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정만진 문학칼럼: 서울 지하철 스케치

나는 지금 서울에 와있다.

지난 삶의 여정에서 나에게 지혜와 열정을 심어준 친구와 동료들에게 고희 기념 자전 에세이와 함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함께했던 날의 추억을 소환해 주는 중이다. 당연히 편리한 서울 지하철을 이용하면서 내 나라 동포들의 정취와 정겨운 말씨에 흠뻑 젖다 보니 피곤한 줄 모르고 즐겁게 오가고 있다.

서울 지하철은 1974년 8월 15일 1호선(서울역 - 청량리)이 개통된 이래 10개 노선이 생겼다. 총 운행 거리는 343.4km이고 정류장이 324개다. 시도 때도 없이 밀리는 도심 구간의 극심한 교통체증과는 달리 정시 운행되는 지하철은 1,000만 거대도시에 사는 서울 시민의 든든한 발이 되어 사랑을 받고 있다.

지하철을 공짜로 타는 65세 이상 노인을 ‘지공도사’라 부르는데, 서울 지하철은 물론 수도권 광역 철도망과 연계되는 강원도 춘천, 충남 온양온천 등 먼 곳까지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실제로 우대용 교통카드 G-Pass 때문에 서울 지하철의 운행 적자가 해마다 늘고 있다는 안타까운 뉴스를 들었다. 그래서 지하철을 이용할 때마다 고맙고 미안하다.



한국은 자타가 공인하는 인터넷 강국이다. 와이파이 사용률의 세계 평균은 25%이고 우리나라는 80%라는 사실과 인터넷 속도도 세계 평균속도의 6배나 빠르다. 그래서인지 지하철역 안은 물론 전동차 안에서도 와이파이를 무료로 사용할 수 있다. 승객들도 남녀노소 구별 없이 이어폰을 낀 채 머리를 숙이고 동영상을 보거나 새로운 지식을 검색하면서 인터넷 삼매경에 빠져있어 주위와 주고받던 눈인사나 온기는 사라졌다.

그러다 보니 누가 옆에 있는지 신경을 안 쓰게 되고, 어르신들께 자리를 양보하던 미풍양속도 사라진 듯 보였다. 전동차에 마련된 경로석은 턱없이 부족해 보였고, 취직을 못 해 삶에 지친 젊은이들에게 자리를 양보하라고 하기도 어려워 보였다. 예전에는 가판대에서 산 조간신문이나 책을 읽는 사람이 많았는데, 요즘은 그런 풍경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이런 낯선 풍경들이 내가 미국으로 떠나온 2004년 이후에 달라진 지하철의 풍속도이다.

나는 지하철 전동차에서 빠져나온 승객들이 계단이나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여 지상으로 빠져나가거나, 환승을 하기 위해 바삐 움직이는 모습을 바라보며 서울 인구가 1,000만 명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실감할 수 있었다. 이러한 풍경은 대중교통수단이 열악해서 마트에 식료품을 사러 갈 때조차도 개인 자동차로 움직여야 하는 휴스턴에서는 볼 수 없다. 지하철을 갈아타기 위해 그들과 함께 걷다 보니 오랜만에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과 나의 조국 대한민국이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있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지하철역과 연결된 지하상가의 규모나 상품의 다양성에 놀랐다. 예전에는 상가의 규모도 작았고 침침한 환경에 취급하던 상품들도 의류와 생활용품들이 주를 이루었는데, 강남역에 가보니 화려한 조명 아래 젊은 층을 상대로 화장품, 핸드백과 액세서리, 캐주얼 의류 가게들이 입점하여 활기차 보였다. 간단하게 요기를 할 수 있는 커피숍, 빵집, 김밥집 등 다양한 먹거리도 좋아 보였다.

강남역에서 신분당선을 타고 우리 가족이 살던 곳인 용인 수지에 갔다. 신분당선은 2011년 10월에 1단계 구간인 강남역-정자역이 개통되었고, 2단계 구간인 정자역-광교역은 2016년 1월에 개통되어 갈아타지 않고 편하게 갈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평생을 기술자로 살아온 사람이지만 민자로 건설된 총길이 31.1km 신분당선 12개 역이 국내 최초로 무인 운전되고 있고, 지난 8년 동안 무사고로 운영되고 있다 하니 놀라울 따름이다. 기차가 역을 출발해서 단계별로 가속을 하며 가다가 다시 감속해서 역에 진입한 후 플레트 홈 스크린도어와 정확히 일치한 지점에 정차해서 승객을 태운 후에 안전하게 출발하는 정교한 운영 시스템 구축에 박수를 보낸다.

역마다 설치된 스크린 도어에는 여전히 시들이 붙어있어 오가는 승객들의 지친 몸과 마음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지난번 한국 방문 때 내게 글쓰기를 지도해 주는 박인애 시인의 '그리운 엽서'를 보러 '한성대입구역'을 찾아갔었다. 처음 보는 아주머니에게 사진을 부탁하며 우리 선생님 시라고 자랑했던 생각이 난다.

그날에 두고 온 발자국이
어쩌면 기다리기에
보고 싶은 정류장으로 나간다.

달빛이 여문
창문을 열고
일어서는 햇살의 언어들이
바람을 밀면

오늘도
빨간 우체통에는
까치가 날아와 알을 품는다.

-그리운 엽서, 박인애-

3년에 한 번씩 교체되어 이제는 볼 수 없지만, 아는 사람의 시가 붙어 있다는 게 뿌듯하였다. 서울시가 내놓은 좋은 프로젝트라고 생각한다.

서울 지하철을 이용하면서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음에 감사한다. 그동안 세계 여행을 하면서 여러 나라의 지하철을 타 보았지만, 서울 지하철처럼 깨끗하고 안전하며 시내 어디든 편리하게 갈 수 있는 사통팔달四通八達 교통망을 구축한 곳은 드물다고 생각한다.

이번 여행에서 얻은 제일 큰 선물은 내 삶에 활력을 얻은 것이다. 은퇴 이후 자주 느끼던 향수병으로부터 삶의 의미를 되찾았다. 앞으로 남은 인생 3막도 열심히 살아야겠다. 끊임없이 지경地境을 넓혀가는 서울 지하철처럼 활기차게 내 꿈의 철로를 연장해볼 생각이다.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