제국의 비라코차 신전을 파괴하고 100여 년에 걸쳐서 지금의 쿠스코 대성당을 지었다는 가이드의 말에 가톨릭 신자인 나는 아름다운 성물들과 성화들을 들러보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복음 선교의 미명아래 자행한 그들의 만행 때문이다.
역사박물관에서 찬란했던 잉카 문명과 황금 유물들을 돌아본 후 기념품 가게들이 늘어서 있는 좁은 골목길에서 그 유명한 12각 돌과 함께 정교하게 쌓은 건물의 기초들을 보았는데 수많은 돌 중에는 같은 모양인 것이 하나도 없었고 그 크기들도 무척 컸다. 잉카인들의 석조 술이 얼마나 대단한지 정말 칼끝조차 들어갈 틈이 없었다. 거리에는 민속의상을 입은 잉카의 후예들로 가득 차 있었다. 아내와 나는 기념품을 사면 빌려주는 전통 인디오 복장을 차려 입고 원주민 인디오들과 함께 기념사진도 찍었다.
쿠스코를 관광하는 동안 걱정했던 고산병 증세는 없었지만, 아내가 해발 2280m인 마추픽추로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어지럼증과 속 울렁거림을 동반한 심한 호흡 곤란을 겪었다. 콜로라도 록키 마운틴 여행 시에도 어지럼증을 호소했었는데 고산병 약을 챙겨오지 않은 내 불찰이다. 물을 마셔도 호전되지 않았고 가이드가 준 산소 캔도 소용이 없었다. 쿠스코에서 마추픽추로 가는 방법은 주로 기차로 이동하는데, 버스를 타고 고갯길을 꾸불꾸불 돌면서 내려오다 보니 증세가 더 심해진 것 같아 속이 상해 여행사를 원망했다. 흔들리는 차 안에서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집사람의 손을 잡고 다독여 주면서 간절한 기도를 드리는 것뿐이었다. 아내는 자정 가까운 시간에 도착한 아구아 깔리엔테스에서 한바탕 토하고 난 후에야 정신이 들었고, 간호사인 일행 분이 준 고산병약을 먹고 겨우 진정이 되었다

드디어 잃어버린 도시 마추픽추에 오르는 날이다. 태양과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잉카제국의 마지막 성전, 잉카인 최후의 도피처 마추픽추는 산자락에서는 그 모습을 볼 수 없어 '잃어버린 공중 도시'라고도 불린다. 학자들은 이곳에 최대 1만여 명이 거주했을 것으로 추정하지만, 그 많은 사람이 모두 어디로 간 것인지 또 사라진 이유가 무엇인지 아직까지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1911년 이 도시를 발견했을 때도 가재도구나 생활의 흔적들은 일체 없었고 도시 원형만 남아 있었다고 한다. 꽃보다 청춘에서는 마추픽추 최고의 장관인 아침 일출을 보기 위해서 꼭두새벽에 서둘러 올라갔지만 짙은 안개 때문에 낙담하면서 해가 뜨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리던 안타까운 장면이 생각난다.
그곳은 하루에 2,500명으로 관람을 제한하고 있어서 우리 팀의 관람시간은 오후였다. 점심으로 꾸이와 잉카 콜라도 맛본 후 미니버스를 타고 급경사의 에스자 고갯길을 올라 여유롭게 입구에 도착했는데 전 세계에서 온 남녀노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저마다 이곳을 찾는 이유는 다르겠지만 모두가 유적지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으로 서둘러 가고 있었다.
드디어 마추픽추 유적을 내려다보는 순간 뮤지션 이적과 유희열처럼 감격의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지만, 눈앞에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장관에 경직되어 잠시 말문이 막혀버렸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직접 두 눈으로 보았을 때의 감동은 무어라 형언하기 어려웠다. 돌계단을 내려와 중앙신전과 해시계를 보고, 방목되고 있는 라마와 사진도 찍으면서 거주지역과 수로 등도 살펴봤다. 지금도 수로를 따라 물이 흐르는 걸 보고 있노라니 신기할 뿐이었다. 3m씩 오르는 계단식 밭이 40단이고 돌계단도 3000개라는데 세어보지는 않았다. 기중기도 없던 그 당시에 어떻게 이 큰 돌들을 한 치의 틈도 없이 정교하게 쌓았을까? 모든 것이 경이로울 뿐이었다.

마추픽추를 떠날 시간이 되었다. 잉카 제국 흥망성쇠 흔적이 이곳의 무심한 돌밖에 없다고 생각하니, 중 남미 대륙의 잊힌 3대 문명인 마야 문명, 아즈텍 문명 및 잉카 문명을 모두 답사했다는 기쁨보다는 뭔가 안타깝고 공허한 마음을 떨칠 수가 없었다.

“잘 있거라 큰 돌, 작은 돌, 멋진 돌들아. 나는 너를 가슴에 담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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